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성 동문(회계93) 의 ‘젊은’ 해설 듣기

2006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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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성 동문(회계93) 의 ‘젊은’ 해설 듣기

 새순처럼 꿈이 돋는다, 나는 행복하다


 올 봄 연둣빛 새순이 초록빛으로 어떻게 물들어갔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봄날이 어떤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져갔는지, 여름은 또 어떤 발걸음으로 우리 곁에 오는 중인지 도대체 느낄 겨를이 없다. 월드컵을 20여일 앞둔 어제, 그가 취한 수면 시간은 단 15분. 그나마도 방송을 끝내고 화장실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것이 전부지만, 자신의 모든 촉수가 축구를 향해 열려 있음이 박문성 동문(회계93, SBS 월드컵 해설위원)은 눈물나게 행복하다.


 말과 글 사이, 타오르는 축구사랑

 꼭 거짓말 같다. 자랄 때도 잘 흘리지 않던 코피를 두 번씩이나 쏟아가며, 무려 16경기를 ‘라이브’로 관람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그 때의 숨 막히는 감동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게 그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감동은 변하지 않았지만, 신분에는 변화가 왔다. 4년 전 축구기자(축구전문지 베스트11) 신분으로 월드컵 현장 구석구석을 ‘글’로 전하던 그는 이제, 축구해설위원(SBS) 자격으로 선수들의 땀과 관중들의 함성을 ‘말’로 전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부담은 커졌지만, 그렇다고 설레는 마음까지 달라진 건 아니다. 기자이기 전에 축구마니아로서 월드컵의 바다를 헤엄치던 4년 전 그 때처럼, 이번에도 해설가의 위치보다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서 월드컵의 숲을 원 없이 누빌 참이다.
 “많은 날엔 4개의 방송을 소화하고 있어요. 기자생활도 계속하고 있는데, 몸담고 있는 베스트11은 물론 신문과 잡지, 인터넷에도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죠. 월드컵을 코앞에 둔 요즘에는 해설 뿐 아니라 축구관련 TV프로그램의 구성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지만,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해설은 순간적으로 내뱉은 것이 널리 파급되는 매력이 있고, 글은 파급력이 약한 대신 오랫동안 남는다는 매력이 있거든요.”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축구)에 깨어있는 거의 모든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를 기쁘게 한다. 그래서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는 게 아니라는 말에, 그는 동의하지 않는다.


 쉽게, 편하게, 긍정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전문적인 해설,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멋진 코멘트. 그의 해설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이 정도가 된다. 그는 못내 쑥스러워하지만, 자신을 향한 네티즌의 열광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모르지 않는다.

 “2001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을 요청해왔을 때, 처음엔 두려웠어요.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기존의 해설과는 조금 다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내용도 생각도 ‘젊은’ 해설을 하고 싶었습니다. 10분의 방송을 위해 2시간 이상씩 준비를 했어요. 기자로서 발로 뛰어 얻어낸 사실과 외신사이트에서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객관적인 경기분석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나 봐요.”
 전문적인 해설 사이사이에는 그가 남긴 ‘명언’들이 보석처럼 빛났다. 가령 우리 대표팀이 패했던 어느 날엔 ‘두려운 건 패하는 게 아니라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라는 말로 선수들과 관중들의 마음을 따뜻이 녹였고, 한 선수가 뼈아픈 실수를 했을 땐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나오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을 인용해 선수의 실수를 경기의 ‘거름’이 되도록 이끌었다.
 그의 코멘트들이 한결같이 ‘긍정적’인 것은 축구해설이 관중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그의 해설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하루일과를 끝내고 가장 편한 자세, 가장 편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해설. 그런 해설을 꿈꾸는 그에게 어려운 용어나 부정적인 어휘들은 될 수록 삼가야 할 것들이다.
“가뜩이나 피곤한 현대인들에게 (해설자가)‘아, 오늘 되게 안 되네요’라고 말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죠. 밝고 긍정적인 해설로, 선수도, 시청자도 끝내 그 경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설이라 믿어요.”
 그는 ‘센터링’이란 일본식 조어를 ‘크로싱’으로 처음 바꿔 부른 장본인이다. 대중의 피로를 풀어주는 ‘비타민’ 같은 해설을 해나가는 한편으로, 잘못된 용어를 바꿔나가는 등의 작지만 큰 변화들을 실천해나갈 생각이다.

 ‘도전’이라는 이름의 그리움

 그의 전공은 축구와도, 기자나 해설가와도 아무 관련이 없다. 회계학과 93학번. 학과공부보다 학생운동에 열심이었던 학생답게(부총학생회장을 지냈다), 그의 관심은 줄곧 자신의 미래보다 사회의 미래에 가 있었다.
 “당시 학과장이셨던 김대근 교수님(현 대학원장) 생각이 자주 나요. 집회가 있을 때마다 교수님께 사전에 어떤 성격의 집회인지를 말씀드리곤 했는데, 그 때마다 학점은 줄 수 없지만 네가 하는 일을 막지는 않겠다고 말씀하곤 하셨죠.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아도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셨던 그 시절의 교수님이 문득문득 그립습니다.”
 그리운 것이 어디 교수님과의 추억뿐이겠는가. 졸업 이후의 진로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날들도,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기자학교의 문을 두드리던 무렵도, 그에게는 모두 한 조각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운 좋게’ 축구기자가 되어 발로 뛰는 기사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배우던 초보기자 시절도, ‘젊은 해설’을 해보겠다며 하루하루 분투하던 초짜해설가 시절도, 어느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돌아보면 매순간이 새로운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던 건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배들에게도 꿈을 잃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꿈을 세우고, 일단 세웠으면 힘들어도 그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묵묵히 걸어가 볼 것을 권합니다.”
 그는 여전히 꿈을 꾼다. 지도자자격증이나 심판자격증도 따고 싶고, 축구에 관한 정보가 아닌 ‘축구 자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영국유학도 떠나고 싶다. 꿈은 이루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순처럼 또 돋아나는 것. 봄날이 간 지 이미 오래인데도, 그는 여전히 봄날을 살고 있다.




박문성 동문

회계학과 93학번
베스트일레븐 취재팀 차장
2006년 SBS 독일 월드컵 해설위원


정리/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