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빛나는 배우, 정석용 동문(경영 90)

2019년 5월 30일
123492

열정이 빛나는 배우, 정석용 동문 (경영 90)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8기 정민수(사학 13) / minsu194@naver.com]

“항상 연기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요.”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신세경 아버지부터 영화 ‘부산행’의 기관사 역할까지. 인상 좋은 아저씨 역할이라면 어느 작품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정석용 동문(경영90)이다. 그는 수없이도 많은 작품에 참여하고 얼굴과 이름을 알려온, ‘다작 요정’이다. 그렇기에 처음 그에 대한 섭외를 기획했을 때,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 싶었다. 섭외 당시에도 많은 작품에 참여하고 있어서, 시간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흔쾌히 응해 주었으며, 숭대극회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도 반복하며 숭실의 후배들을 위해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이번 숭실피플에서는 배우 정석용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배우가 된 계기가 있다면?

“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던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는 막연히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결과 숭실대학교 경영학과에 지원해 90학번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어떤 동아리에 가입할까 생각을 했었고 우연히 연극 서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숭대극회’에 가입하게 되었죠. 아직도 숭대극회의 활동이 배우가 된 계기인 것 같아요. 열심히 활동을 하면서, 재학 시절 내내 정기적으로 공연을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작품인 ‘안티고네’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또 ‘장 아누이’라는 희곡을 현대작품으로 각색해서 연기를 하기도 했었어요. 당시에는 데모를 하던 중이라 관객이 3명이었다는 것도 인상이 깊었어요. 또 숭대극회 활동 중에 독어독문학과 88학번 박원상 선배를 만나게 되었고 학교 작품을 같이 하면서 친분을 쌓았는데 향후에 배우가 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죠.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배우를 꿈꾸게 되었죠.”

숭실대 재학 시절을 뒤돌아보면 어떠했는지?

“숭실대학교 재학 시절을 생각하면 웃음이 먼저 앞서요. 제게 학교 생활은 연극, 당구 등에 심취했던 삶이었거든요(웃음). 물론 그렇다고 학업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에요. 경영학과 수업도 열심히 듣고,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으니 학점도 제법 잘 받았던 편이었죠. 물론 요새 학생들과 다르지 않게 학교를 취직을 위한 디딤돌 역할로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시대적 상황에 따른 대학가의 분위기였어요. 당시에는 학교 근처에서 시위가 많았거든요.” “당시에는 데모가 많았는데, 87년 이후였기에 군부 타도와 같은 정치적 시위는 없었어요. 그러나 사회 변혁에 대한 다양한 시위들이 있었고, 저는 시위에 참여하기보다는 연극으로 시대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연극 활동에 더욱 몰입하게 되었고, 숭대극회에 남다른 애정이 생겼어요. 1학년을 마치고 나서는 군대를 가게 되었는데 1991년에 입대를 해서 1993년에 제대를 했어요. 등록금 마련을 위해 1년 정도 휴학을 하기도 했었고요.”

제대 후의 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저는 제대 후에도 학비를 벌어서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화이트 칼라의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는 직장인을 꿈꿨었죠. 이 과정에서 막노동을 하는 등 큰 고초를 겪기도 했어요. 그러나 물론 복학 후에도 역시 숭대극회 활동에 계속해서 치중했죠. 저는 채플 공연에도 참여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학교 채플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기도 했어요. 연극 준비 과정에서 항상 남들보다 먼저 채플을 들었으니, 아마 남들보다 훨씬 많이 채플을 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숭대극회의 부족한 재정 때문에 항상 동아리 운영금을 모았었는데 시대가 좋았던 만큼 동양맥주 등의 대기업 홍보팀을 직접 찾아가 연극 공연 시에 간접으로 광고를 해주는 방식으로 수입을 창출하기도 했었어요. 비록 이것은 당시의 경제적 시대상이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발로 뛰면서 돈을 버는 것으로 매우 뿌듯함을 느꼈고, 내가 연기자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숭대극회는 정석용 동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숭대극회란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게 해 준 원동력입니다. 당시 숭대극회는 대학 연극 쪽에서는 꽤 유명했어요. 숭대극회는 1970년대에 대상도 받은 적이 있고, 특히 ‘에쿠스’라는 작품은 국내 대학 중 초연을 할 정도로 선구자적 역할을 하기도 했죠. 따라서 연극이 전공이 아닌 대학 연극 동아리 중에서는 건대, 서강대(그때는 연극 영화가 없었음)와 함께 유명한 동아리였어요. 저는 동아리 생활을 하며 선배들에게 많은 연기 노하우를 전수받았는데 이는 저의 연기 생활에 기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학년 때는 제대를 한 복학생 선배에게 무대에 서는 법이라던지, 발성 같은 걸 지도 받았어요. 그리고 그때는 지금도 안 읽는 희곡을 많이 읽었을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었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지금은 대본만 보고 연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숭대극회 활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연기자의 꿈을 꾸게 된 만큼 저에게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기자로서의 길을 선택한 행보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4학년이 되었을 때, 연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대학로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로에 나가보니 막막했어요. 비록 박원상 선배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연기 쪽에서 유명했던 서울예대와 같은 경우에는 ‘목화’라는 그들만의 극단이 있을 만큼 연극 시장은 전공자들에게 유리한 상황이었죠. 그러나 저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어요. 오디션도 많이 없던 1998년 겨울에 대학로로 나간 것이었는데 그때가 하필 IMF였어요. IMF의 영향으로 2, 3년 정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었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연극을 하게 되었고 이후 연극 무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로 진출, 이후에는 드라마까지 가게 되었죠.” “우연히 영화 <무사>라는 작품을 하게 되었는데,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그리고 ‘왕의 남자’라는 작품이 흥행하면서 그 이후에 섭외가 많이 들어왔고, 이 시기부터 경제적인 것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어요. 물론 지금도 특별히 하자가 없는 한 작품을 거절하는 편은 아니에요(웃음).” 

연기자로서의 삶은 어떤 것인가요?

“제게 연기자로서의 삶은 공인이 된다는 것이에요(웃음). 데뷔 초만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요새는 꽤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비록 이제 아무렇게나 길바닥에서 잠을 잘 수는 없지만(웃음), 그래도 저의 연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 주시고 좋게 기억해주시는 것에 대해서 희열을 느껴요.” “그리고 조연으로서만 성공을 해도 경제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는데 지금 그 정도의 위치에 서게 된 것 같아 기뻐요. 현재는 크게 바쁘지 않은 가운데 많은 작품들을 소화하고 있고 연기하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워요. 그렇지만 그전까지 선한 역할들만 많이 해왔기에, 악역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본인에게 숭실대학교가 갖는 의미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게 숭실대학교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숭실대학교는 숭대극회라는 동아리를 통해 저의 진로를 결정하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예요. 저는 숭대극회 활동을 통해서 많은 연기 경험을 쌓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연기자로서의 꿈을 꾸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이렇게 연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도 숭대극회의 공연이 있다고 하면 가능하면 학교에 직접 방문할 만큼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 학교에 영화예술학과가 생긴 만큼 연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현재 젊은 세대가 배우를 하는 것이 더 힘이 들고, 지망생들이 많기 때문에 희소성도 떨어져요. 부정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1980~2000년대에 데뷔했던 배우들이 아직도 주인공들을 하고 있으며 이는 어쩌면 그들의 기득권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시장 자체가 틀에 박혀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전공자들이 자신들이 배웠던 연기에 대한 틀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보기도 했어요. 그래서인지 의외로 주연 배우들 중에서는 비전공자들이 많아요. 여러분들도 혹여나 배우를 꿈꾸고 있다면 전공과 상관없이 과감하고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또한 ‘술만 먹여주면 연기를 하겠다’는 헝그리 정신이 필요한 때에요.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 많은 후배들을 작품에서 만나고 싶어요.”

* 정석용 동문은 1990년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현재 배우로서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 한 작품에 출연하고 있으며 특히 <택시운전사>, <부산행> 등 다수의 유명한 작품을 통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