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메이드필름 대표 노종윤 동문(영어영문 82)

2015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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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인의 추억> 제작자
웰메이드필름 대표 노종윤 동문(영어영문 82)

 

[인터뷰: 류지희 홍보팀 학생기자(영어영문 12), zhee.ryu@gmail.com]


‘밥은 먹고 다니냐?’

2003년, 한국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살인의 추억>의 명대사이다. 이 영화는 감독 봉준호와 배우 송광호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킨 영화이기도 하다. 그들을 스타덤에 올리기 까지는 안 보이는 곳에서 영화를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영화제작자 노종윤 동문(영어영문 82)의 공도 컸다. 제작자로서 그가 걸어온 영화 인생을 직접 만나 들어봤다.

영화제작을 꿈꾸던 영문학도

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를 꿈꿨던 노종윤 동문은 영어영문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당시 과대표를 맡고 있었던 노종윤 동문은 한 교수님의 제안으로 32년째 영어영문학과의 대표 소모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원어연극 소모임을 만들었다. 그의 첫 연극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그가 기획을 맡은 이 연극은 전석 매진되어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연극을 준비하다보니 기획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많이 배웠어요. 시행착오도 물론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이 제가 나중에 영화제작을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졸업 후 노종윤 동문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영화아카데미에서도 그는 전공의 덕을 톡톡히 봤다. 당시 대부분의 영화관련 서적이 번역되지 않은 원서였는데, 영문과 시절 많은 책들을 원서로 읽어야 했던 그에겐 남들보다 영화에 대한 지식을 빨리 쌓을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었다.

“영문학과에서 배운 문학적 소양 또한 제가 영화를 제작하는데 있어 기초로 자리 잡았어요. 텍스트를 영상으로 만든 것이 결국 영화잖아요. 저는 이미 영화를 배우고 있었나 봐요”

한국 영화시장, 세계 영화 흥행 성적의 척도가 되다 

노종윤 동문이 본격적으로 영화산업에 종사하게 된 88년도 당시 한국영화의 상영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영화제작에 대한 검열이 심하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았고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도 또한 높지 않았다.

영화산업의 자율화는 세대교체를 가져왔다. 그리고 98년 제작된 영화 <쉬리>는 한국 영화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쉬리> 개봉당시 관객들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우리나라 영화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고들 해요. 영화 <쉬리>를 분기점으로 우리나라 영화 산업이 발전했고, 대중들의 관심 또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노 동문은 줄곧 한국 영화시장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단순히 시각·청각 요소들을 극대화시킨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많아요. 권선징악 구조도 뚜렷하죠. 하지만 한국 영화들에서는 계산된 권선징악을 찾기 힘들어요.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들이 만들어 집니다”

현재 매년 영화 관람객수는 인구수의 3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1000만 관객은 놀랍지도 않을 만큼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작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은 1400만, <명랑>은 1800만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관객들의 영화를 대하는 수준 또한 높아졌다.

그에 따라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관객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적용됐다. 최근 들어 많은 외국영화들이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시장보다 일주일정도 빠르게 한국에서 개봉하기도 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작년 개봉한 <스파이더맨2>, <트랜스포머4> 뿐만 아니라 이번 달 개봉을 앞둔 <어벤져스2> 또한 그렇다. 한국 영화 시장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관객들의 수준은 어지간한 평론가 못지않게 높아요. 영화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크다는 거겠죠. 이런 관객들을 가진 한국에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일이에요”

한국 영화시장에서 제작자로 산다는 것  

영화 제작자라 하면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인데, 제작자가 하는 일이 감독이 하는 일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감독이 창의적으로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제작자는 그 이외의 것들을 모두 맡아서 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됩니다. 우선, 영화를 만들 때에는 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해야 해요. 시기에 따라 관객들의 반응 또한 달라지니까요. 그런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고 어떤 영화를 만들지 고민을 해요. 감독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영화를 마케팅 시키는 것도 제 역할이에요. 영화를 전체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인 셈이죠. 성공하는 영화란 시기적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제작한 영화들 중 어떤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기억에 안 남는 영화가 있을까요? 흥행이 잘된 영화든 실패했던 영화든 결국 제 손으로 만들어낸 영화잖아요.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제게는 이 영화들이 하나같이 다 소중해요”

하고 싶은 일에 뛰어들어라 

영화 산업의 세대교체 이후 그는 영화와 동반 발전한 1세대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솔직히 처음엔 참 배고팠어요. 막내로 들어갔을땐 인건비조차 받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어디다 불평을 할 수도 없었어요.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좋은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진입장벽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어렵다. 그는 후배들이 아직 성장이 많이 되지 않았거나 세대교체가 안 된 산업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 취업에 치여 자신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는 잊고 사는 것 같아 참 안타까워요.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함께 성장한다면 그보다 뿌듯한 일이 있을까요?”

아직도 성숙해지는 중이라는 노종윤 대표는 긍정에너지로 가득해 보였다.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한국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응원한다.

  
 

*노종윤 대표는 본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싸이더스 영상본부 이사, 웰메이드 스타엠 대표이사 등을 거쳐 현재 웰메이드 필름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살인의 추억>,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범죄의 재구성> 등 수많은 한국 영화를 제작하였다. 매년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등 한국 영화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