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세상을 다시금 보여주는 사람, KBS 시사교양 PD 임종윤 동문(정보사회 01)

2021년 1월 7일
130713

10월의 어느 날, 숭실의 한 동문이 방송계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자는 즉시 인터뷰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한 달 뒤, 동문에게서 반가운 답장이 왔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다시 코로나19가 확산세로 돌아서며 하릴없이 다시 한 달, 드디어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의 숭실피플은 임종윤(정보사회학과·01) 동문이다. 임종윤 동문은 KBS 시사교양 PD로, 교내 언론고시반 출신 1호 언론인이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현재 어떤 일을 하시는지 학우분들에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KBS 시사교양 PD이고요. <추적 60분>, <걸어서 세계속으로> 연출을 맡았고 최근에는 다큐인사이트 <모던코리아> ‘휴거, 그들이 사라진 날’ 편을 제작했습니다. 지금은 다큐멘터리 <모던코리아> 팀에서 시즌2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숭실에서의 삶, 그리고 대학생활]

숭실대학교를, 그리고 정보사회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사회학 공부를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대학생 누나들이 있어서 처음에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는 그렇게 크진 않았는데 들어오고 나니 정말 좋았어요. 그때는 젊은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는데 그분들과 굉장히 가깝게 지냈고요. 그중 지금은 돌아가신 정재기 교수님 방에 가서 매일 둘이 같이 만화책도 보고, 교수님 일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그랬어요. 교수님 방에서 되게 많이 시간을 보내면서 지냈죠. 그때 교수님들이 가르쳐주신 걸 가지고 아직도 밥을 벌고 있습니다. 마치 어렸을 때 받은 선물 상자처럼 뜻하지 않게 좋은 것들이 많이 있었던 학과였기에 지금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에서 배웠던 것 중에 사회에 진출한 후 도움이 되었던 수업이 있으시다면?

되게 많아요.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 엑셀(Excel) 수업이 있었습니다. 엑셀 수업이지만 데이터를 아주 기초적으로 다루는 것 그리고 데이터 클리닝을 배웠어요. SPSS(통계 프로그램)도 배우고 사회조사방법도 같이 배우고. PD 중에 엑셀 표에 ‘=SUM’ 함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1%도 안 될 겁니다. (웃음) 근데 저는 대학 때 엑셀이나 액세스(Access)로 수치 데이터를 다루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을 배웠었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1,000개 정도의 방송 영상들을 모두 보면서 정리하고, 편집하면서 1,000개 중에서 1초씩을 찾으며 계속 편집을 해야 해요. 그래서 데이터 정리가 안 되는 사람들은 이 작업이 어렵죠. 그래서 이전 팀에는 제가 데이터 정리 도구를 만들어서 동료들에게 배포한 적도 있고요.

 

예전에 <추적 60분> 연출에 참여할 때도 느꼈지만, 굉장히 많은 데이터들의 패턴을 보다 보면 뭔가 보일 때가 있어요. 물론 그런 작업은 전문가분들이 하시지만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할지를 디자인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이 많아지죠. 설문조사도 많이 하는데 사회조사방법론을 알고 있으면 5점 척도로 물어봐야 할지, 아니면 질문의 개방성을 어떻게 설정할지 등을 직접 결정할 수 있어요. 어떤 회사에 들어가서 사업을 하든지 간에 먼저 조사를 해야 하잖아요. 조사의 기초를 이해하고 있다고 상대도 느끼는 순간 그때부터는 조사의 질이 달라지죠. 이렇게 학과 공부하면서 배웠던 소소한 것들이 아주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는 대학교 때 리포트를 쓰던 버릇이 사회생활 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때랑 똑같이 이어지더라고요. 서문기 교수님은 사회 현상을 볼 때 보편성, 특수성, 그리고 공시적으로, 통시적으로 봐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저도 어떤 사건을 볼 때 이 요소들이 어디서 만나는지 10년 동안 항상 똑같은 별표를 그려 가면서 일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사회 현상을 파악하거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들을 가지고 지금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서문기 교수님은 화살표랑 단어만 가지고 강의를 하시거든요. 제 편집 노트에도 지금 똑같이 단어와 화살표가 있고요. 그래서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생각하는 방법들을 가지고 실제로 그렇게 일을 하고 있어요.

 

 

 

 

숭실대학교에서 학업 외에는 어떤 경험을 해보셨나요?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신지 듣고 싶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있었지만, 과 생활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숭실체육회’라는 걸 만들어 친구들하고 운동을 많이 했어요. 매일 아침 같이 헬스를 하고 주말에는 같이 놀러 가고. 숭실대입구역 근처 PC방 있는 건물 제일 꼭대기 층에 헬스장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ssuoutside.com’이라는 웹페이지 운영도 잠깐 했었어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부동산 정보 사이트라고 할까요? 학교 주변에 있는 방들의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그 방에서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는지, 계단에서 소리는 나는지, 옆방에서 소리 나는지 등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이트였죠.

 

[KBS의 프로듀서가 되다]

PD, 그중에서도 시사교양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평소 방송계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아니요. TV 보는 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이걸 업(業)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요.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졸업 전에 배우고 싶은 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모니카 불기, 암벽등반, 비디오카메라 찍는 걸 배우고 싶었는데 3개 모두 배웠죠. 비디오카메라 찍는 곳이 알고 보니까 다큐멘터리 수업이었는데 그게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운이 좋게 제 영상이 서울독립영화제 스크린에도 걸리고. 그래서 ‘아, 사람들하고 같이 무언가를 보는 게 되게 재밌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PD) 이걸 한 번 해볼까 하면서 학교에 언론고시반을 만들었어요. 커밍홀(현재의 이름은 창신관) 1층에 고시반이 있었고요. 그래서 준비를 시작했죠.

 

저는 사실 예능이나 드라마 대신 시사 프로그램, 그중에서도 고발 프로그램을 많이 봤기 때문에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그래서 KBS에 입사할 때도 <추적 60분>을 하고 싶다고 했었고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KBS는 <추적 60분>, MBC는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을 좀 힘드니까 아무도 안 하려고 하거든요. 의무복무처럼 <추적 60분>을 1~2년씩 하면 졸업장을 줘요. 다시는 거기 안 가도 된다는 졸업장. (웃음) 그런데 저는 <추적 60분> 꼭 하고 싶다고 해서 입사 2년 차 때 갔죠. 시사 프로그램을 워낙 좋아했어요.

 

그러면 준비하신 기간은 어느 정도 되시나요? 1년 준비하셔서 KBS에 붙으신 건가요? 그러면 합격자 중에서는 짧은 편인 것 같아요.

기간으로 보면 짧다고 볼 수도 있죠. 제가 2008년에 시험 봐서 2009년에 입사했으니까요. 10년 전인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였죠. 보통 기자들보다 PD를 적게 뽑는데 그때는 더 적게 뽑았어요. 보통은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별로 서너 명을 뽑는데 2008년에는 각각 1명씩, 총 3명을 뽑았어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언론사 시험 준비가 굉장히 막막하고 사실 별로 할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1년 동안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되게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이에요. 짧게 준비해도 제가 뭐 금방 됐다, 이런 게 아니라 매일매일 진짜 열심히 준비해서 1년을 꽉 채워 준비해서 갔다는 거죠. KBS는 나이, 학력, 그리고 출신 지역 3개를 가리고 시험을 봤어요. 이전부터 많은 지원을 했지만 면접도 처음이었고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 연출하신 작품인 KBS 다큐인사이트 <모던코리아> 시리즈도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이 작품을 기획하고 연출하게 된 이유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모던코리아> 자체는 사건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아요. 사실 방송에서는 사건을 빨리 납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이라는 게 되게 다면적이잖아요. 사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런데 방송은 그렇지 않아요. 항상 사건을 ‘좋은 놈’, ‘나쁜 놈’, ‘왼쪽’, ‘오른쪽’, 이렇게 납작하게 만들어서 사람들한테 어떤 사건에 대한 대표 이미지, 딱 어떤 사건 하면 떠올릴 만한 대표 장면들로 편집을 해서 끊임없이 사람들한테 보여 주죠. 거기에 전문가 몇 명의 말을 얹고요. 그래서 쉽고 납작하게 만들어서 빨리빨리 보여 주는 게 그동안의 팁이었어요. 사실 세상일이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PD도 그 사이클을 빨리빨리 돌릴 수 있게, 아무리 복잡한 사건도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딱 납작하게 만드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고요.

 

그런데 <모던코리아>는 납작하게 저장된 사건 아카이브들의 앞뒤로 붙어 있는, 편집하지 않은 촬영 원본 같은 것들을 찾아서 펴고, 다면적으로 그 사건을 다시 한번 시청자들에게 재료만 보여드려서 시청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죠. 내레이션이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죠. 내레이션이 있으면 편집이 120배 정도 쉬워집니다. 내레이션을 적어 놓고 그림만 얹으면 되잖아요. 내레이션은 PD가 가이드를 계속 줄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생각해, 이렇게 받아들여’ 하고 말이에요.

 

주제로 ‘휴거’를 잡은 이유는, 가장 좋은 주제는 ‘그때 그 사건이 있었지. 근데 그게 어떻게 됐지?’ 정도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사건이 되게 좋은 사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너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너무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 그거 있었지!’ 이 선상에서 ‘휴거’라는 사건을 보다 보니까, 그때 당시 ‘EU’나 ‘컴퓨터’, ‘666’, ‘바코드’, ‘세기말’, ‘환경오염’ 등과 약간 오도되게 우리나라에서 전파되어 왔던 기독교의 영향 같은 것들이 같이 들어가 있어서 이 사건으로 당시의 사회상까지 시청자분들한테 같이 보여드릴 수 있겠라고 생각했어요. 참고로 제가 모태 신앙이기도 하고요. 개신교인입니다.

 

<모던코리아> 이외에도 <추적 60>, <걸어서 세계속으로>가 대표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어떤 프로그램을 연출하셨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나 기획이 있으시다면요?

KBS는 1TV와 2TV가 있어요. 라디오만 해도 한 7개가 있습니다. 24시간 동안 돌아가는 엄청나게 많은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런데 보통 예능이나 드라마들을 많이 생각하시지만 온종일의 70%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그 속에는 노인 프로그램, 장애인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PD들이 있거든요.

 

입사하고 처음 교양국에 와서 <낭만을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을 했어요. 전영록, 최수종, 허경화, 정주리, 가애란 아나운서, 그리고 가수 김정민씨랑 같이 추억여행 다니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내 나이 때랑 조금 안 맞으니까 되게 싫었어요. 학생 기자님들은 평일 저녁 7시 반에 1TV를 보십니까? 안 보잖아요. <6시 내 고향> 끝나고 그다음 시간대인데, 나도 안 보고 내 친구들도 안 보는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하는 게 싫었죠.

 

어쩔 수 없이 준비해서 녹화를 하러 갔죠. 첫 회가 경주에 리마인드 수학여행을 오신 아주머니들한테 전영록씨가 깜짝 콘서트를 하는 내용이었어요. 전영록씨랑 최수종씨가 무대에 나오는 순간, 어머님들이 너무 좋아서 뒤집어지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랑 너무 비슷하게 생긴 어머님들이. 생각해보면 공영 방송의 역할이 막 무슨 좋은 다큐멘터리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각 시간대에 보는 분들을 재밌게 즐겁게 해드리는 것도 좋은 공영 방송의 역할이잖아요. 근데 우리는 평일 7시 반 시간대에, 게다가 1TV는 광고도 붙일 수 없기에 돈을 덜 써야 하니까 그냥 그런 프로그램들 하면 된다고만 생각을 했었던 거죠. 그 시간대에 이렇게 돈을 쓰고 공을 많이 들여서 그 시간대에 보시는 분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되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그날 경주에서 많이 느꼈어요.

사실 그전에는 그런 프로그램들은 추적도 하고 막 이래야 하는데 너무 멋이 없다고 생각했죠. 근데 그날 이후로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 나와서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고 보시는 분들도 같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정말 중요하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달리하게 됐죠. 그래서 <낭만을 부탁해>라는 그 프로그램이 기억이 나네요.

 

 

[시사교양 PD로서 가진 생각은]

앞으로 제작하실 프로그램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지금 <모던코리아> 시즌2 사무실에서 편집도 하고 일도 보고 하는데 저를 포함해서 4명의 PD가 여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 편을 직접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데 <모던코리아> 시즌2 중에서 ‘K-POP의 탄생’ 편을 저희 선배가 준비하고 있고 그편을 제가 아마 같이 제작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년 3월에 시즌2가 4편을 준비하고 있고요. 그 뒤로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올해 개인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누가 조사 때문에 근무시간을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2018년 중에 한 달 평균 몇 시간 일했는지를 적어달라고 해서 계산해봤더니 30일 중에 하루 쉬고 하루에 11시간씩 일을 했더라고요. 매일 평균 11시간. 어떤 날은 20시간 일했을 테고 어떤 날은 10시간 일했겠죠? 그렇게 10년 했더니 이제는 좀 많이 피곤해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아니면 지금 회사에 디지털화를 못 한 아카이브 필름들이 13만 롤이 있습니다. 그런 필름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직 결정을 못 했어요. 아니면 내년에 다큐멘터리 하나 더 할까? 등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TV가 고령화되고 있다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뉴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접하는 추세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데요. 방송국의 PD이신 선배님께서는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대응할 계획이신가요?

TV는 최근에 고령화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2008년에 입사시험 볼 때 ‘TV가 고령화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시험 문제였습니다. 그런 추세는 이미 꽤 오래됐습니다. 전 세계에 있는 방송사, 특히 공영방송의 고민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실 저는 뉴미디어와 관련된 일을 2년 동안 했었습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그리고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가지고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에서 트래블 파티도 했었고요. 그리고 밀키트도 같이 개발해서 해당 주차에 방송됐던 걸 팔기도 하고. 그런 사업을 2년 동안 했었어요. 그런데 방송사가 플랫폼을 완전히 바꿔서 “TV에서 (프로그램) 만들던 사람들이니까 다른 플랫폼에서도 잘 만들 수 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럴 것 같으면 진작 벌써 이동해서 다른 걸 했겠죠. TV 스크린을 만드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과 다른 플랫폼의 일이 분리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TV가) 예능, 드라마, 작은 것, 큰 것도 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이즈가 좀 큰 것들, TV만 할 수 있는 큰 사이즈의 기획들에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볼 때 TV는 뉴미디어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해요. 왜냐하면 수신료를 내시는 분들이 TV로도 봐야겠지만 스마트폰으로도 보는 데 불편함이 없으셔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우리 회사는 ‘웨이브(Wavve)’ 같은 OTT 서비스 정도로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예를 들어, 다큐 PD들이 웹다큐를 보면서 좋고 재밌다고 생각해서 그런 주제를 가지고 그런 느낌으로 제작을 해봐야 그렇게 못 만들 거예요.

 

그러면 기본을 충실히 하는게 좋겠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TV만 할 수 있는 사이즈에 집중하는 게 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공영방송이 해야 할 주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던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은 밖에서 못 만드는 프로그램이에요. 자료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어느 회사가 1년 동안 PD 6명한테 월급을 주면서 “프랑스 예술 영화처럼 만들어 봐.”라고 할까요. 국장님의 주문이었거든요. 1년 동안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보라는 게. 국장님이 “내가 책임질 테니까 흥행이 안 돼도 관계없어. 근데 되게 특이하고 이상하게 만들어봐.”라고 해서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큰 도전을 한다거나, 젠더, 기후변화, 노동 문제 등 밖에서는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을 하거나 아니면 다루기 꺼리는 주제들을 저희야말로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다양한 주제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금기시되는 것들, 돈이 안 되는 것들, 그런 것을 우리가 다뤄야 하는 거죠.

 

연출에 있어서 선배님의 소신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연출 철학이라고 할까요?

아는 만큼만 얘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저희 <모던코리아> 6편 보시면 아시겠지만 되게 큰 주제들도 있잖아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사이즈는 계속 늘려가고 있지만 그걸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잘 모르는 얘기를 하고 싶을 때도 되게 많아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안 합니다. (웃음) KBS는 다른 데보다 월급은 적지만 “이거는 못 하겠습니다.” 할 때 “그래. 그럼 네가 제작자로서 못하겠구나.”를 존중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줄 수 있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지난 10년간 그게 잘 안돼서 파업을 많이 했죠. 그런데도 시청자분들이 봐주시는 것에 비하면 훨씬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걸 지금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도 안에서는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숭실대는 ( )이다]

나에게 숭실대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학교에 갑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은 학교에 갔습니다. 외로울 때가 있어요. 돌아가신 정재기 교수님이 졸업식 날 저를 이렇게 안아 주시면서 “임 선수, 잘 버텨야 해.”라는 말씀을 해 주셨거든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되게 외로울 때면 노트 들고 차 끌고 학교 커밍홀(지금의 창신관) 자리에 차를 대놓고 그 뒤에 앉아서 기획안을 씁니다. 제가 되게 많은 기획안을 거기서 썼거든요.

 

그래서 학교, 숭실대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고향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약간 좀 힘들 때 굳이 누구 눈치 보지 않고도, 내가 익숙한 골목길이나 테이블이 있고, 뒷문 앞에는 두 번째로 맛있는 이모집이 있고, 그래서 편하게 와서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고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커밍홀 앞에 있는 사과나무도 제가 심어 놓은 거거든요. 아직도 잘 자라고 있는데, 그런 곳이에요.

 

선배님과 같은 진로를 꿈꾸는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누구한테 어떤 직업에 관해서 물어봤을 때 “별로예요. 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사람을 되게 싫어한다기보다는 약간 안타깝다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제 직업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금한 것들을 회사의 비용으로, 뭐 수신료지만, 직접 가서 알아볼 수 있고 이야기도 할 수 있고 하니까. 근데 제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뭐가 막 나는데 보시다시피 지금 얼굴에 난리가 났어요. 약병들도 이렇게 막 쌓여 있고요. 그런 게 좀 있긴 하지만.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고 궁금한 것들이 있으면 여전히도 가장 방송 제작을 하기 좋은 시스템들이 갖춰져 있는 곳이 결국 지상파 방송국들이기 때문에 도전하셨던 직업을 갖게 되시면 되게 좋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근데 뭐 피부는 이렇게 될 수는 있겠죠. (웃음)

 

 

 

 

힘들 때 굳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익숙한 골목길을 거닐며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고 갈 수 있는 곳.” 임종윤 동문에게 숭실은 ‘안식처’였다. 사랑하는 교수님과 일상을 함께 했던 곳, 그리고 나를 알게 모르게 위로해주는 곳. 숭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그의 표현은 졸업을 목전에 앞둔 기자에게 큰 여운을 남겼다. 나에게 숭실대학교도 그런 의미일지, 나만이 가진 숭실대학교의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동시에 4년 동안 숭실에서 머물며 울고 웃던 날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질문을 독자에게로 다시 돌리고 싶어졌다.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는 독자님께 숭실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을 위해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임종윤 동문께 지면을 빌려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건강을 지키며 오랜 시간 동안 숭실의 자랑스러운 동문으로 남아주시기를 기원한다.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10기 노근호(국어국문학과 15학번) ]
[카드뉴스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10기 이다솜(정보사회학과18학번) ]
[영상 제작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10기 조현우(평생교육학과19학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