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내티대학 김용헌교수 (경영59)

2006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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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 (University of Cincinnati) 경영대학 정교수로 봉직하고 있는 김용헌 교수는 숭실대 경영학부를 65년에 졸업한 동문이다.

한미재무학회(KAFA: Korea-America Finance Association)를 창설, 그 초대 회장을 거쳐 차기 한미경제학회 (KAEA: Korea-America Economic Association) 회장으로 선임되는 등 한국과 미국을 잇는 경제와 경영 재무 분야의 권위자로 활발한 활동을 해온 김교수가 최근 고국을 방문, 모교를 찾았다.
이순(耳順)을 훨씬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찬 표정과 안온한 미소가 인상적이다.

“영문학과 35회로 입학했을 때가 1959년입니다. 사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했었는데 당시 기숙사 사감이셨던 유의성 선생님께서 등록금을 남모르게 대신 내 주셔서 숭실대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영락교회 학생회장을 하며 활발히 활동하던 저를 아끼시는 마음에 학업을 미루지 않도록 도와 주신 겁니다. 저의 일생동안 잊을 수 없을만큼 감사한 일이지요.”

학교 근처까지 오는 버스가 없어 험한 길을 걸어서 통학하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는 김용헌 교수. 입학은 영문학과로 했지만 당시 신학문으로 도입된 경영학에 매력을 느껴 전공을 바꾸어 졸업했다. 이후 서울대 경영대학원 1회로 입학해 석사과정 100명중에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타대학 졸업생에게 1회 수석졸업과 총장상의 영예를 주는 것이 탐탁할 리 없었던 대학원 교수위원회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어릴 때부터 제 선친께서 저를 닥터킴, 닥터킴 이렇게 불렀습니다. 덕분에 동네에서도 제 별명은 김박사였지요. 그래서일까요.
자연스럽게 학자의 길을 생각했고 서울대학교 은사님들의 권유와 모교 이정린 명예교수님의 격려를 받으며 서울대학에 남기로 결정, 전임으로 재직하면서 서강대학과 모교 숭실에서도 강의를 하다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힘들었지요.
그 전에는 나름대로 영어를 꽤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각 지방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한데 모인 대학에 가니 잘 알아듣질 못하겠더군요. 특히 미국과 인도의 남부지역 억양과 사투리는 제주도 방언 보다 더 알아 듣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떤 날은 휴강인줄도 모르고 혼자 빈 강의실에 앉아있기도 했지요. ”




그러나 부족함은 노력으로 극복한다는 평소의 신념으로 도전하니 영어도 난공불락의 벽은 아니었다. 버지니아 공과대학 (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and State University)과 펜실베니아 주립대학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펜실베니아 대학에 남아서2년간 전임강의와 연구에 몰두하던 그에게 1978년 신시내티 대학이 조교수 초빙을 제안해 왔다.

산학협동의 요람으로 거의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신시내티 대학은 숭실 동문인 안익태 선생이 수학하기도 했던 유서깊은 대학. 이곳 경영대학으로 옮긴후에도 김용헌 교수는 연 평균 3~4회 미국내 및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꾸준한 연구 실적을 쌓아1988년에는 종신직 부교수에서 3년 만에 정교수로 임용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인으로서 미국 대학 사회에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 어찌 쉽기만 했을까.

 “70년대초기만해도 미국인들의 생각에는facial validity가 매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아무리 자국인과 다름없이 영어를 구사해도 얼굴색이 다르면 이방인이라고 인식하지요. 교수인 나에게도 가끔 ‘영어를 정말 잘하시네요. 그런데 고향에는 언제 돌아가세요?’ 라는 질문을 할 정도니까요.”

그럴 때마다 더욱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김교수는 20년간 거의 고국을 찾지 않을 정도로 미국 경영학계에 뿌리를 내리는 일에 매진했다. 풀브라이트재단 (Fulbright Foundation)의 초청을 받아 1년간 서울대 경영대교수로 돌아온 것이 89년의 일. 그때부터 한국 학계에 미국 경영학의 동향을 알리고 교류하는 일을 활발히 전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뿔뿔이 흩어져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우리 학계의 풍토 속에서 92년부터 경영 재무 분야의 대규모 컨퍼런스를 이끌며 통합과 교류의 장을 만든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오래전부터 매년 남모르게 장학기금을 적립해오다가 최근에도 1만불을 출연하는 등 학교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김교수는 숭실대 재학생들과 신시내티대학교 학생들의 1:1 교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교수로서, 동문으로서 그가 바라보는 우리 대학의 미래는 밝다. 진정한 ‘가치’로 평가받는 시대가 왔고, 이것이 숭실의 기회라는 것.




 “양과 성장에만 힘을 쏟아 규모를 키워온 다른 대학과는 달리 우리 숭실대학교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따라 신앙적 양심을 저버림 없이 순수성을 지켜온 학교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 숭실이 최고의 학교라는 자부심, 그리고 이것이 세상에 드러날 때가 되었다는 믿음을 모든 구성원이 가지기만 한다면 우리 숭실대학은 눈부시게 도약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후배님들에게도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재건 초기의 숭실인들은 지난 50년간 없는 길을 만들어야만 했던 '외로운 개척자의 삶'을 살아 왔지만, 지금은 실력만으로도 경쟁이 가능한 여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 globalization의 시대이기에 '신바람 나는 개척자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1:1의 실력으로 경쟁해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필요할 뿐입니다.”

글/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