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만달레이에 초등학교를 건립한 김재옥 동문(철학 73)

2016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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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옥 동문(철학 73)

미얀마 만달레이에 초등학교를 건립한 김재옥 동문(철학73)

 

[인터뷰: 류지희 홍보팀 학생기자(영어영문 12), zhee.ryu@gmail.com]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이면 신년 계획을 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 계획이 1년간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김재옥 동문은 몇 십년동안 꾸준히 자신의 꿈을 위해 투자하고, 결국 자신의 목표를 이뤄냈다. 교직생활 퇴임과 동시에 1억 5천 만 원을 기부해 미얀마 만달레이에 초등학교를 세운 김재옥 동문을 만나봤다.


내 삶의 감독자, 철학

작은 체구의 김재옥 동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또렷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에게 철학과 학창시절에 대해 물었다. “철학과 73학번에는 여자가 나 혼자뿐이었어요. 당시 여자가 대학 교육을 받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었죠. 철학과는 아주 보수적인 학과 중 하나였어요. 의도치 않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격이었던 제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어요.” 그녀는 철학과에 입학 후 1년간 도서관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거의 모든 분야의 개론서를 읽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교양과 상식을 쌓기 위함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지식들이 인생의 지침이 된다고 말했다. “그 때에는 나의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많은 독서를 했던 것 같아요. 미술, 음악, 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이 지식들은 내 삶에서 문득문득 튀어나와 내가 혼란스러울 때 방향을 제시해주었어요.” 김재옥 동문의 주전공인 철학 또한 그녀의 인생 전반에 중요한 감독자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철학은 끊임없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해 고민하고, 가치와 정의를 연구하는 학문이에요. 단순히 진리에 대한 철학이 아닌, 내 인생에 대한 철학도 함께 배웠죠.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결혼할 때에는 전 철학과 교수이자 숭실대 총장이었던 故조요한 교수에게 주례를 받았다. 조요한 교수 같은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숭실대 철학과에는 참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았어요. 수업을 들으며 마음 깊이 감동받은 적도 많아요. 그런 분들의 수업을 들으며 교사로서의 제 모습을 그려나갔던 것 같아요.” 김재옥 동문은 호화롭지 않았던 학교의 모습이 좋았다고도 덧붙였다.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하고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신식 건물들이 들어선 요즘의 학교는 학교가 많이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도 든다는 그녀였다. “93년도는 학교가 발돋움을 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에요. 연구비, 장학금 등을 늘리고 다양한 것을 시도하던 때이죠. 그 때 100만원을 학교에 기부했어요. 당시 제겐 꽤나 큰돈이었죠. 작지만 모교에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선생(先生)’의 자격 

교직생활을 시작하고 몇 년 뒤, 한 학급의 아이들이 그녀를 찾아왔다. 같은 반 친구 한 명을 상담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그 아이는 병석에 계신 아버지와 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소녀가장이었다. 김재옥 동문은 상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결론적으로 그 상담은 완전히 실패했어요. 그 아이는 가출을 일삼고 각종 범죄에도 노출되어 있었어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 아이에게 학교가 무슨 의미였을까요. 당시 그 아이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저 좋게 타이르고 격려해주면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 아이의 눈빛, 영혼 없는 대답을 들으며 ‘이 아이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겠구나. 이 상담은 완전히 실패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 때부터 그녀는 과연 자신이 선생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린 최선의 결정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상담심리학은 김재옥 동문의 교직생활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선, 상담심리학은 실천적인 학문이었다. 배운 내용을 아이들과 상담할 때 써먹을 수 있었고 아이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교감, 교장을 역임할 때에도 상담심리학은 진가를 발휘했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은 교장실에서 직접 상담을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교장실에 부담 없이 찾아와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했다.



필생의 사업, 미얀마 초등학교 건립

네팔에는 일명 ‘돌 깨는 아이들’이 살고 있다. 히말라야 계곡에서 내려온 바위들을 망치로 깨서 건축용 자갈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오랫동안 돌을 깨다 눈에 돌 조각이 튀어 실명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들을 대신해 돌을 깨고 생계를 유지한다. 네팔의 돌 깨는 아이들은 김재옥 동문에게 하나의 목표를 갖게 했다. “우연히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학교에 갈 희망도 의지도 없는 그 아이들이 꼭 오래전 상담했던 그 소녀가장을 보는 것 같았어요. 그 때부터 통장 하나를 만들고 상담심리학 관련 집필 원고료, 출장비 등을 모았어요. 퇴임할 때 그 아이들을 위해 의미 있게 쓰자는 취지였죠. 예전 은행은 이자율이 높았어요. 차곡차곡 모으다보니 돈이 금세 늘어나더라고요.”

2014년 12월 신현중학교 교장 퇴임 직후, 월드비전에 1억 5천만원을 기부하며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싶다고 문의했다. 월드비전은 세계 지부에 학교를 지을만한 곳을 의뢰했고, 미얀마 만달레이가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김재옥 동문이 월드비전에 신신당부 했던 것은 학교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학교 세우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제 필생의 사업이잖아요. 어려운 나라들에 세워지는 학교는 많은데 그 학교들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힘들다고 들었어요. 나는 이 학교가 잘 유지되어서 더 많은 아이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길 원해요.” 김재옥 동문은 2015년 8월 말 준공식에 참석했고, 항공비와 숙박비 등 간접비용 일체를 스스로 부담했다. 조금 더 많은 돈이 학교를 위해 쓰이길 바라는 그녀의 배려였을 것이다. “남편과 함께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미얀마 사람들도 나에게 연신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더라고요. 나라는 한 사람이 한 기부로 인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한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어요.”


▲ 김재옥 동문(오른쪽)과 남편 분(왼쪽)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는 갚진 기회

여러 분야에 대한 독서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은 것처럼,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것이 그녀의 교직 생활을 바꿔놓은 것처럼 준비된 사람에게는 갚진 기회가 찾아온다. “다양하게 경험하고 공부하는 것이 지금 당장은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알 수가 없고 심지어 시간낭비로 생각될 수 있어요. 하지만 꾸준히 준비하면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가치를 발휘하게 되어있어요. 후배들이 능력과 실력을 최대한 키워놓고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좋은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어요.”

▲ 감사패를 전달받는 모습, 김재옥 동문(오른쪽)과 남편 분(왼쪽) 

김재옥 동문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나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살아왔어요. 덕분에 인생을 큰 사건 사고 없이 살 수 있었지만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피곤하게 살았어요. 가끔은 조금은 낙관적으로 즐겁게 활기 있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학교 세우는 일도 이루고. 제 자신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하고 희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 희생이 헛된 수고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김재옥 동문과 같이 숭실의 모든 구성원이 미래를 위해 준비하여 갚진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 김재옥 동문은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담심리학을 공부하였고, 신현중학교 교장으로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퇴임과 동시에 1억 5천 만 원을 월드비전에 기부하여 미얀마 만달레이에 초등학교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