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콜 1억臺 생산 신화의 주역 – 김종호 동문

2006년 6월 14일
13685

애니콜 1억臺 생산 신화의 주역 –
 자랑스런 숭실인, 김종호 동문

 삼성전자 전무 김종호(전자공학과 77학번)

 김종호 동문은 1983년 삼성에 입사해, 연간 휴대전화 1억대 생산돌파의 신화를 만든 주역으로 꼽힌다. 최고를 지향하며 늘 최선을 다해왔을 뿐이라는 그에게는 자랑스런 삼성인상의 영예가 주어졌다.


 자랑스런 삼성인이 되기까지

 작년 말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은 것은 내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기가 되었다. 삼성인상은 심사기간만 3개월이고, 상을 받게 되는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이다. 상을 계기로 입사 이후 전 과정을 복기(服忌)하게 됐다. 사회생활 22년을 돌아보는 정리와 반성의 시간이었고, 앞으로의 계획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알다시피 전자공학 전공이다. 하지만, 처음 입사했을 땐 전공과 동떨어진 생산관리 파트에 배치를 받았다. 자재관리, 창고관리, 운반, 스케줄링… 하기 싫은 업무였지만 최선을 다한 결과 순탄한 진급을 거쳐 결국 95년 1월 제조부장에 임명됐다.
 사실 그 전까지는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었지만, 그때부터는 일의 성과를 이루는데 부서 전체의 팀워크를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부서원들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제조부장을 맡으면서 팀워크를 위해 함께하는 업무, 리더십 등을 개발해야 했다. 당시 사내에는 제조부장이 30명 넘게 있었는데, 다행히 부서원들이 잘 따라와주어 결국 2년 뒤에는 내가 맡은 부서가 회사 전체적으로 주목을 받는 사업장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감동적인 일도 많았다. 우리가 어떤 성과를 거둘 때 마다 직원들 3천명 이상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1~2분 내로 답장이 쇄도한다. 경력 4~5년 이상 된 조장들을 모으면 2백 명 이상인데 모두 함께 야간산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중간간부들에게 위임했지만 예전에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6개월 동안 통장 검사를 해서 80%를 저축하도록 독려한 일도 있었다. 진심으로 사원들 입장에서 생각하고자 했고, 사원들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사원들은 고맙게도 이러한 나의 진심을 이해하고 따라와 주었다. 돈독해진 팀워크의 결과는 휴대폰 1억 대 생산이라는 결과의 밑바탕이 되었다.


 인생에서 지키고자 한 약속들

 숭실 재학 당시부터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최고가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 왔다.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함께 노력했던 우리 과는 교내 체육대회 우승기를 항상 차지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도 이런 마음가짐은 나를 항상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94년 사내체전 당시 1200명 차장 가운데 달리기 대표 선수였으며, 사내 부서 대항 기네스대회에서도 단결된 모습으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현재도 현장에서 최고의 품질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만드는 사람의 노력이 각별해야 함을 늘 명심한다. 매일 5시 30분에 기상해서 5시 50분까지 헬스장에 도착하고, 7시까지 운동을 하고 바로 사무실로 출근한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고되고 귀찮더라도, 임원으로서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독려하며 계속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조직 전체를 위해서도 자신이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어를 개인교사와 함께 매일 공부한다. 잘 못하는 외국어 공부이긴 하지만, 조직의 학습문화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세상살이의 기본이며, 나와의 약속인 것이다.


  성장하는 숭실을 기대하며

 숭실에 대한 애틋함이 없는 동문도 있을까. 대학 1, 2학년 때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다하면서 자못 터프하게 보냈다. 군대 가기 전까지 활동했던 KUSA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군대 제대 후엔 활동을 하지 못한 까닭에 많은 얘기를 들려주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쉽다. 운동도 열심히 했고, 좋아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체육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다. 1, 2학년을 자유롭게 보낸 만큼 대학 3, 4학년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도서관에 제일 먼저 들어가고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등교할 때 나의 손에는 도시락이 2개씩 들려있곤 했다. 졸업 이후 학교에 자주 가보지도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학교의 높아진 위상과 각계에서 활약중인 동문들의 소식에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곤 한다. 축구팀의 활약 또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후배들에게 꿈을 가지고 임하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반짝거리고 있는 눈을 하루 만에 풀어버릴 것이냐, 10년 동안 간직할 것이냐, 아니면 20년 넘게 간직할 것이냐는 본인 하기에 달려있다. 이번에 신입사원 80명 중, 숭실대 출신이 5~6명 정도 있다. 직접 만나 드러내놓고 반가워해 본 적은 없지만, 후배들에게 느끼는 반가움이 남다르다. 사실 핸드폰 생산의 개발, 제조기술, 생산 영역에서 R&D 파트와의 차별을 느끼는 후배들도 많은데 그런 후배들에게 내가 해주는 조언은 네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 네가 그 분야의 전문가인가, 아닌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네 자신을 믿고 특화 시키는 노력을 하라고 이야기해준다. 영어공부를 게을리 말 것과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자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정리/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