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전문가 이정창 동문 (행정 92)

2011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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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예절을 공부하고 싶다고요? 소주예절, 공부하고 마시나요?’
한국의 몇 안되는 와인 전문가 이정창 (행정.92)동문을 만났다.

[인터뷰: 박고운 홍보팀 학생기자(행정09)]

현재 건국대학교 산업대학원 와인학과 숭실대 와인의 이해 교양과목 강의를 포함 다른 학교와 각종 기업체에서까지 강연요청을 물밀 듯 받고 있는 스타이다. 또한 2009년에는 「와인, 소주처럼 마셔라」라는 책을 펴내며 기존의 와인문화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이런 그의 학사 전공은 행정학부. 대학생활당시 그리고 졸업할 무렵까지만 해도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이었던 그다. 이런 그가 와인 전문가라니… "대학동기들 만나면 제가 가장 특이한 케이스예요. 학과 특성상 공무직이나 행정직에 대부분 종사하고 있죠. 그런데 친구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부분은 제가 대학 때 까지 술 한 잔 못하던 친구가 술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술 한 잔 못 마시던 고시생에서, 후천적 애주가(?)가 되기까지…

 

그가 후천적 애주가(?)가 되기까지 끝없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 2002년부터 지금까지 맛 본 와인만 무려 2만 5천병 이상.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계속해서 한 달 간 테이스팅만 했어요. 계속해서 맛을 느껴야 하는데 나중에는 혀에 감각조차 없어 지더라구요." 대학 졸업 때까지 술 한 잔을 못했던 그는 선천적으로 술과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이런 과거를 생각하면 테이스팅의 시작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고시준비생이었다. 대학졸업 후에도 행정고시합격이라는 목표를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생산성 없이 반복되는 공부만 붙들고 있기에는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에 책값이나 벌어 볼 요량으로 와인샵을 오픈했다. 와인과 관련해서는 샵에서의 한 달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전부인 그였지만, 수많은 사업 아이템 중 와인샵을 택한 이유는 오로지 고시 때문이었다. 낮에는 손님이 많이 찾지 않는 운영상의 특성을 활용해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오픈은 했지만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욕심이 있는 격이었으니 도통 운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손님의 물음에는 ‘가격표에 다 쓰여 있으니 읽어보시고 원하는 것을 고르시면 됩니다’라고 나름대로 정중히 말하는 것이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질문을 하던 한 손님이 이 같은 대답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그를 잠시 힐끔 쳐다보고는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정중했던 대답은, 말 그대로 ‘그 나름대로의 생각’ 이었다. 손님의 냉담한 반응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순간 절박함이라는 감정이 밀려왔다. 샵을 차리기 위해 여기저기서 모아온 투자금액만 해도 1억이 넘었다. 그런데 이 상태라면 ‘투자비도 남기지 못하고 실패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찰나의 깨우침으로 다가왔다. 어설프게 두 가지 일을 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곧 바로 책상위에 있는 두꺼운 법서들을 전부 치워버렸다.

이때부터 2만 5천여 병의 신화를 이룩한 테이스팅이 시작되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 까지, 한 달간 쉬지 않고 테이스팅을 했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면서 감정에 따라 와인 맛이 좌우되는 것이 아닌, 와인 맛에 따라 감정이 좌우되는 경지까지 도달했다. 절박함에 시작한 도전이 와인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변해갔다. 수년간 생활의 목표이자 활력이었던 ‘고시’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 ‘와인’이라는 목표가, 넘치는 열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와인에 대한 열정은 그를 와인 아카데미참석, 해외 와이너리(와인양조장) 방문 등 본격적 와인전문가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이러한 애착은 건국대학교 와인학 석사학위취득이라는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까지 손을 뻗쳤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절박함이었다고 해야 할까….

”우연적 만남이 운명이 되었다고 할까요? 사실 투자자금에 대한 절박한 심정이 이 분야를 파고들게 하는 노력을 빚어냈습니다. 노력이 관심이 되고 그 관심이 애정이 되어 지금 이 자리의 저를 만들었어요.” 그의 철학에 의하면, 와인은 ‘대화의 술이며, 귀로 마시는 술’이다. 와인을 마시면서 대화를 하면 조금 더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와인의 색과 향과 맛을 느끼면서 우리의 눈, 코, 입이 즐거워지고, 이에 따라 기분이 좋아지면 상대에게 좋은 말과 칭찬을 하게 되어 서로의 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인의 예절과 법칙에만 지나치게 치우친 나머지 대화의 술로써 와인의 진면목을 놓치고 있다. 이런 와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와인이라는 것이 꼭 격식에 맞춰, 음식에 맞춰 마셔야한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싶었다.

「와인, 소주처럼 마셔라」(그림그리고책)는 책은 이런 이유에서 펴내게 되었다. 멋과 품위,  예절을 따져가며 마셔야하는 술이 아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주와 맥주처럼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와인과 음식을 맞춰서 마시려 하며, 꼭 와인 잔에 따라 마시려고 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누누이 말 하지만 삼겹살과 함께 와인을 마실 수도 있고, 와인 잔이 아닌 유리컵에 마실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가끔 삼겹살집에 가서 양해를 구하고 맥주 컵에 와인을 따라 마시기도 한단다. 그러므로 ‘틀을 깨고 즐겨라’라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며, 강단 앞에 설 때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많은 이들이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그 날 까지 계속해서 강단에 서는 것이다. ‘대화를 위한 술인데 대화의 매개체로써가 아닌, 매개체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비즈니스 상황에서도 대화의 중요성이 커지며 와인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따라서 와인문화를 알고 즐길 수 있다면, 매개체로써 활용도 백 퍼센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와인 문화를 즐기는 데에 있어서 자신감을 심어주며 동시에 경쟁력 있는 한 사람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남은 소명이라 생각해요.” 마지막 까지 그는 우리나라에 와인문화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Helper 역할을 자청했다. 부드러운 듯 강한 어조와, 굵은 듯 낮은 목소리는 묘한 매력의 와인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있었다.

이정창 동문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대학생활에서 시도해 볼 만한 하는 한 가지 제안
시선을 돌려 새로운 경험에 도전해 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특히 남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 혹은 내가 거부해온 것들을 피하지만 말고 경험으로써 시도 해보면 또 다른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 한 잔 못 했던 내가 와인전문가로 수많은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와인전문가가 된 걸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잘 닦아져 있는 길로만 산을 오르고 싶으세요? 누구나 본 경관을 보고 지나가는 것 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 새로운 경관을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것은 길을 잃는게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