나의 기적, 우리 모두의 기적. 유튜브 채널 ‘위라클’ 운영자 박위 동문(경영 08)

2021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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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했던 2020년의 한 해가 저물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마음만은 따뜻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마침 감사하게도 식었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2021년의 두 번째 숭실피플, 유튜브 채널 ‘위라클’을 운영하는 박위(경영·08) 동문이다.

최근 방송된 SBS 스페셜 “나는 산다 : 박위의 휠터뷰” 편을 통해 박위 동문은 많은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감동을 줬다. 마침 인터뷰를 위해 동문의 집을 찾은 날은 방송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다해 인터뷰에 응해준 박위 동문. 이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숭실대 학생 여러분. 유튜브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박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지금 현재 운영하고 계시는 유튜브 채널 위라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채널명과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문구의 의미, 그리고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채널의 이름부터 말씀드릴게요. 제 이름이 ‘박위’이거든요. 영어로 ‘We’는 우리라는 뜻이죠. 위(We) + 미라클(Miracle),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뜻을 담아 채널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 채널은 특별한 채널은 아니고요. 제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제가 어떻게 재활하는지, 그리고 다양한 분들을 모셔서 인터뷰도 하는 등 여러 도전을 하는 채널입니다. 그래서 채널의 목적은 부끄럽지만 ‘사람을 살리는 채널’입니다.

 

그러면 그런 콘텐츠들로 인해 기대하는 바가 있으시다면? 어떤 영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세요?

저는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다치기 전에는 운동도 많이 했었고 어렸을 땐 축구 선수 생활도 했을 만큼 축구가 굉장히 생활화된,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었죠. (다치기 전에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장애가 있거나 여러 어려움에 처한 분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전신마비가 되고 나니까 예전에는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저처럼 중도에 장애를 가지신 분도 많고 또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그들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서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되었고요. 보통 사람들이 전신 마비가 된 사람의 삶을 굉장히 안타깝고 위기의 상황이라고 바라보고 생각하실 텐데, 전신 마비인 제가 열심히 사는 것 자체만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희망과 용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숭실대학교에서의 학교 생활]

숭실대학교 경영학부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솔직히 제가 축구선수를 그만두고서는 특별한 꿈을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학과 선택에 있어서 사실 애를 많이 먹었죠. 그럼에도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미래를 생각했을 때,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는 데 경영학과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선택하게 됐습니다.

 

숭실대에서의 학창시절 박위님이 궁금합니다. 어떤 학생이셨는지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알고 싶어요.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셨었나요?

모범생하고는 굉장히 거리가 멀었던. (웃음) 저희 아버지가 항상 저한테 ‘먹고대학생(직업 없이 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킴)’이라는 말을 많이 하셨었어요. 대학 들어오고 나서 공부에 흥미를 잘 느끼지 못하고 방황을 했던 것 같아요.

경영학부에 ‘ufc’라는 축구 소모임이 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1년에 축구대회가 4개씩 열렸거든요. 총장 배, 유어슈(YOURSSU) 배, 경영대학 배, 그리고 하나는 생각이 안 나는데 총 4개가 있었어요. 그 대회를 모두 나가다 보면 학교 수업을 꽤 많이 빠져요. 유고 결석이 인정되지 않아도 수업을 들어가지 않고 축구를 했습니다.

그때는 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는지, 축구하러 다니는지 모를 정도였고.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시험 기간이 되어서야만 도서관에 갔죠. 근데 도서관에만 가면 항상 꼭 밖에 나가고 싶더라고요. 저희 때는 학교 근처에 플스방이 있어서 자주 갔는데 거기서도 위닝일레븐이라는 축구 게임을 했습니다. 진짜 너무 부끄럽네요. (웃음)

 

축구를 좋아하는 활발한 학생이셨군요. 대학 재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나 추억을 들려 주실 수 있나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축구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제가 경영학부 다닐 때 저희 과가 (축구) 전성기였어요. 대회 우승도 하고. 공격수였나요? 아니면 수비수? 저는 공격형 미드필더였어요. 유일하게 축구에 대한 자부심. 공부는 못했지만. 경영학부의 축구를 이끌었다? 네, 뭐. (웃음) 아무튼 축구했던 기억이 가장 크고요.

오히려 제가 휠체어를 타고 나서 학교생활 할 때가 더 기억이 남아요. 제가 교양수업 ‘Shot by shot’을 들으면서 (과제로 영상을) 하나 찍었었어요. 그때는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기 전이었는데 휠체어 타고 친구들이랑 같이 영상을 찍었던, 그 기억이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사고 이후에 학교를 다시 다닌다고 했을 때, 다시 다녔을 때, 제가 되게 오랫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학교 가는 시뮬레이션을 했어요. 휠체어를 차에 혼자서 싣고, 혼자 조만식기념관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강의실까지 올라가는 시간도 재고. 내가 온전히 혼자서 독립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강의실로 가는 연습을 한 거죠. 그래서 실제로 첫 수업에 지각하지 않고 차를 가지고 다녔던 기억들? 오히려 그런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지금은 새로지어져 없어진 옛날 경상관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모르는 친구들이 계단에서 휠체어를 들어주기도 했고, 그걸 보신 교수님은 강의실을 바꾸시고. 그랬던 기억도 나네요.

 

[6년 전 그날, 삶이 180도 달라지다]

6년 전 그 날의 사고에 대해서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4학년 1학기가 되자 주변 친구들이 모두 열심히 취업준비에 한창일 때 비교적 학업에 관심이 적었던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되었고 가장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생각해보니 바로 패션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패션 기업으로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4학년 1학기 끝나고 겨울 방학 때 산학협력제도를 통해 인턴을 하게 됐어요. 전공학점 18점을 P/F로 받고, 인턴 월급 받고, 동시에 경력이 인정되어서 자소서에 쓸 내용이 생기니까 더욱 좋은 기회였어요. 회사 생활로 학교 수업을 대체할 수 있었으니까요. 경제적으로 독립한 느낌도 나고 너무 좋았죠.

사실 제가 그 회사에서 특출나게 일을 잘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하고 관계가 좋다 보니까 두개의 부서에서 정직원 제안이 온 거예요. 졸업과 취업 준비를 하기도 전에 덜컥 입사하게 된 거죠. 그때 제 인생이 완전히 풀렸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제 기준에서는 제가 들어가게 될 직무가 되게 장래가 밝고 좋았었어요. 그런데 정직원 전환이 돼서 제가 인턴에게 인수인계해 주는 시기여서 일주일 휴가를 받았는데 그때 친구들이랑 주말 축하 파티를 했었어요. 그날 낙상사고로 3m건물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어요. 제가 떨어진 곳 근처에 대못이랑 자재 같은 위험한 것들이 있었는데 다행히 그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발견되기 어려운 곳에 떨어졌어요. 되게 운이 좋았던 게 제가 떨어지고 옆에 있는 건물 주차 안전바에서 소리가 난 거예요. 차가 안 들어왔는데 소리가 나니까 왜 울리지 해서 건물 경비아저씨가 오셨는데 옆에 사람이 떨어져 있던 거죠.

근데 그때 저를 병원으로 이송했던 119 구조대원이 나중에 중환자실에 와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아, 이분 아직 살아 계시냐고. 왜냐하면 침대와 벽이 다 젖을 정도로 피를 너무 많이 흘렸으니까요. 의식이 없다가 11시간 만에 의식이 돌아오면서 그렇게 전신 마비가 되었습니다.

 

사고 이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재활에 임하게 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모태신앙이에요. 그래서 정말 단순하게 ‘나는 하나님이 일으켜주시면 일어날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전신 마비라는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기도 했고요. 낙천적으로 긍정적인 제 성격도 한몫해서. 그래서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눈물도 흘린 적이 없고요. 하지만 현실은 굉장히 냉혹했죠.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대소변도 침대에서 가족들이 받아내야 했으니까요. 정말 암울했어요. 저만 싱글벙글 웃고 있지 가족들, 친구들을 비롯해서 모든 사람은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그걸 본 주변 사람들이 처음에는 ‘아마 위가 지금 웃고 있는 이유가 아직 자기 상황을 정확히 몰라서, 그리고 아직 받아들이지를 못해서, 현실감이 없어서 웃고 있는 거다’라고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근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웃고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이 점점 ‘위는 원래 이런 애였지.’ 하면서 깨닫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모두 다 밝아진 거죠.

사고 이후 병원에서 한 3주 정도 지났을 때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정말 난리가 났어요. 제가 이제 마비가 풀린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손가락만 이렇게 움직일 뿐이지, 기능적으로 내가 재활하고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6개월 동안 병원 생활 하면서 정말 미세하게 좋아지긴 했지만, 6개월 이후에 퇴원해서도 실제로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휠체어도 스스로 밀기 어려웠고 거의 모든 생활을 가족한테 의지해야 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아, 내 삶은 내 가족도, 그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 내가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재활해야겠다.’ 이런 의지를 갖고 죽어라 재활을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본격적으로 재활을 시작한 건 퇴원하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집 앞 한강공원에서 휠체어를 혼자 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한 10m도 밀지 못했어요. 그 후 하루에 3시간 정도를 계속, 매일매일 나왔어요. 눈이나 비가 오지 않는 한, 온도가 영하 5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온몸에 핫팩을 대고 항상 매일매일 나와 운동했죠. 나중에는 이촌동에서 난지 한강공원까지 11km 되는 거리를 3시간 걸려 휠체어를 밀어서 혼자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운동을 했어요. 그때서야 비로소 제가 집에서 11km 떨어진 곳에 혼자 놓여있더라도 집은 갈 수 있겠다는 걸 느꼈어요. 정말 저는 그 정도로 죽어라 운동했어요. 원래는 소변줄을 차고 있었는데 시간 지나면서 소변줄도 뺄 수 있게 됐고, 다시 스스로 운전을 할 수 있게 됐고. 가족들한테 도움받을 필요 없이 거의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있게 되었죠.

 

사고 전과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나요? 그리고 그런 시각의 변화가 유튜브 채널 운영을 할 때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관심 없었던 분야에 눈을 뜨게 됐어요. 사고 전에는 항상 살면서 내가 사는 삶 이외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TV나 강의에서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아니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냥 정말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든가 장애인을 본다는 건 정말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서 정말 관심이 없었어요.

제가 전신 마비가 돼서 장애인이 되니까 병원에서부터 정말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거예요.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고통과 신음을 듣게 되었고, 또 그의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모습들을 보니까 그게 남 일처럼 보이지 않더라고요. 다 내가 겪고 있는 일처럼 느껴지고. 그리고 휠체어를 타면서 사회에서 직접 살아 보니까 생각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정말 조그마한 턱 하나만 있어도 혼자 넘어갈 수 없었죠.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가 이런 인식을 바꿔야겠다, 그리고 장애를 가지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유튜브라는 새로운 도전]

재활 이후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러면 그런 시각의 변화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관련이 있을까요?

제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있을 때 너무 일어나고 싶어서 매일 밤 기도실을 갔어요. 평생 안 읽던 성경책도 읽고요. 일어나기 위한, 어떤 갈급함의 표현이었던 거죠. 매일매일 저만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저를 일으켜주세요.’ 하고.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제 주변에 있는 다른 병실의 환자들이 한명씩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때 그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이 생겼어요. 그날 제가 처음으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처음으로 나랑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이었고 또 그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 흘렸던 시간이었던 거죠. 그때 저는 이 기도가 내가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그 사람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부어주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비전을 받았죠. “위야 너는 반드시 회복할 것인데, 너는 너와 비슷하게 아픈 사람들과 또 세상에 여러 가지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어라.” 이 마음을 그 기도실에서 강력하게 봤어요. 그때는 제가 전신 마비가 된 상태에서 손가락도 아예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저는 그때부터 확신이 있었어요. 비록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요. 나중에 3~4년 정도 지나고 나서 어느 날 떠오르더라고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방법은 유튜브다, 그래서 이제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됐어요.

 

유튜브 채널 운영 이외에도 굉장히 다양한 일들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사실 모두 유튜브를 통해서 하게 된 일들이에요. 정부 기관이나 학교 등에 강연하러, 교회에 간증하러 다닙니다. 그리고 제가 영상을 찍다 보니까 영상 제작 의뢰가 들어와요. 주로 대기업이나 관공서 등, 보통 나라랑 일을 많이 해요. 예를 들면, 가장 최근에는 한국관광공사의 요청으로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교통 약자들을 위한 관광 시설과 관광지에 대한 홍보 영상을 제작했는데 출연도 했어요. SK 행복나눔재단에서 진행하는 ‘세상파일’이라는 프로젝트의 사회자도 맡았었고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도 출연했었고요. 유튜브로 인해서 관련된 일들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방송 출연 같은 것도 하고. 제가 사실 SBS 스페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었어요.(-> 관련 영상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20201220일 방영된 SBS 스페셜 622, “나는 산다 : 박위의 휠터뷰편을 보시면 됩니다.)

 

곧 책을 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책은 어떻게 쓰게 되신건지, 책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려요!

책을 아직 낸 건 아니고요. 지금 원고를 쓰고 있어요. 다양한 출판사에서 책을 쓰자는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근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 출판사 대표님이 계세요. 저랑 거의 가족 같은 관계에요. 어렸을 때 대표님이 우스갯소리로 “위야 너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같이 책을 쓰자.”라고 하셨는데, 제가 위라클 채널을 운영하면서 사람을 살리자는 꿈과 목표가 생겼고 대표님이 같이 책을 쓰자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같이 책을 쓰게 됐어요.

 

그러면 책에는 아마 선배님의 살아오신 인생이 담길까요?

그렇죠. 아무래도 저의 성장기 이야기들, 그리고 다친 시기의 이야기가 나오고요. 어떻게 다쳤는지, 중환자실에서의 삶, 인터뷰에서는 볼 수 없는 굉장히 자세한 이야기들도 나옵니다. 또 제가 왜 위라클 채널을 하게 됐는지, 위라클 채널을 통해서 알게 된 비공식적인 이야기들 있잖아요? 저와 만난 친구가 어떻게 변했는지, 또 저의 생각들, 앞으로의 방향성, 그런 것들과 많은 사진이 책에 담길 예정입니다.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원래는 책이 지금쯤이면 나왔어야 하는데 제가 11월~12월 너무 바빠서 탈고를 못 했어요. 퍼센트로 따지면 30% 정도 남았습니다. 제가 인터뷰할 때마다 언제 나오냐는 질문을 받으면 계속 뒤로 미뤄왔기 때문에. 1월 목표라고만 하겠습니다. (웃음)

 

[‘사람을 살린다는 나의 비전은]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면? 선배님의 비전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제 채널의 목적이기도 한 ‘사람을 살린다’라는 말이 사실 되게 큰 비전인 것 같아요. 근데 그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다 보니까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일들이 많이 생기고, 하고 싶은 일들도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제가 원래 ‘위라클 무브먼트’라는 캠페인을 올해 초에 하려고 했었어요. 혹시 그런 영상 기억나세요? ‘모세의 기적’이라고, 구급차가 지나가는데 (다른 차들이 길을 비켜주는). 한 번쯤은 다들 보셨죠? 저 같은 경우 운전 경력이 거의 14년 차인데, 정말 10년 전만 해도 구급차가 지나가면 다들 안 비켜줬어요. 근데 ‘모세의 기적’이라는 영상이 뉴스에도 나오면서 우리나라에서 한번 이슈가 된 적이 있어요. 결국, 구급차에 실려 간 위독했던 사람이 살았다는 내용의 영상이었죠. 지금 다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다 비켜주거든요. 진짜 정말 신기하게 다 비켜줘요. 그래서 저는 그게 영상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캠페인의 내용을 장애인 화장실, 장애인 주차 구역, 엘리베이터 이 3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드릴게요. ‘사람들은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엘리베이터를 과연 비켜줄까?’ 우리 상식적으로는 다 비켜줄 것 같잖아요. 근데 생각보다는 아니에요. 양보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제가 타면서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제 경험담인데 장애인 주차 구역에도 장애인 표시 없는 차들이 아직도 많이 주차되어 있어요. 그리고 장애인 화장실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해요. 근데 저는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본성이 나빠서’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몰라서’라고 생각을 해요. 그걸 영상을 통해서 알려주 고 싶은 거예요. 왜 우리가 장애인 자리를 비워놓아야 하는지, 장애인 주차 구역은 왜 일반 주차구역보다 큰지, 이런 것들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실 지켜지지 않고 모르는 분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이제 영상을 통해 전국적인 물결이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캠페인을 진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지금 거의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네요. 예를 들면 그런 것들을 하고 싶어요.

장애인 주차구역 옆에 빗금이 있는 이유도 문을 열고 휠체어를 내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거든요.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사람들이 잘 몰라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교육을 받거나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 거죠.

 

[숭실에게]

그래서 그런 걸 여쭤보고 싶어요. 우리 학교에 인권위원회가 생기면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맵과 같은 장애인의 물리적인 이동에 불편을 주는 요소들을 정리하고 관련 내용을 제공하는 지도를 만들기도 하는 등 학생사회 차원에서도,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도 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선배님이 직접 휠체어를 타고 다녀보셨을 때 숭실대학교 캠퍼스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반반인 것 같아요. 분명히 좋은 부분이 있어요. 새로 지은 건물들, 그리고 붙어있는 건물들 때문에 동선이 짧아서 다니기 좋고요. 그런데 이제 언덕이 문제에요. 중문에 있는 언덕. 저처럼 수동휠체어를 미는 사람들은 언덕을 혼자 오르기 불가능하거든요. 방법은 있죠. 예를 들어 지하철 타고 학교에 왔다고 했을 때 형남공학관을 지하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에서 내린다든지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접근성은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캠퍼스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으면 하고, 그리고 누빌 수 있을 때 비로소 캠퍼스가 잘 지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운전해서 학교에 가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어요. 근데 지하철로 등교하면 불편한 부분이 있죠. 많이 있죠.

 

 

숭실대학교 후배들과 이 인터뷰를 보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풀어서 이야기할게요. 저는 대학 생활에 아쉬움이 좀 남는 것 같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다치고 나서 비로소 깨닫게 된 부분들이 있거든요. 앞에서는 어떤 사회적인 부분을 말씀드렸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장 크게 깨달았었어요. 예전에는 걷고, 뛰고, 내 손으로 밥 먹고, 스스로 대소변을 보고 이런 부분들에 대해 감사하며 살지 않았었거든요. 근데 내가 전신 마비가 되면서 혼자 할 수 없게 되니까 이제야 비로소 나의,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들이, 당연하지 않고 감사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저의 학창 시절이 솔직히 후회가 많이 되더라고요. 내가 인생에서 한 번뿐인 대학 시절을 너무 그냥 가볍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휠체어를 타고 나서 8학점을 듣기 위해 학교생활을 했을 때는 이전의 대학 생활보다는 더 열심히 했어요. 그때는 허투루 생활하지 않았거든요.

학교를 다니는 후배분들, 저보다 더 훌륭하신 후배분들. 지금 이 시간이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시간은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일상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으셨으면 좋겠고요. 지금 코로나19, 취업, 학점관리 등 여러 가지 상황에 치여서 살고 계실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생각의 전환을 통해 지금 이 삶이 여러분에게 굉장히 귀중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숭실대학교 파이팅!

사람을 살리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박위 동문. 유튜브 등을 통해서 봐왔듯이 그를 만나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자신감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기자에게 전해졌다. ‘진리와 봉사’의 건학정신을 강조하는 숭실대학교의 동문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유튜브라는 소통 수단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박위 동문이 시작할 ‘위라클 무브먼트’라는 하나의 캠페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작은 부분부터 바뀔 수 있기를,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모두에게 기적을’꿈꾸며 자신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박위 동문을 응원한다.

 

전신마비가 되어 돌아온 아들.. 지우고 싶던 ‘말 한마디’ SBS뉴스 전문 보기 클릭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10기 노근호(국어국문학과 15학번) ]
[촬영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10기 이다솜(정보사회학과18학번) ]
[영상 제작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10기 양예은(정치외교학과19학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