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상 수상, 소설가 우희덕 동문 (영문 99)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8기 장현정 (언론홍보 15)-
여기, 엄숙한 한국 문학계에 코미디 소설로 새 지평을 연 숭실인이 있다.
바로 숭실대학교 영어영문학과(99) 졸업생이자 현재 본교 입학관리팀 과장으로 재직 중인 소설가 우희덕 동문이다. 그는 지난 2월 코미디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소설의 큰 줄기로는 주인공인 코미디 소설가가 마감을 앞두고 원고를 분실함과 동시에, 사라진 원고를 되찾는 과정을 그렸다. 그 안에 우희덕 동문만이 가지는 긴 호흡의 어희(語?)들과 사랑에 대한 고찰이 녹아있었다. 위트와 진지함을 모두 겸비한 소설가, 우희덕 동문을 만나보았다.
본교 입학관리팀 과장직에 글 쓰는 일까지 겸했다. 분주함 속에 글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 있다면?
“본업과 글쓰기.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당연한 거지만, 그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간’ 같아요. 저의 경우 주말과 야간, 특히나 입시철에 일이 많이 몰리는 특성으로 인해 소설을 완성하는 데에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실제로 소설가들 중에 투 잡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원동력을 만들진 않았어요. 부족한 시간과 미완에 대한 갈증이 합쳐져 소설을 완성할 수 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가 러블로그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은 무려 아홉 해 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줄곧 소설만 썼다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우희덕 동문은 장편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회상했다.
“9년 내내 쓴 것은 아니에요. 첫 시작은 9년 전이었지만 바짝 쓰게 된 것은 근 2년간이었어요. 모든 휴가와 명절, 주말을 다 투자했던 일이었어요. 특히 공모전을 앞둔, 작년 추석 연휴가 길지 않았다면 책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싶네요.(웃음) 대학생 때 코미디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쭉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대학 졸업 후 연애, 취업을 거치며 생각에 다소 변화가 찾아온 때도 있었습니다. 사랑을 하고 있는데 뭐 하러 사랑 이야기를 쓰나 (웃음) 무엇보다 태어나서 뭐 하나라도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남기고자 하는 마음도 컸어요. 생각보다 자기만의 콘텐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적어요. 저는 그중에 자신만의 콘텐츠, 자기화 된 것을 갖고 싶었어요. 그것이 제겐 코미디 소설이었고요.”
책속엔 문단마다 여러 개의 어희(語?)가 담겨있다.
“바로 직전으로의 직진이었으나 그것은 전에 없던 세계로의 회귀였다.”
“출처가 없는 생각은 출구 없이 오래 지속 됐다.”
“코미디는 도태되지 않는 태도야. 웃길 때만 웃는 게 아니라, 슬프거나 힘들 때도 웃음을 잃지 않겠다는 거야
“만난 적도 없는 여자와 헤어진 기분이야. 그건 헤어진 여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 더 해진 마음이야.”
그에게 이러한 표현들은 불현 듯 떠오르는 ‘아이디어’ 정도로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일상을 떠도는 상념(想念)이 불현듯 진공 상태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가 전하고 싶은 절묘한 ‘메시지’로 다가온 것이다. 그에게 이런 절묘한 표현들은 어떻게 떠오르는 것일까?
“표현에 대한 영감은 주로 음악으로부터 많이 받아요. 글을 쓸 때 유튜브를 켜서 아무 음악이나 나오게 하거나, 혼자 기타를 치곤해요. 사실 영감이 가장 많이 떠오를 때는 혼자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닐 때나 드라이브 할 때, 빗소리를 들을 때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작위적으로 하려고 할 때 생기는 것은 아니었어요. 책상에 앉으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막상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감이 떠오르던 그 순간만큼 글이 나오진 않더라고요. 만들려고 하면 안 만들어지고, 만들지 않으려 할 때 만들어지는 것, 아이러니하지만 그것이 바로 문학적 표현인 것 같아요.”
작가는 글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러블로그에도 8가지 챕터가 있지만, 그중 자신의 목소리가 가장 잘 드러났던 부분은?
“소설가들도 무의식중에 자신의 목소리를 넣을 수 있겠지만, 대개 의도적으로 넣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중 ‘마술’ 챕터가 있는데, 여기서 마술은 단순히 마술에 그치는 것이 아닌 ‘문학 소설을 펼치는 것’이라고 꼭 말하고 싶어요. 문학도 마술처럼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여기선 마술(문학) 그 자체가 중요하기 보다는 마술을 펼치는 방식, 스스로가 어설픈 트릭으로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데 혈안이 되지는 않았는지, 현실과 괴리된 환상을 심어주지는 않았는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한국에서 전무하던 코미디 소설의 훈풍을 일으킨 그였다. 그 첫 출발에 대한 감회로는 (코미디 문학 장르는) 남들이 하지 않던 장르였으며, 동시에 남들의 호불호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정말 원했던 이야기였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표했다.
많은 장르 중에서 코미디 문학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코미디는 저의 존재로 인해 사람들을 웃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었고, 그 방식이 제겐 코미디였죠. 진중한 묘사가 많은 소설들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코미디 장르를 문학에 끌어 놓은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글이란 것은 때론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책 속의 한 문장으로 새 삶을 영위해나간다.
자신에게도 그러한 글 또는 책이 있는지?
“‘그리스인 조르바’와 ‘어린왕자’를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스티븐 킹이 쓴 모든 단편 작품들이에요. 코미디 소설가로서, 장편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아이러니하지만, 괴기스러운 작품을 속도감 있게 쓰는 사람이 가지는 위트를 좋아해요. 그러한 이질감 속에 삶의 한 문장들을 발견하는 것 같아요.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저만의 문장을 ‘발견’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글이란 것은 개개인의 배경과 각개 다른 상황을 기준으로 보게 되며, 언제 어떻게 보게 되는지에 따라 그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문학상 수상 후 받은 상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쾌척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제 작품 속에 있는 존재들은 ‘보통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소외된 존재들입니다.
저 또한 실제 생활에서, 그리고 작품 속에서 그런 존재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다시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평소 가졌던 스스로와의 약속이었어요. 지금도 7-8군데 작게나마 후원을 하고 있는데, 다른 큰 무언가를 하는 것 보다 이러한 일들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어요. 장학금으로 어떤 학생들은 좋은 책을 사보고, 좋은 경험을 하며 향후 창작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새로운 출발점을 찾아 더 좋은 작품을 써보자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어요.”
요즘 청년들은 자신의 감정부터 자기 자신을 글로 표현하기까지, 누군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할 지 모른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작게는 SNS에 올리는 글부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까지.
작가로서, 선배로서 그가 청년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자신을 글에 솔직하게 담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글을 쓰기 시작함과 동시에 숱한 평가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점점 자신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두려움이 커지게 돼요. 그럼에도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여러 사람이 보는 것이니 그 영향력 자체를 즐기길 바라요. 비판에 대해선 어느 정도 감수를 하면 좋을 것 같네요. 큰 줄기는 자신의 주관으로 가는 것이 맞지만, 주변의 반복되는 비판들엔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그 비판들이 반드시 옳지 않더라도, 자신의 글을 개선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겠어요. 그 많은 이야기들을 취사선택 할 수 있는 것도 자신의 능력이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또 업그레이드 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숭실인들에게 한마디
“흔히 말하는 ‘멘토’에 너무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길 바라요. 우리 사회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첨예하게 대립할 때가 종종 있죠. 그속에서 어떠한 극단으로 가지 말고 삶의 균형, 나의 길의 균형을 찾길 바라요. 듣는 것도 최대한 들어보고, 나를 한번 깨보고, 다 해보면서 충분히 느껴 보면서 그중에 우러나오는 ‘균형’ 말이에요.”
“책속에 ‘인스턴트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예가체프 원두를 쓰면 예가체프 맛이 나지만, 인스턴트커피 원두를 쓰면 똑같은 인스턴트커피 맛이 나기 마련이죠. 어느 측면에서는 자신이 남들과 같아지지 않으려 애쓰다가도, 현실의 문제와 직면하면 모두 자신을 재단하며 남과 비슷해지게 돼요. 공모전 준비를 할 때에도 상에 목을 매기 보단 ‘나는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나는 내 방식대로 나의 글을 쓸 거야.’ 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배포와 자존감이 없다면 인스턴트가 되어 버리는 거죠.
현실을 다 포기하고 꿈을 좇으라는 것은 무책임한 소리일 수 있어요. 어느 정도의 타협은 하되 그 안에서 자신의 것, 자신의 ‘시점’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스턴트커피인 사람이 “왜 날 인스턴트커피 취급해!” 라고 말만하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공허한 자존감은 버려야 해요. 그래야 그 자리에 새로운 살들이, 삶들이 자라날 수 있어요. 무언가 큰 꿈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성찰이 되어 있다면 충분해요. 설사 그 길에서 실패해 쓰러진다고 해도, 그것이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성공보다는 나을 테니까요. 한 번쯤은 처절하게 실패도 해봐야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것인지 돌아볼 수 있겠죠.
덧붙여 남이 무조건 날 좋아해줘야 하고, 자신이 무조건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요. 누구에게나 주어진 소명이 있고, 역할이 있다고 믿습니다. 삶은 그것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에요.”
향후 집필 계획에 대해선 보다 대중적인 코미디를 쓸 것이며, 이처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데 이 길을 기대와 사랑으로 지켜봐 달라는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자 하는 후배들부터 현재 진로와 자존감, 꿈에 대한 고민의 기로에 선 이들을 모두 아우르며, 소설을 완성하기 까지 끝없이 흔들리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이들에 대한 걱정 어린 애정을 아낌없이 표출하는 그였다.
인터뷰|학생기자단 프레슈 8기 장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