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계의 대들보, 한국게임학회장 이재홍 교수(전자공학 80)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6기 최정훈(글로벌통상학과 10) / cocoland37@naver.com]
혹자는 게임을 단순한 오락거리 또는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게임은 이제 오락거리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포켓몬고’가 대표적이다. 손과 눈으로만 즐기던 기존 게임과는 달리 ‘포켓몬고’는 지도를 보며 직접 걷고, 찾아가고, 만나는 형태를 통해 게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한국 게임계에서도 일찍이 게임의 이런 문화적 파급력을 주장해온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게임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홍 교수(전자공학 80,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이번 숭실피플에서는 이재홍 동문을 만나 게임 산업의 의미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학회는 2001년 2월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단법인이다. 회장을 맡고 있는 이재홍 교수에게 학회의 설립목적에 관해 물었다. “한국게임학회는 게임과 관련된 기획, 제작, 그래픽 디자인, 마케팅 및 관련 법 등에 관한 이론 및 기술의 학문적 연구 보급을 통해 국내 게임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출범했습니다.”
한국게임학회는 게임 관련 각종 학술 발표회의 개최부터 게임 관련 학회지 및 논문지 발간, 게임 관련 국제 학술 교류 및 기술 협력, 국내·국제 게임 전시회 및 강연 개최,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한 지식과 기술 보급 사업 및 산학 협력 활동 증진까지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홍 교수는 학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게임의 순기능 극대화라고 말했다. “모든 것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합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죠. 한국게임학회는 여러 활동을 통해 게임의 순기능은 극대화하고 역기능은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게임의 존재 이유
이재홍 교수는 현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게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이재홍 교수의 생각이 궁금했다. “게임의 시작은 컴퓨터 공학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인문학적인 상상력이 필요하게 되면서 게임은 첨단종합예술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공학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상상력의 융합이 필요해진 것이죠. 즉, 게임에서 이야기적 요소가 빠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재홍 교수는 게임에서 이야기의 중요성을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애니팡’이라는 게임과 외국에서 만들어진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을 비교하면서 말을 이었다. “애니팡은 같은 모양의 동물 세 가지를 맞추면, 터지면서 점수가 쌓입니다. 하지만 애니팡은 왜 같은 동물을 맞춰서 터트려야 하는 지 이유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앵그리버드는 다릅니다. 앵그리버드도 게임을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각도에 맞춰 새를 발사해서 돼지를 처치하는 게임이죠. 이 게임은 왜 우리가 돼지를 처치해야 하는 지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줍니다. 바로 돼지가 알을 훔쳐가기 때문이죠. 우리는 돼지를 혼내줘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게임을 즐기게 됩니다. 앵그리버드가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기계적인 반복속성만 가진 게임들과는 다른 장점이죠. 문학은 이처럼 게임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게임 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다
그는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학사과정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에서 문화를 연구했다. 그의 특이한 학문적 행보 중 어떤 계기가 그를 게임 분야로 진출하게 했는지 궁금했다. “저는 원래 소설가가 꿈이었습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공대를 가게 됐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어 대학원을 국문과로 진학했습니다.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문학 속의 문화에 흥미를 느끼게 돼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일본의 문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많이 접했고 디지털미디어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됐죠.”
이재홍 교수는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의 부흥을 위해 부푼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혔다. 그 당시 한국에 존재했던 디지털미디어 관련 학과들은 인문학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게임 분야에만 집중했다. “그 당시에는 게임을 연구하는 사람도, 게임 학문도 없었습니다. 맨바닥에 초석을 쌓아올린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게임 시나리오학과를 최초로 만들어 가르치기도 했고, 서강대에서 4년제 게임교육원을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지금은 게임스토리텔링 분야에서 일인자라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들
그가 인정하는 최고의 게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재홍 교수는 게임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대부분 스토리가 탄탄한 게임들을 추천했다. “제가 최고로 꼽는 게임은 블리자드사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라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종합선물세트같은 게임이죠. 이 게임 안에는 모든 게임의 요소들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묘미는 역시 스토리입니다. 이야기만 쫓아가도 재미있을 정도죠.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최근 영화로 까지 만들어 질 정도로 질적으로 수준이 높습니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게임 중 이재홍 교수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게임은 손노리에서 개발한 화이트데이라는 게임이었다. 그는 이 게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화이트데이는 호러게임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일반적인 호러 게임들은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나오죠. 하지만 이 게임은 잔인한 장면이나 잔혹한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할 뿐이죠. 하지만 그 효과는 대단합니다. 또 선택한 캐릭터에 따라 결말이 다른 멀티시나리오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 게임 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
우리나라에서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게임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게임이 인류의 놀이라고 말하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은 과도기에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들은 진정한 게임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전으로 게임 인프라가 갖춰졌기 때문이죠. 과거에는 손과 눈으로만 즐겼던 게임을 클라우딩, 웨어러블, 증강현실, 사물 인터넷 등을 통해 온몸을 활용하여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언제든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거죠.”
이재홍 교수는 이런 상황 속에서 게임의 순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임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게임이 인류의 삶을 이롭게 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게임의 순기능이죠. 몇 년 사이에 수학이나 과학을 게임화하여 쉽고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G-러닝’이 시작됐습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은 창의적인 시도를 유도하여 다양한 형태로 응용되고 있기도 하죠. 교사가 이 게임을 활용하여 창의적인 교과과정을 만들어 실제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 전체가 적극적으로 순기능적인 게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재홍 교수는 한국 게임의 발전을 위해 언제나 헌신해왔다. 그는 게임 자체의 질적인 발전뿐만 아니라 제도적 차원에서의 발전이 있어야 한국이 진정한 게임 강국으로 재도약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게임에 대한 열정이 한국 게임을 한층 더 발전시켜주길 기대해본다.
* 이재홍 교수는 숭실대학교 전자공학과(80)를 졸업 후,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동경대 종합문화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숭실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게임학회 회장,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 등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