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라인 슬라럼 세계랭킹 1위 김성진 학생(경영 09)

2012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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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라인 슬라럼 세계랭킹 1위, 지금까지 금메달만 107개

신생종목인 프리스타일 스케이팅을 즐기며 연습해

공부도 전교 1등 엄친아 경영학과 09학번 김성진 학생        

[인터뷰: 박고운 홍보팀 학생기자(행정09) stl0417@naver.com]

 첫 세계대회 진출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스피드, 프리스타일, 페어로 구성된 인라인 슬라럼은 현재 국내 많은 인라인 스케이터들의 사랑을 받으며 동호인만 4만여 명에 이르고 있지만, 과거 이 종목은 거의 불모지와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에 도입된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 프리스타일 스케이팅은 정해진 장애물을 통과하며 기술을 연기하는 신생 종목이다. 체계적인 기술에 대한 지식과 훈련 방향이 잡혀있지 않았기에 모든 기술을 연마하는 데 있어 몸소 시도해 보며 연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열악한 훈련환경 속에서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서기까지,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을까?

“다른 운동 종목과 같이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이 없었기에 훈련은, 제가 만족할 때까지 하는 수밖에 없었죠.” 만족할 때까지의 훈련, 그것이 매번 아시아선수권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 등을 휩쓴 김성진 선수만의 훈련 방법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삼촌을 따라 접한 인라인을 계기로 이 길에 접어들었다. 올림픽공원 근처를 터전 삼아 매일같이 인라인을 타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던 것이 다였지만, 그의 실력은 남달랐다. 인라인 슬라럼은 신생 종목이었기에 누구에게 배울 기회조차 없었음에도, 인라인 동호회 회원들과 기술을 연구하고 습득하기를 반복하며 이 분야에서의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프리스타일 스케이팅 역사의 개척자

"프리스타일 스케이팅 1세대 선수“

그를 지금 이 자리까지 키운 것은 오롯이 의지에 달려있었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이 없었기에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연기에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날이 밝도록 훈련에 몰두했다. 그날 목표한 기술을 완성할 때까지 하루 훈련을 마쳐 본 적이 없었다.
“프리스타일의 1분 40초라는 연기 시간 동안 후회 없이 재밌게 놀다 오자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그래서 매 순간 훈련에 임할 때도 후회 없이 이 순간에 몰두하자고 생각하며 연습에 임하죠.” 훈련의 양을 떠나 언제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에서, 세계랭킹 1위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명성으로 지난 2008년에는, 외국의 한 회사에서 그의 이름을 건 ‘KSJ’ 인라인 스케이트를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유명 셀러브리티들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패션계에서 가방, 구두 등을 내놓고 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이와 같은 셀러브리티가 있었다니, 다시 한 번 그의 업적에 놀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선수에 대한 편견?!

고등학교 시절 이렇게 좋아하는 운동을 잠시 멈췄다. 세상에 대한 편견에 맞서기 위해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1년간의 공백기를 가지며 공부에만 몰두했다. 충분히 특기자로 갈 수 있는 쉬운 길이 있었음에도 노력으로 얻어내고 싶었다던 그는 2009년 숭실대 경영학부에 합격했다. 당시 전교 1등을 기록하기도 했다는 그의 전적은 가히 ‘엄친아’라 불릴 정도였다. 운동과 공부, 욕심껏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모습이 대단했다.

운동의 길에서 공부의 길로, 성적에 욕심낼 법한 상황이었지만 부모님께서는 그의 의견과 선택을 아낌없이 응원해 주신 가장 큰 지원자였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버거움 속에서, 이에 대한 재능을 펼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앞으로의 포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운동인 ‘인라인 슬라럼’이라는 종목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노력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종목을 알리는 일이 선수로서 가장 보람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다짐과 같이 ‘인라인 슬라럼’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날도 머지않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2011년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인연을 쌓은 숭실대 생활체육학과 심성섭 교수님의 조언으로 생활체육학과를 현재 복수전공 하고 있다는 그는 이를 계기로 선수생활을 마무리 한 먼 미래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인라인 슬라럼’ 1세대 선수였기에 스스로 훈련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면서 훈련한 터라 더욱 힘든 점이 많았어요.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알기에 앞으로 뒤를 이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생활체육학과에서 이론적인 부분까지 공부해서, 선수 은퇴 후에는 인재 발굴을 비롯하여 코치로서 가르침을 잘할 수 있도록 자신을 다듬어 가려고 합니다.”


‘될 때까지 한다.’

그의 좌우명이 지금의 세계랭킹 1위를 이룩하였듯이. 우리가 그리는 미래도 이처럼 고집해 보았으면 한다. 한, 두 번의 시도 후에 ‘내 적성이 아니야’라는 말로 쉽게 마음 접어 버리는 것이 어느새 주변의 일상이다. 김성진 선수가 한 두 번의 좌절로 꿈을 쉽게 바꾸어 버렸다면, 지금의 타이틀을 목에 걸 수 있었을까?

나의 꿈의 잣대를 눈앞에 보이는 결과로 판단하지 말자. 지금까지의 날들 보다 앞으로의 날들이 더욱 많을 숭실인들이 진정한 나의 꿈을 꾸고, 될 때 까지 펼칠 날을 만들어보자.

성공의 왕도는 없다. 단지, ‘스스로의 의지’ 그것만이 정도를 말 해 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