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두 번째 꿈, 숭실에서 이루다
2004년에 열린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수필부문 대통령상 수상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홍보기획팀 유경문(문예창작 05) 주임
9월 7일 한경직기념관에서 제13회 119소방동요 경연대회가 있었다. 안전수칙을 담은 노랫말에 곡을 붙인 동요를 널리 알리는 대회로,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위기 대응력을 기를 수 있도록 기획된 행사였다. 학교 측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대회 취지를 감안해 무료로 장소를 제공했다. 마침 이 행사를 주도했던 소방재난본부 홍보기획팀의 유경문 주임은 문예창작학과 동문으로 재난 예방 업무와 더불어 문인으로서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채로운 경력을 가진 그가 숭실에서 배운 가르침을 들려주었다.
존경 받는 사회 구성원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에 따뜻한 웃음을 지닌 그는 89학번으로 타 대학에서 보건행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1995년 소방 공무원으로 입사하였고 화재진압, 119 구조대 등을 거쳐 올해부터 홍보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몇 마디 주고 받지 않았음에도 베테랑 소방관으로서 강철 같은 소명의식과 책임감이 전해져 왔다.
“10년을 현장에서 보냈고 7년은 행정 업무를 맡았습니다. 화재, 재난, 사고 등 저희 일상은 죽음과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 학교와 직장으로 흩어진 가족이 저녁에 무사히 집으로 모이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실감하며 산답니다.”
근무한 지 얼마 안 된 소방관 중에는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외상을 입고 평생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소방관 한 명이 국민 1천4백 여 명의 안전을 책임진다. 이는 일본의 2배, 미국이나 프랑스의 7배에 달한다. 평균 수명은 59세에 이직률이나 우울증 발병도 높은 수준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늘 감사함과 사랑을 보낸다. 실제 통계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고 의존하는 공무원이 소방 공무원이라고 한다.
“예방 홍보를 잘 하면 그 만큼 사고가 줄어듭니다. 우리 팀(홍보기획팀)은 사고가 잦은 시간이나 계절에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계를 내어 각 언론사에 전달합니다. 여름에는 에어컨, 선풍기 과열사고를, 추석 전에는 어르신들에게 목에 걸리는 음식은 주의해서 드실 것을 홍보하면 그 만큼 사람들이 대비를 할 수 있으니 실제로 예방이 되죠.”
내부에서 성숙해진 감수성을 벼리다
그는 현업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문학에서 위안을 찾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외부에서 받은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었던 것. 사회인이 되면서 점차 무르익은 필력은 공모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2004년에 열린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수필부문 대통령상을 받으며 염원했던 등단을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이 계기가 되어 문학특기생으로 문예창작학과 05학번으로 입학하며 배움의 갈증도 풀게 되었다.
“문학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고 싶었는데, 당시 서울에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학교가 별로 없었어요. 도심형 캠퍼스이면서 커리큘럼이 매력적이었던 숭실대로 진학을 결심했어요. 서른 다섯에 새내기로 수업을 들으려니 쉽진 않았어요. 하지만 친밀한 분위기와 교수님들의 격려로 금방 적응했죠. 지금도 가끔 동기 학생들을 만나는데 그들도 서른이 넘으니 이젠 같이 나이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한 집안의 가장이자 직장인인 그에게 진학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2교대 근무와 대학 수업을 병행하면서도 그는 그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했다.
“편중되었던 독서 시야가 넓어졌고 다양하게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조성기 교수님의 소설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 생생합니다. 얼마 전 119소방동요 경연대회를 모교에서 진행하게 되어서 무척 기뻤어요. 참가하는 어린이들은 앞으로 숭실대를 남다르게 기억할 겁니다.”
주말이면 그는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함께 집 근처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사이 좋게 읽는다. 요즘에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동화 구상을 하고 있다.
“가족은 소중한 독자이자 비평가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이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면 좋겠어요. 우리는 주어진 환경을 내 꿈에 맞게 조금씩 수선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자리에 있지 말고 느려도 좋으니 꾸준히 걷는 것이 필요하죠.”
한마디
"인생은 길고 배움에는 끝이 없습니다. 호흡을 길게 가지고 착실하게 전진하고 싶습니다. 처음엔 늦은 나이에 다시 대학에 입학한 것이 쑥스러웠지만 스승님들과 동기들이 있었기에 유익하게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상태인데 언젠가 다시 숭실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는 누구보다 성실한 학생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