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상 수상자
이당(怡堂) 안병욱 철학과 명예교수
유일한상(賞)
유한양행 창업자인 고(故)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5년 제정한 상으로 격년제로 시상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의 사표가 될 수 있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사를 선정하여 그 공로와 업적을 널리 알려 사회에 귀감이 되도록 하는 데 그 뜻이 있다.
“철학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학문이며 인생을 바로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길이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언제나 올바른 인생관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일이었다. 인생은 하나의 긴 이야기로서 우리는 저마다 매일매일 한 장씩 인생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2007년 8월 8일은 나의 여든여덟 번째 생일이며 날수로는 33,120일 번째의 날이다. 철학자로서 나는 성실·지혜·이상·보람·사랑·자유·예술·진리의 인생 이야기를 쓰면서 살아 왔다.” 2007년 10월, 마흔아홉 번째 펴낸 책 <철학의 즐거움> 머리말 중에서.
안병욱 교수는 철학자이고 수필가이다.
그의 촘촘한 일생을 최대한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1920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 문학부철학과를 졸업했다. 숭실대와 경기대 교수, <사상계> 주간, 흥사단 이사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 도산아카데미연구원 설립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게 학자다운 학자이며 학생다운 학생이다. 평생 치열하게 공부했고 열정적으로 가르쳤으며 끊임없이 쓰고 펴냈다. 1957년 숭전대 교수가 된 그 이듬해 <현대사상>을 처음 낸 것을 시작으로 매년 꼬박꼬박 한두 권의 책과 논문을 펴내고 있다. 고민하는 청춘의 의지를 깨우고 섬세한 심성을 다독인<인생론>은 1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다. 그의 글은 주제를빙빙 돌리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곧 철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실천적인 대안들을 명쾌하고 ‘쿨하게’ 제시한다.
올해로 여든 아홉이 된 이 노학자는 지금도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5시면 일어난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일 아침 산보와 체조를 하고 오후에는 강의했던 수백 권의 대학노트를 다시 들여다보는가 하면 외우기도 할 법한 칸트와 셰익스피어, 논어와 맹자를 다시 탐독한다. 몇 해 전 천식과 기관지 건강이 악화되었을 때에는 한자 철학을 공부하며 그 깨달은 바를 글로 써 잡지에 기부하는 일로 병을 다스렸다. 20대 중반부터 하루 10시간씩 팔을 뻗어 칠판에 글을 쓰며 강의하느라고 오른팔이 3센티미터 더 길어졌다니 평생 이름 석자에 붙어 다니던 ‘선생’ 이란 단어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다.
평자들은 그를 향해 “현대인의 타락하고 혼탁한 정신생활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현대 지성의 방향과 모럴을 제시한다. 그의 사상적 기조는 자기 상실로부터 자기 회복과 각성이라는 휴머니즘과 자유, 그리고 민족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라고 한다. 이런 평의 배경에는 그가 가진 ‘좋은 만남’과 그가 행한 ‘뜻 깊은 일’이 있다.
“인생은 만남인데 곧 좋은 책과의 만남, 좋은 스승과의 만남, 좋은 친구와의 만남, 이 세 만남을 통해 인생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이 세 가지를 다 잘 만났어요.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다섯 사람과의 만남이 있으니 춘원(이광수)과 장준하, 함석헌, 그리고 가을날의 호수처럼 조용하던 윤동주와 일본인 아이지 교수와의 만남입니다. 이들과 오늘이 있기까지의 나와의 만남은 깊은 정신적 만남이지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두 가지의 뜻 깊은 일을 했는데 하나는 장준하 선생을 도와 <사상계>를 통해 자유 언론 투쟁을 한 것이요, 또 하나는 흥사단에서 도산(안창호) 사상을 전국에 펼친 것이에요.” 그가 주간을 맡았던 <사상계>는 지금도 광복 이후 한국 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최고의 종합교양지로 꼽힌다.
올해 새해가 되자마자 사회 모든 분야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사를 선정, 시상하는 ‘유일한상’의 제8회 수상자에 안병욱 교수가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일한상 심사위원회는 “열정적인 강연과 집필을 통해 학문의 발전, 교양 교육의 향상, 철학 정신의 함양을 위해 평생 교육자, 철학자, 저술가로서 살아 왔다”며 “특히 사회 각계각층의 정신 계몽, 한국 지성의 좌표 설정 등에 앞장서는 사회운동가로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평소 “아기의 방그레, 젊은이의 벙그레, 늙은이의 빙그레가 얼마나 아름다운 표정이냐”
며 감탄하던 안병욱 교수. 시상식이 있던 1월 17일, 예의 그 멋진 장발을 곱게 빗어 넘긴 그는 ‘방그레’ 웃었고, 주름지고 깡마른 몸에서는 신기하게도 봄바람이 났다. “접인이애 춘풍화기(接人以愛 春風和氣). 사람을 대할 때에는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하고, 몸에서는 봄바람처럼 훈훈한 화기(和氣)가 넘치게 하세요.” 사랑이 충만한 그가 마흔아홉 번째 펴낸 책의 머리말 마지막 구절이다.
쉰 번째 책을 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진실과 정성’으로 가득 찬 그의 쉰 번째 책도 품을 수 있는 복이 우리에게 꼭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홍보팀(pr@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