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90%를 위한 꿈을 키우는 천기영을 만나다
천기영 학생(전기 05)은 <공학설계 아카데미> 금상 수상자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공학도를 만나다
지난 여름방학, <소외된 90%를 위한 공학설계 아카데미>에 참가한 이후 천기영 군의 생활은 조금 더 바빠졌다. 자신의 지식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져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고, 조금 더 구체적인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풍력발전’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아 앞으로 대학원에서 이 분야를 좀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다고 한다.
삶을 변화시키는 공학으로 나눔을 실천하다
<공학설계 아카데미> 금상 수상자 천기영 학생
과학과 기술은 ‘첨단’이라는 말을 대동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으레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첨단 전자제품과 기술이 사실상 그 기술을 누릴 수 있는 소수만을 위한 것이란 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 법과 사회제도에서 그늘진 곳이 있는 것처럼 기술발전의 뒤편에도 소외된 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해봤던 것일까. 대부분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천기영 학생도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공학도였다. 그러나 세찬 여름 소나기와도 같았던 지난 7월. 그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동원해 멀고 먼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주민을 위한 물 저장고를 고안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금상이라는 뿌듯한 입상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사실 그가 얻은 것은 그 이상이다. 바로 변화된 자기 자신, 좀 더 분명해진 미래의 비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아프리카 현실 문제를 많이 들어왔지만, 그게 제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가 참가한 <소외된 90%를 위한 공학설계 아카데미>는 이번이 3회째다. 여러 대학, 이공계 전공의 학생 100여 명이 모여 공학도로서의 자세와 진정한 기술의 의미 등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적정기술을 고안해 발표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대회이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제3세계와 같이 낙후된 지역의 조건에 알맞은,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기술이나 제품을 말한다. 그가 이런 의미 있는 대회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호기심이었습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취업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형남공학관에 붙은 대회포스터를 봤는데, 포스터에 쓰인 ‘좋은 과학, 착한 기술’ 같은 말이 눈길을 끌었죠. 보는 순간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무언가 자극과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아카데미에 참여한 후 그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진지해졌다. “학점이나 토익 점수, 진로 같은 내 문제에만 빠져 있었는데, 에티오피아에서 오신 분과 실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수문제와 같이 정말 심각한 문제들이 많구나, 도와야 겠구나… 나 외의 바깥세상으로 관심이 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3박 4일 동안 매일 5시에 일어나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문제에 진심을 다해 고민하고 매달렸다. 그가 이끄는 팀은 가뭄에 시달리는 에티오피아 지역 주민들을 위한 땅속 물 저장고를 고안해냈고, 그 실용 가능성을 높이 평가 받아 금상을 받았다.
“제가 무언가를 성취해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번 아카데미가 저를 바꾸어준 느낌입니다.”
그는 대회를 마치고 생각이 무척 많아졌다. “팀원들에게 배운 것이 많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느낀 게 많아요. 또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것 이상으로 설득력 있게 발표하는 게 고민거리였습니다. 최종 발표를 영어로 했는데 다시 한 번 외국어의 중요성을 절감하기도 했고요.” 막상 금상을 받기는 했지만, 물 저장고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땅속 동물들이나 이런저런 변수에 의해 파손되지 않게 더 견고한 물 저장고를 만들 수는 없을까. 대회가 끝난 지 한참이지만 문득문득 생각난다.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기에 앞서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도 알게 되었다. “저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아주 즐겁습니다. 물론,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게 공학도의 기본 요건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이 아카데미에 참가하면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죠.” 그는 현재 풍력발전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지식이 필요하구나, 그래서 역시 폭넓게 배우는 학부 지식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 남은 대학생활 동안 저만의 주력 분야를 찾아가는 것이 숙제겠죠.” 그가 이 아카데미를 통해 새로이 얻은 열정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대된다. 언젠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게 될 풍력 전기에너지에는 그의 고심이 꼭 배어 있을 것 같다.
천기영 학생이 개발한 소외된 90%를 위한 ‘수자원 저장 시스템
● 땅바닥에 U자 형태로 큰 웅덩이를 파고, 그 위에 비닐을 겹겹이 덮어 우기에 물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윗부분은 네모난 형태로 붙인 강목을 덮어 관리하게 하고요. 강목 덮개에 물받이 날개를 달아 더 많은 빗물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물을 쓸 때는 경사지게 파낸 바닥 옆으로 관을 파내고 끝에 수도꼭지를 달아 물을 쉽게 빼 쓰게 했습니다. 간단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정마다 남자들이 대부분 돈을 벌러 외지로 나가 있기 때문에 여자와 아이들이 집 앞마당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고 관리하게 하는 게 제일 큰 관건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