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평화통일연구원과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가 ‘체제변화와 북한 도시민의 삶’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사진=숭실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북한에서 당장 1990년대처럼 아사자가 속출할 가능성은 작지만 취약계층의 식량난은 여전히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성열 숭실대 교수는 8일 숭실대 숭실평화통일연구원과 동국대 북한학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인 1990∼2000년과 대북제재가 본격화한 2016∼2022년을 비교 분석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1990년대 북한의 국내 식량 생산량은 349만∼440만t 선이었으며 수입이나 국제기구 원조 등으로 매년 100만t을 웃도는 식량이 추가 반입됐다.
2016∼2021년 북한의 국내 식량 생산량은 440만∼482만t 정도였는데, 대북제재와 북중무역 감소로 외부 유입량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즉 1990년대와 지난 6년간 전체적인 식량 총량이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두 시기 기근 유무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최소 20만여명에서 최대 350만명 이상이 숨진 반면, 오늘날에는 그런 대기근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2020년 인구(2천510만명)가 1995년(2천170만명)보다 더 많다.
박 교수는 그 이유를 생산과 분배 방식의 변화에서 찾았다.
1995∼1996년 대홍수와 1997년 가뭄 등 자연재해로 당시 식량 생산량이 예년보다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분배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북한 정권은 식량상황이 악화하자 제한된 자원을 차별적으로 지원했다.
지역 면에서는 평양 등 선택된 곳 위주로 공급하며 소외지역인 함경도에 사망자가 집중됐고, 신분 면에서는 군대 등 특권계층이 국가배급 식량이나 원조식량을 빼돌렸다.
또 농민들은 직접 경작으로 최소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 계층은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식량을 구할 수 없었다.
이와 달리 2020년대 전후로는 상황이 달라졌다.
박 교수는 전국에 산재한 400여 곳 시장이 잉여 쌀과 정보를 유통하고, 북한 주민 대다수가 텃밭이나 뙈기밭, 경사지 등에서 개인 농사를 짓는 것이 국가적 식량 위기를 막고 있다고 봤다.
북한 당국이 제시한 기업소와 협동농장의 책임경영제, 사회주의기업 책임관리제 등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방안들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효과를 냈을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앞으로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식량 위기론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대내외 무역이 줄어 궁극적인 식량 외부 도입량이 줄어드는 데다, 방역 강화에 따른 이동 통제로 장마당 활동도 위축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내 배급제 붕괴와 시장화의 진전으로 개인 간 빈부격차가 부각되면서 소득이 없거나 부족한 계층과 노약자, 장애인, 영유아 등 사회적 약자층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커졌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공급량 부족에 대응해 정부가 국제사회와 협조하여 인도적 자원의 식량 지원을 적극 검토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의 농업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기술 지원이나 북한의 시장 및 경제적 제도개선 자문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