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으로부터 온 두번째 편지 (류광현 경영13 아버지)

2014년 5월 23일
125765

  

"절박함이 이뤄 낸 하나의 밀알 편지"
 아들(류광현, 경영13)에게 띄우는 아버지의 회신

[인터뷰송혜수 홍보팀 학생기자(문예창작 09), hyesoo11011@daum.net]


* 아래는 베어드학부대학이 올 초 발간한 ‘2013학년도 부모님 평전 모음집’에 실린
류광현(경영 13) 학생 글의 주인공 아버지 류기락씨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광현아! 난 평전을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단다. 내 얘기가 가장 재밌던 것 같기도 하고.(웃음) 항상 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꺼냈던 말들을 내색은 안 해도 귀담아 들어준 것 같아 고맙고 아버지로서 뿌듯하구나. 그래도 네가 나를 ‘위인’이라고 표현 해준 것은 왠지 아직도 쑥스럽다. 덕분에 내 젊은 시절을 돌아보기도 했지만 말이야.

쌀이 귀한 그 시절

 너도 알다시피 내 고향은 경북 안동시 임동면 고천리. 높은 지대 탓에 밭농사가 주로 많아 쌀이 참 귀했지. 그때는 어찌나 쌀밥이 먹고 싶던지……. 쌀밥이 나오는 날은 그날이 생일 인거라. 당시 황금 작물이던 고추나 담배 농사를 주로 해야 했기 때문에 과일도 별로 없었던 때였단다. 토마토 서리를 하다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맞은 일이 있을 정도로 먹을 게 귀했던 시절이지.

 한번은 서울로 떠난 수학여행 때 콘아이스크림이 너무나 먹고 싶어 친구들과의 행렬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그곳을 떠나지 않고 서 있기도 했단다. 결국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함께 나를 찾으러 다녔었던 추억이 있지. 또 형제 또한 8명이다 보니 늘 먹을 것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거나 싸우기도 다반사였어. 

 그러다 보니 난 어렸을 때부터 쌀밥을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단다. 오죽했으면 쌀밥을 먹기 위해 농림부 장관을 하자 마음먹고 열심히 공부를 했겠니. 죽어라 요령 없이 해 나갔지. 한마디로 미련곰탱이처럼 반복 반복뿐이었단다. 너희 할아버지께서는 자식 공부에 대한 열의를 가지셨던 분이라 학비에 필요하다고 하면 그날 밤에 돈을 빌려서라도 보태실 분이었거든. 그러니 숙제를 안 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쫓아내실 정도로 엄하시기도 했어. 어떻게 서든지 아껴서 자식들 학비에 보태려 하셨기에 고기는 구경도 못했던 거였단다. 

 아무튼 뚜렷한 일념 하나(오직 쌀밥)로 공부한 덕분인지 마침내 난 원하던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 이제는 ‘서울에 가서 꿈에 그리던 쌀밥을 배불리 먹겠구나.’라는 생각만 가득한 채.  

밀알이 되자

 대학에 가면 모든 것이 편안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구나. 지방에서 올라와 너무나 힘들게 대학 생활을 했단다. 누누이 말하지만 너희는 얼마나 편하게 공부하고 있는 것이니.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그때 당시 난 고시원에 살았는데 지방에서 올라 온 촌놈이라고 얕봤는지 원서를 훔쳐 가는 사람 때문에 고생도 하고 고시원에서 학교까지 오가는 시간과 돈이 무시 못 하게 들어 걱정도 많았단다.  

 또 얼마나 먹고 싶은 건 많던지(대학에 와서도 고생이구나). 막상 쌀밥은 실컷 먹을 수 있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그 외에 여러 가지로 들어가는 생활비 때문에 한시도 마음 놓은 적이 없었단다. 약간의 후회도 들기도 했지. 이러려고 열심히 공부 했나 하고. 그때의 고생 때문에 광현이 너는 공부할 때만큼은 시간 뺏기지 말고 배고플 때 집에 와서 배불리 먹고 다니길 바라는 마음에 학교 앞으로 이사를 온 것이잖니.

 어렵사리 들어간 대학에서 농림부 장관에 대한 꿈을 펼치기 위해 나름 열심히 고시 공부를 하였지만 의지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80년 초, 과외 금지령이 법으로 정해진 때라 대학생들은 과외 아르바이트도 힘들었지. 다행히 입주 과외와 책장사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아름아름 모아 가며 생활을 하고, 한 때는 영어 과외를 받던 학생이 점수가 대폭 상승하여 소문이 나는 바람에 어머니들이 아들, 딸들 가르쳐 달라 줄을 서기도 했었단다. 엄하게 가르쳤던 것이 효과를 봤었지. 돈이 조금씩 들어오니 농림부 장관에 대한 꿈은 점차 사라져 가기 시작했단다. 고민의 시간이 찾아왔어. 고민 끝에 난 결심을 했단다. ‘고시 공부 그만두고 내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자! 나의 뜻을 이해하는 자식이 생기면 그 녀석을 위해 밀어주자.’라고.

 결심과 함께 캠퍼스 커플로 너희 엄마를 만나 결혼하면서 난 돈을 벌 이유가 명확해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 수 있었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희를 이렇게 공부시키고 있으니 난 하나의 밀알이 된 것이 분명하지?(^^)

행복하고 만족하는 나의 일과 가족

 아들아. 옆에서 지켜보는 네가 보기에도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척이나 즐겁구나. 학원 운영을 하면서 목을 너무 쓴 탓에 수술을 하게 되었고 우연찮게 지금은 보험업에 종사하고 있게 되었네. 처음에는 힘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재미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학원을 운영할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했는데, 이곳에서는 묵묵히 내 할 일 열심히 해 나가면 상도 함께 따라서 오니 기뻐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요즘은 협동조합도 만들어서 또 다른 계획도 실행 중에 있단다. 

 엄마와 나는 광현이 네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에 열심히 응원할 것이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기에 일도 열심히 할 수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잖니. 동기부여를 받거나 기쁨을 나눌 수도 있고. 부디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미래를 설계하듯이 구체적으로 계획을 통해 살아가길 바란다. 여태껏 잘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하리라 믿는단다.

 아들아. 가끔 애비가 일하는 사무실에 들러 이것저것 도와주는 착한 네 모습에 오늘도 흐뭇한 나구나. 항상 건강하고 지금처럼 행복 하자구나. 사랑한다. 광현아.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