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극단 여행자 창작희곡릴레이 신진작가 김진선, 정예원, 주지윤 학생

2013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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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극단 여행자 창작희곡릴레이의 신진 극작가

김진선, 정예원, 주지윤 학생

   [인터뷰: 최한나 홍보팀 학생기자(기독교 09), skyviki@naver.com]

‘2013년 극단 여행자 창작희곡릴레이’는 극단 여행자와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의 첫 산학협력 프로젝트다. 잠재력을 갖춘 신예작가들에게 무대 현장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창작희곡 및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인 김진선(이하 김), 정예원(이하 정)과 문예창작학과 학부생인 주지윤(이하 주)이 작가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은 주인공들이다.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극단 여행자 측에서 새로운 창작희곡을 발굴하는데 뜻을 가지고 있었어요. 특히 백로라 교수님(문예창작학과)과 극단 여행자의 부대표 겸 배우이신 김은희 선생님께서 이 뜻을 구체화시키셨어요. 두 분께서 저희에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큰 기회를 주셨어요. 처음에는 워크샵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었는데 프로젝트의 취지가 좋다보니 소극장 협회의 심사를 거쳐서 공연 지원을 받게 됐고 공연까지 올릴 수 있었어요."

극단 여행자는 1997년에 결성하여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극단이다. 국·내외의 다양한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2003년 제15회 카이로 국제 실험연극제 대상(<緣 KARMA>), 2006년 제 10회 폴란드 그단스크 국제 셰익스피어 페스티벌 대상 및 관객상 (<한 여름 밤의 꿈>)을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이 외에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며 한국 연극계에 영향력 있는 극단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극작가의 꿈

김  "저는 공대에서 문예창작학과로 전과했어요." 1학년 때 사학과 수업에서 중간고사 점수로 C를 받은 김진선 학우. 교수님께 찾아가 여쭤봤지만, 역사를 재해석이라 생각해서 재해석 했다는 그녀의 말에 교수님은 ‘그러면 넌 소설이나 써’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 이후 정말 그녀는 문예창작학과로 전과를 했고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제일 재밌었고, 제일 칭찬을 많이 받은 게 희곡이었어요." 그래서 ‘아, 나는 희곡인가보다’해서 극작을 시작한 거예요." 연극을 한 번도 안 봤던 그녀가 극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된 이유다.

정  정예원 학우는 다른 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하다가 숭실대에 입학했다. "졸업장이 필요해서 학교를 다시 다녀야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수능을 보고 원서제출을 하려는데 원서마감일을 다 놓쳤어요. 유일하게 우리 학교만 남아 있었죠. 꼭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했고요. 원서도 여기밖에 안 써서 마음을 비우고 시험을 봤습니다. 그래서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붙은 다음엔 학교랑 나랑 인연인가보다 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여기로 왔습니다. 전공 선택은 수업을 들으며 고민하고 있던 와중 재작년, 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다형문학상에 시, 소설, 희곡, 비평 원고를 모두 제출했어요. 다 내 본 다음 상을 주는 걸로 전공을 하려고 했죠. 그 중 희곡이 상을 받았구요."

주  막연히 대학을 못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부를 못하기도 했고…. 근데 워낙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중·고등학교 때 수업 대신 백일장에 많이 나갔어요. 특히 지방에서 하는 백일장을 많이 찾아다녔죠. 여행 아닌 여행이었어요. 근데 상은 계속 못 받았어요. 그러다가 고3때 상을 많이 받기 시작해서 그걸 가지고 대학교에 지원했어요. 입학하기 전에도 그렇고 대학 진학해서도 주위에서는 재능이 없다고 말씀하세요, 그래도 저는 시, 희곡 등 장르를 마다하고 마냥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연극 보는 걸 좋아했는데 대학교 2학년 때 백로라 교수님의 희곡론 수업을 들으면서 연극을 더 많이 보러 다녔어요. 수업을 들으며 희곡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죠. 제게 전공을 물어보면 아직까지 이거다 저거다 제 스스로가 결정지어서 얘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씀드려요. 그저 공연자체가 좋을 뿐이에요. 극작은 물론이고 연출, 평론, 스태프 등 다양한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3월 22일 부터 29일까지 대학로 꿈꾸는 극장에서 일주일간 진행된 이 공연은 전일, 전석 매진행렬이었다. 이 기쁜 결과가 결코 자신들 때문이 아니라며 이들은 한사코 두 손을 내저었다. 30~35분 내외의 세 작품은 100분 동안 전개됐다. 김진선의 <심야 정거장>, 정예원의 <Husband>, 주지윤의 <오늘의 계륵>이 바로 그 작품들이다.

"세 작품의 색깔이 뚜렷하게 달라요."

김진선의 작품은 무게가 있다. 그래서일까 <심야 정거장>의 전중용 연출 또한 그녀와 어울릴 법한 종교철학도다. "진선의 글은 쫀쫀하고 밀도가 높아요." 두 사람(정예원, 주지윤)이 표현한 대로면 글이 치밀하고 잘 짜여 있을 것이란 얘기 같은데. "쫀쫀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대사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전개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희곡쓰기의 즐거움은 ‘대사’에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 ‘쫀쫀하다’라는 말은 바꿔 말하면 대사가 입에 붙는다거나 뭐 그런 말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그녀는 연출에게 절대로 빼면 안 될 대사들을 정해주기도 하고, 대사를 빼야겠다는 연출에게 대사를 빼면 안 되는 이유를 A4 2장 분량으로 정리해서 준적도 있다. 밤새 커피를 마시면서 왜 이 대사를 빼면 안 되는지를 요목조목 설명도 하면서. 작품의 인물들이 나누는 불충분한 답변, 의미심장한 말, 수상한 대화들은 그녀가 대사에 기울였을 에너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Husband>는 초안에서부터 열세 번 수정된 손이 많이 간 작품이다. 밤샘작업과 떼작업을 좋아하는 정예원은 연습실에서 밤을 지새우며 배우들을 꼼꼼히 지켜봤다.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보며 대본을 수정해 나갔죠. 그러다보니 배우들을 보고 캐릭터를 만들게 되더라고요. 원래는 캐릭터에 맞춰서 배우들이 따라와야 하는데 말이죠.(웃음)" 실제 공연기간에도 작품의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벽에 연출에게 결말을 수정하는 게 어떻겠냐며 메시지를 보낼 정도. 결국 다음날 공연에서 작품의 결말은 살짝 달라지게 됐다. "공연기간에 따라 작품을 본 관객들의 느낌이 달랐을 거예요.(웃음)" <Husband>는 스릴러물과 어울리는 적절한 조명효과를 통해 연극에서 영상 이미지를 살려낸 작품이다.

"지윤이 글은 착해요. 왜냐면 글은 사람을 반영하니까요."(정예원) 그래서일까. 연출-작가의 첫 만남 때 <오늘의 계륵>의 정해균 연출은 공연을 통해 그녀에게 두 가지의 변화를 주겠다고 했다. 첫 번째는 ‘(이 일을) 하기 싫게끔 만들어주겠다.’는 것. 이는 연극과 극작이라는 일이 현실적으로 고된 작업이기도 하고 돈을 벌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연출이 그녀에게 해준 애정 섞인 조언이었다. 두 번째는 ‘너를 망가뜨려주겠다.’였다. 호방하고 자유분방한(?)한 연출과 달리 그녀는 작업 내내 ‘곰탱이’라고 불렸다. 정예원 학우는 ”오히려 이런 조언을 해준 정해균 연출님이 지윤이 때문에 더 순수해지신 거 같아요.(웃음)"라며 말했다. 그러나 착한 작가와 글답지 않게 <오늘의 계륵>은 총 제작비의 1/3가 투자된 ‘초특급 애니멀 블록버스터’ 공연이었다. 대사와 조명에 무게를 둔 <심야 정거장>, <Husband>와 달리 <오늘의 계륵>은 다양한 무대장치와 대도구, 소품을 감상하는데서 오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닭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퍼포먼스가 주요한 볼거리 중 하나였다.


글에 대해 책임감 있는 작가 되고 싶어

수업을 통해서만 접하던 공연 제작 과정에 실제로 참여한 세 사람. 작업을 하는 동안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고민도 적지 않았다. 그야말로 프로들과 함께한 작업이기에 배우기도 많이 배우고 깨지기도 많이 깨졌을 터.

정  재밌기도 했지만 좀 더 조심스러워졌어요. 내가 쓴 대사 한 줄에 여러 사람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는걸 보다보니 더 많이 생각하고 글을 써야겠구나를 느꼈어요. 더 잘 써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기고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해야 되겠더라구요. 내가 잘하지 못하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은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김  예전에는 대사 한 줄을 쓸 때 ‘그냥 이정도만 쓰면 되지’하고 생각했는데, 그 대사 한 줄을 가지고 배우 한 명이 며칠을 고민하며 읽는 걸 보니 대사 한 줄을 허투루 쓰면 안되겠더라구요. 특히 내가 이렇게 씀으로 해서 배우가, 연출자가 한 대사를 해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생각하면 쉽게 쓸 수가 없어요.

좋아하는 작가는요?

김  저는 우리 작가로는 오태석 선생님을 제일 좋아하고 외국작가로는 장 아누이(Jean Anouilh)라는 프랑스 희곡작가를 제일 좋아해요. 사무엘 베케트도요. 그냥 이 작가들의 작품들은 재밌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하면서 읽게 되요.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 소포클레스가 쓴 안티고네가 아닌 장 아누이가 쓴 안티고네가 있어요. 원작을 작가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다시 썼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안티고네라는 여자를 이 작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 시선을 볼 수 있으니까. ‘나’라면 어떻게 썼을까도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정  저는 박근형 선생님을 좋아해요. 제가 희곡을 쓴지 얼마 안돼서 글에 무게감은 없는데, 나중에 좀 쌓이게 된다면 날카로운 글. 웃긴데 그 안에 되게 날카로움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박근형 선생님의 작품이 그러해요. 예를 들어, ‘가족’이 사실은 행복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웃긴 가족을 그리면서도 가족 안의 신랄한 폭력 같은 것을 그려내세요. 다음으로는 부조리극을 좋아해요. 그중 ‘장주네(Jean Genet)의 폭력성 같은 것에도 흥미가 있어요.

주  아직까지는 마냥 공부하는 게 좋아서, 어떤 한 분을 딱 정해놓고 좋아한다고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그래도 한 분을 꼽으라면 오태석 선생님이요. 최근에 하신 작품은 봤지만 이전에 공연하신 작품은 희곡으로만 보고 실제 공연으로는 못 봤어요. 그래서 아쉬움이 있죠. 외국작가로는 해롤드 핀터(Harold Pinter)를 좋아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는 작가인 것 같아요. 여러 가지로 상상하게 만들고 시선을 끌고, 평범해 보이는데서 느껴지는 부조리함이나 독특함에서 묘한 매력이 있는 거 같아요.

그렇다면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김  저는 작품을 사랑해주는 배우라면 그 실력과 상관없이 좋아요. 저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평가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 배우가 제 작품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많이 읽으려하고 작품 속 역할이 얼마큼 되고자 하는지가 보이면 저는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예를 들어 배우 분들이 제게 대사의 표현을 물어올 때가 있는데, 사실 대사에 다 나와 있어서 모를 리는 없거든요. 하지만 더 잘하기 위해서 물어본다는 걸 알았고 이게 작품에 대한 이 사람의 표현이구나를 느끼게 됐어요.

정  대사가 많잖아요. 저는 대사 한 줄을 믿어주는 배우에게 고마웠어요. 제가 연기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이 부분은 일반 관객이 평가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이 배우가 이 대사를 믿어주는구나’하고 느껴지는 게 있어요. 믿고 대사를 뱉어주는 것과 믿어주지 못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어요. 감정을 연기하는 게 아니고 그 캐릭터가 돼서 감정이 나와 주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배우는 그 캐릭터가 아니니까 아마 대사 중에서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연습 때는 의구심이 들면 작가와 싸워도 좋아요. 다만 무대에 올랐을 땐 믿고 관객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배우는 대본을 믿어주고 작가는 배우를 믿어주는 거죠.

주  이번 프로젝트에서 <오늘의 계륵>에 대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닭 연기를 해야 되나 사람 연기를 해야 되냐’였어요. 대사는 사람의 말이고 모습은 닭으로 해야 하니 배우들이 많이 괴로워했죠. 그럼에도 작업하는 동안 배우들이 닭을 열심히 관찰하고 공부했어요. 닭이 어떻게 울고 어떻게 쪼고 하는지 등을 아주 자세하게요. 그리고 그걸 머리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배우 분들의 노력에 많이 고마웠어요.

김  연극은 무대 위에서 상연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일 거예요. 아무래도 희곡은 무대를 전제로 쓰는 거니까 내가 읽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무대화 되잖아요. 이게 참 매력적이에요. 내 대사를 내가 읽는 게 아니라, 각각 맡은 사람이 가져가서 내가 아닌 누군가의 입을 통해 발설될 때, 작품이 확 달라지더라구요. 저는 이렇게 될 줄 알고 썼는데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니까 완전히 다른 거예요. 그게 제일 재밌어요. 열흘을 공연하면 열흘 다 똑같은 공연이 아닐 정도니까요. 그리고 1-2시간 사이의 공연 시간이 컷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그 시간을 쭉 달리고 있다는 점도 연극을 볼 때마다 느끼는 멋진 점이에요. 한 편의 희곡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시도한 끝에 상연된 작품일 테니까요. 그리고 연극엔 ‘완성’이라는 게 없다고 해요. 이것도 연극의 매력이죠.

주  연극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의 시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연극을 바라보는 ‘나’에게도 시간을 갖도록 해요. 때문에 다양한 시간을 보고 느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데 연극을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저도 많이 어려워하는데(웃음) 그래도 그 어려움이라는 게 연극의 또 다른 재미인 것 같아요. 좀 더 많은 사람이 그걸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백로라 교수님 말씀처럼, 연극 한 편의 흐름이 전체적으로는 별로였으나 장면 하나에서 또는 대사 한 마디에서 감동을 받았다면 그걸로 그 연극은 좋은 연극이 될 수 있는 거 같아요. 영화를 보고 울거나 스릴을 느끼는 것처럼 연극은 연극을 하는 사람, 연극을 보는 사람 모두에게 치유의 시간을 주는 것 같아요. ‘시간을 갖게 하는 즐거움’ 그게 연극의 매력이 아닐까요.

정  영화도 많이 봐야하지만, 종합예술인 연극의 재미도 꼭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대본에는 소설이 있고 대본 안의 대사는 시적이에요. 또 배우들의 퍼포먼스, 음악, 조명으로 무대가 세워지죠. 아무래도 영화에 비해 잔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게 연극이에요. 하지만 오히려 유기농 채소를 먹는 듯한 그 느낌이 참 재밌어요. 연극도 사람을 상대로 보여주는 거니까 재미없을 수가 없습니다!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게끔 기틀을 잡아나가고 싶어요."
"이런 기회가 많이 주어졌으면 해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희곡전공자는 많지 않다. 알려진 것처럼 극작을 직업으로 삼아서 만족할만한 수입을 기대하기 어럽고, 작업자체가 고되기 때문이다. "저희 공연 프로그램 북에도 언급하셨듯이 백로라 교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비정한(?) 연극계의 현실에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나은 일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제자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정말 크세요. 그래서 오히려 연극인의 길을 추천하지 않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이 길을 선택한 세 사람은 이제 좀 더 먼 미래를 계획한다. 타 예대에 비해 극작을 하시는 본교출신 연극계 선배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세 명의 신진 작가들에겐 외롭게 넘어야할 산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극단 여행자와 함께한 두 달간의 협동처럼, 앞으로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탄탄한 기틀을 잡고자하는 바람이 그들에겐 있다. 끝으로 학생들의 사업에 대한 학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를 당부하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백로라 교수님과 극단 여행자에서 저희에게 벅찬 기회를 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앞으로는 학교와 학생들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이런 좋은 기회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극뿐만 아니라, 여러 개인 사정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치는 친구들이 있지 않도록 학교에서 열린 마음으로 도와주시기를 바래봅니다."

두 달간의 옥신각신 끝에, 3인의 무대가 올려졌다. 열 세 번의 대본 수정을 거치면서도 힘들여 쓴 한 줄의 대사를 소중히 하는 법을 배웠고 스스로에게 작가됨이 무엇인지 조심스레 물으며 보냈던 두 달. ‘퇴고’와 ‘고집’ 그리고 ‘자문’으로 압축되는 이 신진작가들의 겨울나기는 혹독하고 따뜻했다. 올 가을엔 교내의 김현승 시 낭송 대회에서 퍼포먼스와 영상이 결합된 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있을 이들의 숭실에서의 한걸음 한걸음이 한국 연극계에 커다란 희망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작품설명

>>‘심야정거장’(김진선 작, 전중용 연출)
이른 새벽, 정거장을 빙빙 도는 한 남자가 있다. 그와 함께 월남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버스를 기다린다. 방문객인 남자는 마을 밖으로 나가기 위한 교통편을 여자에 묻고, 한 번도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여자의 불충분한 답변에 답답해한다. 곧이어 여자가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여자의 남편이 술에 취해 등장하고, 남자는 남편에게도 길을 묻지만 남편 또한 마을을 벗어날 수 있는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지 못한다. 매장산이라는 미심쩍은 이름의 산을 방문한 남자는 마을버스에 타지만, 마을버스는 계속 같은 길을 돌아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오기만 할 뿐이다. 남편은 남자가 등산객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이 산에 온 것이 아니냐는 둥, 산은 간밤에 일어난 일을 다 안다는 등의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남자가 다시 떠난 뒤 부부는 그들끼리의 수상한 대화를 나누며 정거장을 떠난다.

>>‘Husband’(정예원 작, 이대웅 연출)
연이은 살인사건으로 인해 그 기운이 흉흉한 어느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남편과 아내. 아내는 뉴스에서 묘사하는 용의자의 인상착의와 사건이 발생하는 시간 및 장소를 들으며, 그와 상당부분 일치하는 최근의 남편의 행적에 대하여 점차 의심을 갖기 시작한다. 살인사건이 거듭 발생하고 남편을 의심하기 시작한 경찰과 부녀회장의 잇따른 방문에 아내는 더욱 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계륵'(주지윤 작, 정해균 연출)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울음과 달걀 장수의 메가폰 소리. 한쪽에서는 달걀이 생산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가지가 비틀린다. 이렇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양계장에는 수옥, 사임, 백이 그리고 장수가 있다. 장수는 아버지인 닭 장수의 뒤를 이어 달걀을 팔아서 먹고산다. 그는 입만 열면 “계란~계란이 왔어요.”를 외친다. 철부지인 수옥은 개에게 쫓기는 꿈을 꾸고, 한창때인 사임은 어떤 일에도 가장 성실하고자 노력하며, 노숙한 백이는 연장자이지만 여전히 자신을 영계라고 생각하며 산다.
이들에게는 서로가 서로에게 또는 어제와 내일 사이에 있는 오늘이, 버리기에는 아까우나 그다지 쓸모가 없는 ‘계륵(鷄肋)’과도 같다.

"재미없지 않아요. 재밌어요,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