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김두화동문 추모예배

2006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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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김두화 동문 이장(移葬)관련 추모예배




 9월 15일 오전 11시, 영락동산(경기도 남양주시 소재)에 잠들어 있던 해암(海庵) 김두화 동문의 묘 앞에서 국립묘지로의 안장을 위한 유골 발굴 및 추모예배가 유족대표 및 숭실대학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치러졌다.




김두화 동문은 평양 숭실대학 문과 1회 졸업생으로 제 60주년 광복절 기념 독립유공 포상자(건국훈장 애족장)로 추서되어 작고한지 40여년 만에 뒤 늦게 그 공을 인정받은 바 있다.




오늘 추모예배에서 숭실대학교 조은식 교목실장은 “어두웠던 그 간의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시게 되어 기쁘다”며 참석자들과 함께 찬송으로 그의 뜻을 기렸다.






 


 


 


 


 


 


 


 


 


 


 


 


 


 


우리나라 독립에 큰 업적을 세웠음에도 긴 세월 동안 별다른 역사의 조명 한 번 받지 못하고 잊혀져만 가던 김두화 동문의 묘 앞에서는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묘비에 새겨진 글자들은 그 간의 세월을 말해주 듯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모되어 있어 보는 이들의 아쉬움을 더 했다.


 


김 동문은 광복 후 대전의 실향민 집성촌에 기거하다가, 한때 성주탁(충남대) 명예교수의 집에 살면서 사제지간의 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그 인연은 길지 않았고, 1957년 상경하여 영락교회 양로원에서 지내다 1967년 10월 84세를 일기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성 명예교수는 수소문 끝에 스승이 영락동산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부친의 묘 옆으로 이장하여 모시려 했었고 그러던 중 지난 2002년 4월, 아련한 옛 기억을 바탕으로 그의 제자 김상기(충남대 국사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아 2005년 8월 독립유공자로 훈장을 받기까지 3년 여, 부단히 노력했던 성 명예교수와 김 교수는 “항일구국운동을 활발히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 가려져 있다가 양로원에서 생을 마감하셨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며 “진작에 했어야 할 일인데 늦었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성 명예교수는 “스승님의 사진은 1967년에 숭실대학교 학보에 실린 흑백사진이 전부인 것으로 안다. 움푹 들어간 볼, 긴 수염,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며 옛 스승의 모습을 회고했다.




김 동문은 실향민이기 때문에 유족이 없어 유족대표를 맡은 성주탁 명예교수는 이장과 관련해 많은 도움을 준 숭실대학교 측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장 및 절차진행에 관한 제반 사항은 숭실대학교 측에서 주관하게 된다.


한편, 故김두화 동문의 유골은 이 달 21일 오후2시,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 될 예정이다.




<하단사진은 성주탁 충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