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숭실 출신 3명 독립유공자로 포상

2018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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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숭실 교정에 게양되었던 태극기)

평양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숭실 출신 3명 독립유공자로 포상

 본교는 2018년 제79회 순국선열의 날을 기념하여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을 하여 숭실 출신 이겸호(애족장), 박기복(대통령표창), 이양식(대통령표창)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게 됐다. 포상은 오는 17일 순국선열의날 기념행사에서 진행된다.

 이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이겸호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평양시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 선고를 받았다. 대통령표창에 추서된 박기복 선생도 평양시내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고 1920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양식 선생도 3.1운동 시위 도중 체포되어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본교 한국기독교박물관(관장 황민호)은 작년 숭실 개교 120주년을 맞아 숭실 출신 독립 운동가를 발굴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물들을 조사하여 공적조서 및 평생이력서를 작성, 국가보훈처에 공적을 신청했다. 그 결과, 2017년 광복절 독립유공자로 김양선(건국포장), 김태술(애족장), 김형두(대통령표창) 선생이 포상 받았고, 2018년 광복절에도 서울 숭실대학 제3대 학장을 역임한 고병간 박사가 애족장을 수훈하였다.

 황민호 관장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앞으로도 숭실 출신의 독립 운동가를 발굴하여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함으로써 민족자존의 기치를 세운 선배들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을 기리는 계기로 삼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파악한 숭실 출신 독립유공 포상자는 총 83명이다.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05년 11월 17일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에 항거하여 순국한 애국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37년 ‘순국선열 기념일’을 제정하였고, 정부에서는 이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여 순국선열의 희생정신과 독립정신을 기리고 있다.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 포상자 명단>

이겸호(李謙浩) 선생 약력

– 1898년 6월 21일생, 평안남도 평양부 경창리 (平安南道 平壤府 景昌里) 83번지

– 1917년 숭실중학 제13회 졸업, 1923년 숭실대학 제14회 졸업

1919년 3월 1일 평양 숭덕학교(崇德學校)에서 개최된 고종의 봉도식(奉悼式)에 참여하여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를 비롯한 김태술 등 만세운동의 주모자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여 미국인 선교사 마펫(S. A. Moffett, 馬布三悅) 사택에 은신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도중에도 경고문(警告文)을 인쇄하였다. 그러나 결국 만세운동의 주모자들은 1919년 4월 5일 일본 경찰의 대대적인 가택 수색으로 모두 체포되었다. 이 때 체포된 이겸호는 1919년 7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및 출판법(出版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상고하였지만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박기복(朴基福) 선생 약력

– 1902년생, 평안남도 평양부 상수구리 (平安南道 平壤府 上水口里) 130번지

– 1920년 숭실중학 제16회 졸업

1919년 3월 1일 숭실중학 학생으로 평양 시내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모우리(E. M. Mowry, 牟義理) 교수(하단 참조) 사택에 은신하다 숭실대학생 김태술 등과 함께 4월 4일 체포되었다. 1920년 숭실중학을 제16회로 졸업하고 곧바로 숭실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0년 5월 평양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가 숭실중학생 최인식(崔仁寔)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양식(李養植) 선생 약력

– 1896년생, 평안남도 평양부 신양리(平安南道 平壤府 新陽里) 24번지

– 1919년 숭실중학 제15회 졸업

1919년 3월 1일 평양 숭실중학 학생으로 崇德學校에서 개최된 고종의 奉悼式에 참여하였으며, 그날 밤 8시 반 숭실학교에 악대 연습을 위해 모인 학생들과 함께 만세를 고창하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교정을 한 바퀴 돈 후 시내를 행진하다 체포 되어 같은 해 5월 20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 참고자료: 용수를 쓴 모우리(E. M. Mowry, 牟義理) 교수

1919년 3월 1일 평양 숭실대 학생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경찰에 쫓기다 모우리 교수 사택에 숨어들자, 이들을 숨겨준 죄목으로 4월 15일 평양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을 받은 후 감옥으로 이송될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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