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정답찍기 교육 수조원 쓰며 대학투자 가장 인색한 韓 ‘낡은 패러다임’ 미래없다

2023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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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식 숭실대학교 총장 매일경제 명예기자]

 

미래 준비하는 교육개혁으로 가는 길

◆ Big Picture ◆

대한민국 교육 문제와 중도가 없는 사회적 관계 정상화의 첫걸음은 수능제도 정상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 자격 제도로서 수능을 본래 자리에 위치시키고 학생 선발 자율권을 대학에 과감하게 맡기는 조치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초당적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최대한 활용하자. 또한 대한민국 발전을 선도해온 교육이 기술 대전환 시대를 성공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대학 재정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대단하다. 배움을 존중하는 유교문화 전통일 수도 있고 교육을 통한 사회·경제적 지위 상승에 대한 욕구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강한 나라다. 그 결과 학교는 거대한 사회적 선발장치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학력을 증명하는 학교 졸업장은 개인의 능력과 수준을 나타내며 이는 곧 그 사람의 신분을 말해준다. 문제는 한국에서 교육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적 측면이 과도할 정도로 크다는 점에 있다. 최근에 불고 있는 소위 ‘의대 진학 열풍’ 현상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선발의 목적에 지나치게 치우칠 수밖에 없으며, 신뢰성과 객관성이 높은 표준화된 측정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나라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바로 이러한 교육관과 평가관에 입각한 대표적인 제도다.

몇 문제 틀리고 맞느냐에 따라 동일 대학 내 학과 간 커트라인이 달라지고, 대학 간 커트라인과 대학 서열이 정해지는 상황에서 오지선다형 출제 방식은 ‘객관성과 표준화’라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사생결단의 목표가 된다.

문제를 풀이하는 과정에서의 일관성과 논리에 대한 보상인 ‘중간점수’라는 과정이 실종되었다. ‘맞거나, 틀리거나’ 식의 OX 구조형 수능이 일생을 결정짓는 대학 입학 선발 방식의 주류로서 진행됨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자못 심각하다.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서 한국은 중도와 타협이 자리하기 어려운 이분법적 사고의 나라가 되었다.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식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나타난 치열한 양극화의 이면에는 단순한 팬덤 현상만이 아니고 수능 형태 선발 방식을 정점으로 한 교육제도에도 큰 책임이 있다.

▲ 문제 해결형 교육 방식으로 변화 필요

선발적 교육관과 평가관에서는 소수의 한정된 과목에 대한 개인 학습자의 학업적 성취(academic achievement)를 강조하는 이론 중심의 아카데믹 모델(academic model)에 근거한 교육 패러다임이 우세하게 된다. 교육의 목표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이른바 주요 과목에 대한 학업 성취가 되며, 미래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 주요 과목에서 다루고 있는 교과 내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또한 특별한 교수·학습법이 필요하기보다 교실을 통제하고 더 많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지식과 이론 중심적인 접근 방식에 매몰되게 된다. 그 어느 때보다 세상과 현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 성공적으로 키워낼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 대한 탐구와 실천 방안 수립이 필요하다. 이론 중심의 아카데믹 교육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문제해결사형(solutionary)’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문제해결사’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식별해내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개발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주요 과목에 대한 학업 성취가 교육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며, 시대 변화에 맞게 교육을 통해 필요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에 실제로 그 역량을 활용하여 우리 삶과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함으로써 성과를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훨씬 다양한 형태의 산학협력 교육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 교권 보호와 선발 방식 자율화

‘문제해결형’ 교육이 대학교육에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유아교육부터 초·중·고교 교육 과정에서 협업하고 토론하고 타협하며 ‘정답’을 찾아가는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교육개혁의 주체로서 초·중·고 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공교육의 가장 중심축인 교사를 둘러싼 최근의 교권 보호 이슈는 이런 점에서 차제에 과감한 보완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교육개혁이 모두 잘못되었던 것은 아니다. 촌지와 체벌이 사라진 교육 현장에서 상대적으로 학생 보호에 관한 과도한 규정이 교사의 권위와 공교육 붕괴를 가져오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교사를 개혁 주체가 아닌 개혁 대상으로 삼는 순간 교사의 권위는 무너지고 공교육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교권과 학생 보호의 적정한 균형점을 조속히 회복시켜야 한다.

교육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학생 선발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변화를 거친 대학입시제도가 그다지 효과를 보지 못한 이유는 기존의 아카데믹 교육 패러다임 틀 안에서만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본래의 취지대로 대학에 수학할 수 있는 기본 능력만을 평가하고, 평가의 메인 요소는 문제를 발견·정의하거나 해결하고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된다.

수능점수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입시선발제도는 대학에 가장 편의적인 방식이다. 객관성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입시 선발 방식과 권한을 대학에 과감히 이관하자. 본고사를 부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사회의 잘못된 편견 구조를 정상화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면서도 글로벌 트렌드에 미치지 못하는 중진국형 선발 구조를 과감하게 탈피할 시점이다. 이미 2028년 대학입시 선발 지침이 발표된 상황이다. 모든 학부모가 교육 전문가인 상황에서 학부모와 예비 대학생들의 대학입시에 혼선을 주지 않아야 된다. 수능을 절대 기준으로 하는 현재 선발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각 대학들은 자율화된 다양한 입시제도가 포함된 전반적인 개혁 준비작업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 국가교육위원회 적극 활용해야

국가교육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국가교육위원회의 가장 큰 장점은 동 기구가 초당적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년마다 진행되는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지속 가능한 중장기 교육정책을 도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교육개혁이나 국가교육발전계획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기반이 제도적으로 구비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이자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대학 자율에 기반하며 정치적 색채가 적은 새로운 입시제도를 마련하기에 최적의 조직기구다. 교육 대개조를 위한 정당 추천위원들의 대승적인 협력이 선결과제다. 교육부는 현재 제도에 기반하되 가능한 대학의 자율 권한과 재정확충 부분을 보완하는 교육정책에 집중해주기를 요청하고 싶다.

 

▲ 대학재정 과감하게 확충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조사한 ‘2023 대학 총장 설문’ 결과에 따르면 대학 총장들의 주된 관심 영역은 최근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사회 현상과 맞물려 초래된 대학의 재정위기, 학생 충원율 그리고 정부의 대학 등록금 인하·동결 정책 기조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장들이 지적한, 현재 한국 대학이 처한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들을 직시하자.

첫째는 우리나라 고등교육재정 확충의 필요성이다. 세계적으로 고등교육 이수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주요국과 비교할 때 인구 1만명당 학생 수가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등교육에 대한 학생 1인당 정부 부담 공교육비 투자 규모는 OECD 주요국에 비해 가장 낮다.

둘째, 고등평생교육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생태계 조성이다. 전통적으로 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시제도를 통해 진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어 왔다. 인구 구조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있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고등평생교육 관련법, 제도, 재정, 교육과정, 교육 방법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교육 수요자의 전공선택권 확장올해 초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3년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 계획의 평가 지표와 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대학의 교육혁신 전략의 주요 추진 내용으로 모집 단계에서 전공·학과 등의 구분을 없애 입학 이후 전공탐색을 거쳐 전공선택권을 부여하고, 지역·사회 수요 등을 고려한 학과·계열 등의 개편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 차원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다. 좁게는 입학 자원 감소에 따른 대학의 구조 변화를 위한 방안이라고 볼 수 있으나 사실상 대학교육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 대전환 시대와 100세 고령화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이다. 치열하게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 한국 교육에 대한 대개혁을 시작해야 될 시점이다. 수능제도 정상화를 위해 국가교육위원회와 교육부 간 유기적 협업이 필요하다. 대학 운영을 대폭적으로 자율화하되 책임 있는 교육기관으로서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엄중하게 평가와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지금부터 마련하자.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지 기관인증평가 작업을 하되 평가지표가 다양한 대학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부분은 없는지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SK를 배출한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양질의 고급 인력을 위한 교육투자에 기인한다. 또 다른 20년 뒤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대학에 대한 교육투자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장범식 숭실대학교 총장 매일경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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