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교육 마이더스의 손, 충남 삼성고 박하식 교장(철학 76)

2015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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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교육 마이더스의 손,

충남 삼성고 박하식 교장(철학 76)

 

[인터뷰: 류지희 홍보팀 학생기자(영어영문 12), zhee.ryu@gmail.com]


박하식 동문의 이력은 화려했다. 국내 고등학교의 국제화 흐름의 선두주자로, 교육계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이름이 알려졌다. 교육계에서 만큼은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리는 그였다. 민사고, 용인외고 등을 거쳐, 작년 충남 삼성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가 가진 교육에 대한 철학을 전해 듣기 위해 아산에 위치한 충남삼성고로 향했다.

목사를 꿈꾸던 청년, 선생님이 되다.

박하식 교장은 목사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학대학에 입학했지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이듬해 숭실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박하식 교장의 학창시절은 그야말로 한국 정치의 격동기였다. “당시는 공부를 하는 것 보다는 학생운동을 하거나 나라걱정을 하는 것이 중요했던 때에요. 책에서 배운 진리들을 현실사회에서도 적용시켜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들을 선후배, 교수님들과 함께 고민했던 것이 학교 다닐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에요” 당시 숭실대 철학과는 좋은 교수들이 많아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나 故안병욱 교수님은 박하식 교장에게 아직까지 영향을 미치는 교수님이시다. “교수님의 논어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논어를 7번이나 붓글씨로 쓰셨다고 해요. 요즘 아이들은 고전을 많이 읽지 않아서 학교에 ‘교장선생님과의 고전읽기’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지난달 논어 읽기를 했는데, 반응이 좋더라고요. 다 안 교수님의 영향이죠”

그가 선생님이 된 계기는 대학교 4학년 때에 하게된 교생실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꿈은 목사였지만, 한 달간 실습을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목사를 꿈꿀 때에는 목사가 진정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장 컸어요. 그런데 실습을 나가보니 어쩌면 교사가 목사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이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자는 생각을 이때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 했어요”

글로벌 교육의 시작

96년 개교한 민사고는 우수한 학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내신 때문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에 있어 불리했다. 교육제도의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박하식 교장은 국외로 눈을 돌려서 아이들을 해외 우수한 학교들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훌륭한 학생들이잖아요. 더 큰 세상에 나가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어요. 문제는 내가 외국 경험이 없으니 정말 많이 공부했죠. 미국의 아이비리그 진학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등 연구를 많이 했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학생들이 미국의 명문학교들에 대거 합격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MIT에 진학한 친구가 있었어요. 물리올림피아드대회에서 금상을 타는 등 수학을 너무 잘하던 친구에요. 1년 뒤 방학에 놀러왔는데, 영어는 힘들겠지만 수학은 잘하고 있겠지? 라는 질문에 반대로 영어는 그냥 괜찮은데 수학이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미국은 수학을 단순히 푸는 것이 아니라 한 문제를 놓고 다양하게 푸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수업을 한다고 해요. 공식을 외워서 풀기만 했지 왜 이런 공식이 나온 것인가 생각해보지 않는 한국 아이들이 이런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다고 해요”

그래서 박하식 교장은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라는 국제적으로 인정이 되는 교육과정을 경기외고에 도입했다. 암기위주가 아닌 활동과 토론위주의 프로그램을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박하식 교장은 이후 IB연구로 논문을 써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

“한국 선생님들의 제일 중요한 관심사는 ‘진도’, ‘시험범위’에 맞춰진 반면 미국 선생님들은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이 오늘 진도를 얼만큼 소화하고 이해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춰요. 말하자면, 가르치는 것(teaching)보다 중요한 것이 배우는 것(learning)인데 이것을 간과하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얘기죠”

충남 삼성고의 초대교장으로 부임하게된 박하식 동문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학급당 인원은 25명으로 제한하고, 한 선생님이 맡는 학생은 75명을 넘지 않도록 했다. 한 학기동안 내가 어떤 아이들을 가르치는지 다 파악을 하고 개개인에 맞춘 학생에 맞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선생님이 처리해야할 각종 행정 업무도 너무 많다고 생각해 부서별로 조교를 두고 행정업무의 부담을 줄였다. “우리나라 교육은 이런 방향으로 잘 바뀌지가 않아요. 선생님들이 계속 이런 꿈을 가지고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안주하지 않는 것이 비결

박하식 교장의 현대고등학교 재직시절은 현재의 박하식 교장을 있게 해준 밑거름이었다. 젊은 선생님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고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진단과 함께 외국교육을 공부한 것이다. “칸트가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철학 책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어요. 정해져 있는 것에 대한 의심, 즉 무전제사고에 관한 얘기죠. 이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을까? 이게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끝없는 질문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제가 하는 것들은 남들과 다르게 하고 싶어서가 아닌,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숭실대 후배들에게도 조언의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학교 다닐 때에도 교수님들이 안타까워하시던 것이 있어요. 학생들이 너무 자신감이 없지 않나, 더 자신감을 가지고 적극적이라면 좋을 텐데. 숭실대학교는 최초의 대학이고, IT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사실 참 훌륭한 학교거든요.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기회를 끊임없이 찾으며 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박하식 교장의 교육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노력이 우리나라가 참교육을 실현하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바라본다.

   

* 본교 철학과를 졸업한 박하식 교장은 민사고, 용인외고, 경기외고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충남 삼성고등학교의 초대교장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민사고를 아이비리그 최다 배출학교로 만들고 경기외고에 국내 고교 최초로 IBDP(세계 표준의 고교교육과정)을 도입하는 등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스타교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항상 참된 교육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는 그의 자세와 열정에 많은 교육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