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위로하는 작가, 소설 <그 남자의 방>의 김이정 동문(철학84)

2013년 11월 20일
126392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로 등단

소설집 <그 남자의 방>, <도둑게> 펴내고,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속의 사막> 등 집필

 

[인터뷰: 최한나 홍보팀 학생기자(기독교 09), skyviki@naver.com]

김이정(본명 김정숙) 동문과의 만남은 인사동의 예스러운 카페 ‘볼가’에서 이뤄졌다. 이곳은그녀의 소설「능소화」에서 두 여자가 만난 장소이기도 한데, 두 여자가 만날 때처럼 가게에 손님은 드물었다. 두 여자와 꼭 같이, 김 동문과 대추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직장을 그만 둔 백수가 하릴없이 느꼈던 사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글을 써야한다는 20대 초반의 불안한 그 두 마음을 얘기하는데, 그녀의 글이 왜 위로하는 글일 수밖에 없는지를 알 것 같았다.

스물다섯에 시작한 대학생활

조금 늦은 시작이었다. 스물다섯에 대학에 입학한 김 동문. 지체가 없었다면, 84학번을 단 그 해에, 그녀는 벌써 졸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쓰지 못했기에, 그녀는 20대 초반을 그대로 앓는 채, 보냈다.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공부를 하기보단 돈을 버는 것이 맞았어요. 그래서 취직을 했는데, 일 년 반도 일하지 못했네요.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쓰기 위해 공부가 하고 싶었거든요.” 이후 5년 가까이를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주변인으로 지내며, 그녀는 제 안의 욕망을 더욱 선명히 확인했다. 결국, 김 동문은 가족을 설득한 끝에, 본교 철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철학과에 진학한 딸을 어머니는 못내 못마땅해 하셨다. 교사자격증이 나오는 국문과가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셨다. “어머니와 많이 싸웠어요. 그래도 깊은 이야기를 쓰려면, 철학적 기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철학과를 선택했어요. 입학해서는 국문학을 부전공하며 미학, 예술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김 동문의 부부는 철학과 커플이다. 철학과 대학원생이었던 남편과 1학년 때부터 키워온 둘의 사랑은, 과내에서 미리 결혼을 점지할 정도로 유명했다. “과 커플이어서 둘이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결혼식도 본의 아니게 과 행사처럼 치러졌지요. 당시 총장으로 계셨던 조요한 선생님께서 주례를 해주셔서, 철학과 친구들, 교수님들 모두 결혼식에 와주셨어요. 축가도 불러줬고요. 한복을 입고, 풍물패 동아리와 함께 학교도 한 바퀴 돌았어요.” 지금은 사라진 구 채플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는 김 동문에게 숭실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작가를 꿈꾸다

중학생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지만, 그녀가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아버지와의 인연에 보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 “중1때였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오빠와 절 부르시더니, 당신의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 말을 하신 후, 한 달이 안 돼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때부터 글을 써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뭔가 일생의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했구요.” 문학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던 김 동문. 그녀는 자신에게 문학적 감수성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비롯한 것이라 했다. “저를 작가로 만든 건 아버지예요. 첫 등단작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소설을 쓰게 만든 ‘상처’

그녀가 소설을 쓰게 만드는 힘을 말하기 위해선, 상처의 기억을 지나칠 수 없다.「개미의 집」에 나오는 미숙의 엄마는 김 동문의 어머니다. 공장에서 만들고 남은 밥을 허리춤에 몰래 싸와 아이들의 밥상에 올리는 미숙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정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김 동문의 어머니께선 공장에서 밥 짓는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셨다. 그녀는 이런 엄마에 대한 기억을 소설에 담았다. 한참 예민하던 시기의 김 동문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일이었다. “삶의 모멸감, 비애가 없었다면 소설을 안 썼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내가 처했던 상황이 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든 것 같아요.”

상처를 위로하는 글쓰기

그녀는 「그 남자의 방」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들은 누구보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써진 것들’이라는 말을 남겼다. 위로가 상처를 위한 것이라면, 그녀에게 상처는 무엇일까? “작가여서 좋은 점은, 상처를 상처로만 남기지 않을 수 있게 된 데 있어요. 제 소설은 상처, 특히 개인의 상처에 집중하고 있는데, 글을 쓰며 상처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상처를 객관화 시킬 수 있었어요. 그렇게 쓰고 나니, 정말 상처와 더 견고한 거리감을 유지하게 됐구요. ” 그녀의 소설에서 인물들이 처한 ‘파산’, ‘배신’, ‘실연’의 경험은 바로 이러한 상처들의 기록이다. 그녀에게 위로는 그런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을 떠나, 묶여있던 상처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상처를 짚어가는 작업을 하려한다. “글이란 게 어쩌면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쓴다는 점에서 자기 이야기일지 몰라요. 제 글이 일기적인 이유이기도 하지요. 타인을 위해서라기보단, 첫 번째론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실제 남편의 파산을 글에 담기도 했어요.” 그녀는 여전히 우리는 어느 누군가와 동일한 상처를 반복적으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 상처를 통해 조금 더 성숙하기를 바라요.”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하다

「물 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는 김 동문의 등단작으로, 그녀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쓴 글이다. 본교 국문과 대학원에 재학하며 결혼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언젠가부터 문득 위기감이 찾아왔다.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 그녀는 결국 펜을 들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그동안 글을 한 줄도 써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녀의 첫 소설은 곧 등단으로 이어졌다. 특별한 습작기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문장이 과하게 나쁘지 않을 수 있던 건, 수없이 쓴 일기와 연애편지 덕분이었다. “그걸로 습작을 다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많이 썼어요. 편지를 좋아해서 어렸을 적 남자친구와 매일 편지를 주고받을 정도였지요. 지금도 남편과 싸울 일이 있으면 편지를 써요. 싸우다 보면 제가 할 말을 다 못하고 울 때가 많거든요.(웃음)”

바다로 떠난 사람들

그녀의 단편집은 바다로 떠난 사람, 균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변주해있다. 아내와 자식에게 수십 년을 근속한 아비가 한 장의 편지만을 남기고 바다로 떠나거나, 남편의 파산을 맞은 쉰 살의 여자가 배를 탄다. 김 동문은 실제 홍콩에서 출발, 중국해와 인도양을 거쳐 유럽에 도착하는 상선을 탄 적이 있다. 그녀의 소설에서 바다의 의미는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더라도, 계속 섬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 배에선 가끔 지나가는 배 한 척 외엔, 종일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어요. 사방이 물이에요. 전봇대가 서있고 도로에서 차가 달리는 육지가 그곳에선 아주 다른 세상으로 느껴집니다. 지구가 그렇게 동그란 줄 몰랐어요. 육지의 일들이 확 분리가 되죠. 작가 네 명과 선원을 포함해 스물 몇 명만이 배에 탔는데, 그게 세상의 전부 같았어요.” 아마도 육지의 사연들을 털어내려는 사람들이 바다를 선택하는 이유일 것이다.

인간, 몸의 존재

불혹의 나이를 넘기며, 그녀에게 절실히 다가온 것이 하나 있다. ‘몸의 사랑’. “그동안 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인간을 정신의 존재로만 생각해왔어요. 몸은 늘 2차적인 것이었죠.” 군사정권에서 대학생활을 보낸 그녀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추상적인 명제들에 매달려 육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잊은 채 살아왔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정신에만 한정돼 있다가, 사십이 넘으면서 어떤 무너짐을 경험했어요. 노화의 과정에 접어들면서, 몸의 감각들이 깨어난 것이죠.” 「꽃 진 자리」의 쉰 살 남녀가 흐트러진 육체로 나누는 몸의 떨림이 바로 그녀의 글에서 외면할 수 없는 기록이다. 정신의 교감만으로 족한 사랑이라던 그 내밀한 편견은 이제 그녀의 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제 아무리 사유가 깊고 통찰이 좋다 해도, 신경하나에 모든 걸 잃을 수 있지요. 그렇기에, 어쩌면 인간은 몸이 전부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어요.”

“다름을 잘 이해하고, 조급해 마시길”

20대의 아들을 둔만큼, 김 동문은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늘 목표가 있는 교육제도 밑에서 살다보니, 20대들이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요. 어디를 가도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걸어 다니며, 자기 생각을 키우고 길을 찾아야 하는데. 안타까워요.” 고민과 선택이 없던 젊은 날을, 뒤늦게 후회하는 어른들을 그녀는 참 많이 만나왔다. “한 발 먼저 갔다고 해서, 그곳이 종착역인 것은 아니에요. 한사코 무언가를 이루고자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이에 알맞은 과업을 이뤄야한다는 획일적인 사회에 순응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간이 제각각 다른데, 어떻게 모두 똑같이 살 수 있을까요. 자기의 다름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터에서 살아가는 게 결과적으로 더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해요.”

개인의 자의식, 상처에 집중해 글을 써온 김 동문은, 그동안 지내온 ‘나만의 굴’을 벗어나 이제는 여러 사람을 위한 굴을 파고 싶다고 했다. 마치 무당이 신들린 듯한 순간의 짧은 희열이 결국, 계속 글을 쓰게 만든다는 그녀. 돈, 명예가 보상해줄 수 없는 삶에 대한 자각을 작가의 자존감으로 여기는 김 동문의 모습을 보며, 곧 출간한다는 그녀의 글이 무척이나 기다려졌다. (다양한 뜻이 있지만) 필명 ‘이정’처럼 그녀의 글이 길 잃은 이에게 ‘이정표’같은 다정한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