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학협력의 효시, ‘평양숭실 기계창’ 사진자료 최초 공개

2014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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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학협력의 효시, 
‘평양 숭실 기계창’ 관련 사진자료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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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숭실대 기계창이 우리나라 산학협력의 효시임을 입증하는 귀중한 사진 자료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15일 오전 베어드홀 4층 회의실에서 기증자 윤명호 목사 일행과 한헌수 총장 등이 만나 ‘평양숭실 기계창 사진자료 기증식’을 가졌다. 윤명호 목사는 당시 숭실기계창 창장 및 기술학습원장을 맡았던 故윤기화 장로(1880년~1958년, 아래 사진)의 아들이다. 기증식에는 윤 목사의 오랜 지기인 본교 영문과 56학번 강은홍 목사(위 사진 우측)가 윤 목사를 대신해 참석했다.

 

 1897년 신앙과 지식이 조화된 ‘실용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평양 땅에 ‘숭실’을 세운 베어드 박사는 출범 초기의 입학생 대부분이 성적은 우수하나 경제 형편이 어려운 사정을 알고 당시 미국에서 널리 행해지던 산학협력 모델인 ‘학생자조기관’을 도입, 학생들이 근로활동에 참여하며 등록금과 기숙사 비용을 마련할 뿐 아니라 졸업 후 자립과 직업선택에 유용한 기술 교육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 안라공업소(기계창의 개명) 사무·직공요원(일부는 숭실학생, 1937.1.19) : 미 북장로교 선교회 직속 목공, 철공 공업소로서 당시 중학교, 전문학교에 장학금을 지급했다. 앞줄 가운데 앉은 분이 윤기화 장로.

 처음엔 건축노동 등 단순한 일만 하다 점차 일거리가 다양해졌고 특히 1902년 미국인 목재상 사무엘 데이비스가 후원한 학생자조사업 발전기금 5천 달러로 교내에 110평 규모의 ‘T’자형 공장을 지어 이를 ‘기계창(機械廠’, The Anna Davis Industrial Shop)이라 명명하기에 이른다.

 특히 1907년 미국 병기 제조창의 전문경영인 맥머트리 장로가 기계창을 맡아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기 시작하면서는 목공, 철공, 주물, 유리공 등 기술 교육 종류와 사업 규모가 대폭 늘어나게 됐다. 기업과 학교 간 협업의 기틀이 본격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연간 약 100여명의 학생이 기계창 작업으로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고 여기서 익힌 기술능력으로 이후 우리나라 산업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방직업계를 대표하는 일신방직의 설립자이자 숭실의 2~4대 이사장과 9대 총장을 지낸 김형남 박사가 이곳 기계창 출신이다.

 이날 기증식에는 한헌수 총장을 비롯해 김회권 교목실장, 김선욱 대외협력처장, 권영국 한국기독교박물관장, 김지현 홍보팀장, 김문권 발전협력팀장, 한명근 학예팀 과장 등 숭실대 관계자들과 방지일 영등포교회 원로목사, 림인식 노량진교회 원로목사, 강은홍 목사(영문과 56학번), 양해건 목사(철학과 65학번), 김종택 목사(대한민국군목회 명예이사장), 김용기 목사, 지상섭 목사, 박형종 영락교회 원로장로(전 인제대 부총장), 최용익 전 숭의여고 교사, 김옥수 범석박물관장, 유정선 권사, 유정실, 이창훈, 이현미(이상 윤명호 목사 가족) 등 윤명호 목사 관계자 일행이 참석했다. 

 한헌수 총장은 "숭실대가 평양에서 문 닫고 서울에서 재건한지 60년이 되는 뜻 깊은 올해, 윤명호 목사께서 평양에서부터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사진을 우리 학교에 기증해 주신 것에 특히 더 감사한다"며 "이 역사적인 사진은 우리 학교가 소중하고 훌륭하게 사용하고 자랑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문권 발전협력팀장도 “오늘 공개된 사진들은 하나같이 우리나라 산학협력의 역사를 처음 쓰기 시작한 평양 숭실 기계창의 당시 모습들을 생생히 증거하고 있다”며 “창조와 융합이 화두인 요즘, 창의적 실용인재 육성을 위한 창조융합교육은 이미 117년 전 이 땅의 숭실대학에서 실현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기증품에 담긴 뜻과 의의를 설명했다.

홍보팀 (pr@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