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지배자, 온게임넷 게임 캐스터 정소림 동문 (국문 92)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8기 홍주성(국문 13)]
“GG(Good Game)! ㅇㅇㅇ선수 결국 GG를 선언합니다!” 어릴 적,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멘트다. 블리자드사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게임의 문화는 직접 플레이하는 방식에서 그치지 않고 관람하는 방식으로 확대되었다. 우승 상금을 내건 각종 게임 대회들이 개최되었고 급기야 게임을 생중계하는 방송 프로그램과 채널들까지 생겨났다. 이러한 형식을 ‘e스포츠’라고 칭한다. e스포츠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는 게임 캐스터가 있다. 게임 전장 내 프로게이머들의 행동과 판단을 해석하고 박진감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뛰어난 실력으로 전장을 휘어잡는 프로게이머들보다, 전지적 시점으로 게임의 양상을 판단, 분석하고 실시간으로 해설하는 게임 캐스터야 말로 ‘전장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스포츠 마니아들은 게임 캐스터 정소림 동문을 ‘살아있는 전설이자 역사’라고 부른다. e스포츠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그녀이기에, 또한 실력으로서 이제껏 메이저 게임 캐스터로 남을 수 있었기에 당연하다시피 붙여진 칭호다. 하지만 그 칭호만큼이나 적잖은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 19년째 게임 캐스터로 살아가는 정소림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스타크래프트와의 인연]
정소림 동문이 처음부터 게임이나 e스포츠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e스포츠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은 지인이 소개해준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고 나서부터였다. “이전까지 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이라곤 기본적으로 컴퓨터에 깔려있는 ‘지뢰찾기’나 ‘카드 게임’ 등이 전부였습니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던 2000년, 방송 관련 일들을 하다가 출산을 하게 되어 잠시 쉬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인이 소개해준 스타크래프트에 매료되어 아침에 눈 뜰 때부터 밤이 될 때까지 플레이했었습니다. 출산 이후, 게임 캐스터에 도전해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iTV 케이블 방송사에서 오디션을 보았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게임 캐스터로서의 경력이 시작되었지요.” ‘스타크래프트’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있어서 전화위복이 되었다. “원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어요. 졸업 이후 아나운서 시험도 치러 다니고 짧게나마 직장 생활도 하다가 어느덧 출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아나운서가 내 적성이 아닌가’하는 회의적인 생각들 속에서 한동안 고민하며 살아갔었지요. 그러다가 게임 캐스터로 일하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때 본격적으로 게임 캐스터로 일하기 시작했던 거지요.”
[게임 캐스터로 산다는 것 # 1. 젊음 (Youth)]
정소림 동문은 게임 캐스터의 장점으로 젊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꼽았다. “게임의 주 이용자들이 10, 20대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를 알아야 하지요. 은어나 줄임말 등의 유행어를 접하고, 새로 나오는 게임들을 직접 플레이하다 보니 마치 10, 20대로 돌아간 것 마냥 젊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들이 있어서 좋아요. 아들도 게임을 한창 좋아할 시기다 보니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모자 관계를 초월해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프로이기 때문에 직면해야 하는 벽 #2 부담감]
정소림 동문은 ‘게임 캐스터’가 결코 쉬운 직업이 아님을 강조했다. “게임 중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단순히 게임을 잘 안다고, 진행을 잘 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전장 내 상황에 대해 빠르게 파악하고 전달해야 함은 물론 이따금 유머도 곁들여주는 재치도 필요합니다. 게임의 진행 속도가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훨씬 빠른 만큼 단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내용들을 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 중에 말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서 완급 조절을 할 수 있는 재량도 요구됩니다. 특히 여성 캐스터의 경우, 경기가 절정에 치닫는 때 자연스레 목소리 톤이 높아져 듣기에 불편하다고 반응하는 시청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e스포츠계는 여성 게임 캐스터가 살아남기 힘든 필드가 되었죠.” 이어 그녀는 이제까지의 경험보다 ‘앞으로 남은 커리어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하나’라는 고민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팬들이 과분한 호칭으로 저를 부르다 보니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 부담을 느낍니다. 하지만 마이크를 내려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떨림;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 3. 행복]
정소림 동문은 일상 속 소소한 순간마다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령, 새벽에 일을 하러 방송국을 향해 운전해가고 있으면 이따금 창문 너머로 여명이 밝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때 아직까지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집니다. 예전에는 방송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들려왔던 쿵쾅거리는 인트로 음악에 맞춰 제 가슴도 쿵쾅거리며 설?던 적도 있었어요. 행복한 기억이 따로 있다고 하기보다는 현장에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중계할 때의 그 모든 순간이 소소한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화려함, 그 이면 # 4. 고충]
정소림 동문은 자신에게 일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게임 캐스터들은 모두 프리랜서들입니다. 게임 캐스터들마다 주로 활동하는 방송국이 다를 뿐이죠. 각종 리그들이 마무리되고 일이 없어져 쉬게 될 때는 수입이 들어오지 않고 무기력해져서 여러모로 마음이 어려워지곤 하지요.” 또한, 그녀는 여성 게임 캐스터로 살아가면서 직면해야 했던 고충들도 털어놓았다. “예전에는 여성 게임 캐스터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실력으로 밀리지 않지만 그저 여성 게임 캐스터라는 이유로 결승전 등의 큰 무대에 남성 게임 캐스터들만 골라서 세우는 일이 공공연연하게 있었습니다. 한 번은 여성 게임 캐스터이기 때문에 선발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직접 들었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참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운 숭실 재학시절]
정소림 동문이 본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게 된 이유는 아나운서의 꿈을 갖고 있던 정 동문에게 고교 은사님께서 추천해주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숭실대학교 방송국에서 보냈다고 밝혔다. “새내기 시절에는 학과 내 소모임 중 하나인 ‘민속문학학회’라는 곳에서 해오름식 때 북도 치고 했었지만, 대부분의 대학 생활은 교내 방송국에서 했습니다. 결국에는 꿈이 아나운서였으니까요. 공강이 있거나 시간이 조금이라도 날 때면 방송국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열성적이었죠.”
[그녀에게 숭실이란?]
그녀는 숭실대학교에서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녀 역시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국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로부터 다양한 방송 기법과 자질을 배웠어요. 또 매일 교내 방송을 하면서 실전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직접 원고도 쓰고 아나운서로서 마이크를 잡고 방송인의 꿈을 키워나갔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숭실에서의 시간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순전히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던 것이지만 그 시절의 경험과 배움이 없었다면 게임 캐스터의 삶은 꿈도 꾸지 못했을 테지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값진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어서 모교 숭실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숭실 후배들에게 남기고픈 말]
정소림 동문은 숭실대학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고 했다. 우선, 후배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철저히 조사하고 준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그래서 교내 방송국에서도 열심히 활동했었는데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1차적으로 필기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참 동안 알지 못했어요. 3학년이 되어서 비로소 그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부터 준비하기에는 시기상으로 많이 늦었던 거죠. 솔직히 실기는 자신 있었습니다. 하지만 1차 시험인 필기시험을 합격하지 못한다면 실기 시험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낙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학생들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발견했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치밀하게 조사해서 차근차근 하나둘 씩 이뤄나가도록 하세요. 그 누구도 다시는 제가 했던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언제나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대학 시절 때 방황을 많이 했어요. 무수한 고민들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었죠. 하지만 여러분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본 선배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삶에는 힘들거나 좌절하게 되는 일들도 있는 반면, 좋은 일도 있기 마련이더라고요. 행여 속상한 일을 겪더라도 ‘그래도 다음에는 좋은 일이 있겠지’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견뎌낸다면 분명 좋은 일이 뒤따라 올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경험 상 고민이란 혼자 하게 되면 증폭되어 더욱 스스로를 옭아매거든요. 좋은 친구를 사귀어 서로의 고민을 털어내면서 대학 생활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밖에 없는 대학 생활을 과감하게 놀면서 보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 공부, 방송국 및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숨 가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딱 한 가지를 하지 못했는데 자유로이 놀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취업 준비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몰두하느라 그때의 저처럼 놀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대학생 시절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잖아요? 바쁘게 사는 삶들을 응원합니다만 한 번쯤은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놀아보기도 하고 그러세요. 그 무엇보다 이 말씀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치며]
정소림 동문은 한참 선배임에도 마치 친근한 누나면서, 한편으로는 어린 소녀 같기도 했다. 비단 그녀의 빼어난 외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게임 캐스터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끊임없이 10, 20대의 문화를 공부하고 소통하고 있다고 밝힌 그녀답게, 현 대학생들이 직면하는 고충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대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마치 여전히 재학 중인 선배처럼 실제적인 충고와 격려를 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그녀는 ‘오버워치 APEX’ 리그의 중계를 맡고 있다. 앞으로도 그녀의 목소리는 전장 속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질 것이다. 게임에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도 우연하게나마 그 울림을 듣게 된다면, 그 울림 속에서 숭실대학교 학우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한 선배가 있음을 떠올리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정소림 동문은 1992년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2000년 iTV사의 ‘게임스페셜’을 통해 게임 캐스터로 데뷔했다. 현재 ‘오버워치 APEX 리그 시즌 4’의 중계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