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 양주동 박사는 1928년에 숭실전문학교의 교수로 부임하여 1938년 숭실이 신사참배 거부사건으로 학교의 문을 닫을 때까지 만 10년간의 숭실과 함께 생활하였다. '금성'이나 '문 예공론' 등을 통하여 문단활동에도 왕성한 의욕을 보였을 뿐 아니라, 숭실의 문예적 전통을 공고히 하는 데에도 기여함이 컸다. 1915년 숭실의 교지인 '숭실학보'의 창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등 양주동 박사의 숭실학풍에 대한 기여는 지대하다. 그는 숭실 문예활동을 한국문단사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민족의식을 일깨워준 교수로서 숭실의 영원한 스승상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