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마펫(Howard F. Moffett) 박사

2006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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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Moffett), 대를 잇는 한국 사랑의 이름

 성은 마포. 이름은 화열. 얼핏 들으면 중국 사람의 이름처럼 들리는 이 이름은 Howard F. Moffett(하워드 마펫) 박사의 한국 이름이다. 1917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평양 숭실대학교 3대 학장(1918~1928)을 역임한 마포삼열(Samuel A. Moffett)박사의 아들이다.

 1917년 평양에서 태어난 마펫박사는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49년 내한한 이후 대구 동산기독교병원 원장으로 활동해왔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는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미군에 자원입대해, 군의관의 신분으로 병원환자들을 돌봤다. 이후 대구에 정착해 동산기독교병원 원장과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동산병원을 지역의 대표적인 종합병원으로 만드는데 평생을 바쳐 공헌하다가, 1993년 은퇴했다.


 숭실, 아버지, 3·1운동

 현재 어머니의 고향인 캘리포니아주 카핀테리아에 살고 있는 마펫박사는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잠시 입국했다. 10월 10일 개교기념일에 열린 박사학위수여식에서 그는, 아버지의 땀과 눈물, 그리고 자신의 추억이 어려 있는 학교를 찾게 된 감동을 숨기지 못했다.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가 학장으로 있을 때 일어났던 3.1운동을 회고했다.

 “숭실 교정에 태극기가 걸리고 학생들이 몰려와 뛰어다니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그 모습에 어린 저와 형도 덩달아 뛰며 ‘만세, 만세’를 외쳤지요. 경찰이 집에 들이닥치고, 아버지는 학생들이 몰래 만든 태극기를 사수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내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했던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이, 나와 내 가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말로 다 하기 어렵군요.”

 1917년부터 35년까지 평양에 살면서 소년시절을 보낸 하워드 마펫박사는 평양숭실학교의 교수, 학생들과도 깊은 교류를 가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외국인학교에 다녔는데, 숭실학교 학생들과는 곧잘 테니스, 야구, 축구와 같은 친선경기를 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축구만큼은 평양 숭실 학생들을 이길 수 없었다며 웃었다. 한국인과의 우정은 그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쳐, 숭실 출신의 학생이자 선생이기도 했던 Sam Hwang(한국명 미확인)은 자신이 의사의 길을 택하는데 결정적인 조언을 했다고 한다.


 의사의 길을 통해 선교의 사명을 실천하다.

 이후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돌아와 6.25 전쟁과 같은 민족의 시련을 고스란히 함께 했던 그는, 전쟁이 끝나고 대구에 정착한 이후 60병상의 작은 병원이었던 동산병원을 1,000여 병상의 대형의료원으로 성장시키는 뛰어난 경영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의사, 혹은 병원경영인의 삶으로 규정짓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선교사’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전도할 능력이 없는 대신, 사람들을 치료함으로써 하나님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한국의 의사로 부르셨습니다.”

 그의 아버지 마포삼열 목사가 3백여 소학교와 숭덕, 숭실, 숭의 등 많은 기독교학교를 설립하고 10만여 교인을 길러낸 1세대 선교사라면, 그는 2세대 선교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포삼열 목사가 미국 귀신 물러가라고 던진 돌에 맞아 쓰러졌던 평양 땅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들어온 것처럼, 그는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뒤로 하고 전쟁 중인 한국으로 들어와 평생을 한국인과 함께 했다.



 숭실을 일군 개척자의 땀과 기도로

 “숭실을 세운 선교사들의 열정이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제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감시하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본경찰에 매일같이 불려 다녀야 했습니다. 어느 날 측근을 통해 경찰이 그를 살해할 계획임을 알게 돼 1936년 서둘러 한국을 떠나야 했지만, 193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버지의 마음은 늘 한국에 있었습니다. 저는 숭실대학교가 기독교적 가치 위에 더욱 견고하게 서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학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숭실’ 이라는 이름에는 개척자의 땀과 자부심이, 선교자의 눈물과 기도가 깃들어 있다, 고 그는 말하는 듯 했다. 굴곡진 한국역사와 함께 했던 초기 숭실인들의 신념과 열정. 그 명예와 사명감으로, 숭실은 더 빛나야 한다고.   글/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