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파피루스·루터의 성서… 희귀한 기독교 유물들 서울에 왔다

2024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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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서 해외 기독교 유물 초청전

‘해외 기독교 유물 초청전’이 다음 달 30일까지 서울 동작구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중국에서 발견된 실크로드의 필사본 모습.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각 나라에 단편적으로 흩어진 희귀 성경 유물을 한자리에서 시대순으로 볼 수 있어 무척 유익했습니다.”

국내 한 신학대 지도 교수가 제자들과 최근 서울 동작구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해외 기독교 유물 초청전을 함께 관람한 뒤 박물관 측에 전한 말이다.

숭실대가 미국 비영리 기독교 문화전시재단인 인스파이어드 전시회와 협업해 ‘영감, 흔적, 숭실(Inspiration, Traces, Soongsil)’을 주제로 국내외 희귀 기독교 유물 210점을 대중에 선보여 학계와 교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 10일 개막 당일 2000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다녀갔고 현재 하루 평균 300명이 전시회를 찾고 있다고 한다.

한국기독교박물관 관계자는 7일 “신학대와 교회 단체 관람이 이어지고 있다”며 “1층 입구 쪽에 토라 필사 체험 공간은 중고등학생 관람객에게 인기”라고 밝혔다. 초청전에는 자원봉사자 7명이 도슨트(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2층 전시장 마지막 공간엔 숭실대 재학생이 제작한 ‘숭실의 현재’ 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숭실대 개교 127주년과 서울숭실세움 70주년 기념으로 의미를 더한다. 특히 서울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다. 오정현 목사는 현재 숭실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기독교박물관의 세계화에 포문을 열며 국내 유서 깊은 교회에 흩어진 유물들의 안정적 보존에 대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 목사는 “김장환 목사님을 통해 인스파이어드 전시회 대표를 만나 귀중한 성경 유물을 접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등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시작한 특별한 전시회”라면서 “기독교 정신과 민족의 염원이 만난 역사를 지닌 숭실대에서 성경 유물과 기독교 역사를 조망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을 통해 기록된 성경의 일치성과 역사성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는 성서의 기록과 전파 과정을 3부로 나누어 관람객에게 전한다. 1부와 2부는 인스파이어드 전시회에서 출품한 메갈라 타르굼 고문서, 파피루스, 마르틴 루터의 성서, 킹제임스성경(KJV) 초판본 등 희귀한 기독교 유물 130점이 전시되고 3부는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본 중 한국 기독교 역사와 숭실대의 기독 정체성을 보여주는 유물 80점이다.

라틴어 시편과 중세 영어 번역·주석과 위클리프 로마서 비플리오, 윌리엄 틴들의 신약성서, 커버데일성서, 킹제임스성경 등이 전시돼 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관람객은 1부인 영감 편에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증거와 중세 시대의 필사본을 통해 성서 역사와 배경을 접할 수 있다. 대이사야 두루마리, 파피루스 52 등은 성서 기원을 이해할 수 있는 주요 유물이다. 대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사해사본 가운데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로 발견됐고 내용은 현대 히브리어본 본문과 거의 같아 놀라움을 준다. 파피루스 52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파편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수님이 빌라도와 나눈 진리에 관한 논의가 기록돼 있다. 대량 성서 제작 전성기에 프랑스 파리에서 만들어진 라틴어 불가타 성경과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을 부르심의 내용이 적힌 인도 은제 토라 케이스와 토라도 눈여겨볼 만하다.

2부 흔적 편에서는 독일의 종교개혁자이자 신학자인 마르틴 루터의 사상과 종교개혁의 영향을 체감하고 관련 유물을 통해 당대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면죄부 논쟁을 보여주는 각종 서적과 논문, 루터의 95개조 반박문과 바르트부르크성에서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서 원본, 최초의 영문 성경 등이 전시된다. 1611년 제임스 1세의 명령에 따라 번역된 KJV는 가장 영향력 있는 번역 중 하나로 꼽히기에 관람 가치가 높다.

다양한 공문서용 인장과 반지, 히스기야 왕과 예언자 이사야의 인장 모습.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루터의 구약성서는 당대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인 루카스 크라나흐 더 엘더가 제작한 23개의 목판화와 3개의 삽화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이밖에 영국 작가이자 침례교 설교자인 존 버니언이 출판한 존 버니언의 성서, 영국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였던 토머스 모어가 감금 기간에 쓴 ‘영성체와 면죄부에 관한 논문’도 눈길을 끈다.

3부에서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적 배경과 전파 과정이 담긴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숭실대는 19세기 말 한글 성경의 번역과 한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의 헌신이 기초가 돼 1897년 평양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이후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됐다가 1954년 한경직 김형남 김양선 같은 인물들의 헌신으로 서울에서 재건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숭실대 설립자인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 베어드(한국명 배위량)가 사용한 ‘베어드 갓’이 전시돼 관심을 끈다. 2006년 베어드 선교사의 후손이 기증했다. 최초의 한글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전서도 볼 수 있다. 원본은 1887년 만주 봉천에서 출판된 최초의 한글신약전서로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 당시 한국 기독교인과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 매킨타이어와 함께 번역한 최초의 한글본 신약성서로 국내 자생적 신앙 공동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꼽힌다.

이번 전시는 한국기독교박물관 1, 2층 전시실에서 12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휴관일은 매주 화요일이다.

 

 

홍보팀(pr@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