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좋은 시인 곽문영 동문(국문 04)

2018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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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좋은 시인 곽문영 동문 (국문04)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8기 홍주성(국문 13) / kidinthai@naver.com]

 공기가 없다면 생명은 어떻게 되는가. 죽는다. 지당한 상식이다. 생물의 호흡 작용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앤드류 코트 교수는 지상에 산소가 5초만 사라져도 그 즉시 지구 종말로 이어질 수 있는 무수한 자연재해들이 발생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만큼 공기의 존재는 다방면으로 불가결하다. 하지만 날마다 공기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대다수 공기를 의식하지 못하고 일평생을 살아간다. 우리의 삶에 필수 불가결한 공기, 빛, 그리고 물은 생명 유지에 중추적이면서도 어디에든 존재한다.

 근래에 시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바삐 순환하는 사회에서 시는 난해하다는 간단한 평과 함께 이미 그 빛을 잃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즐겨 듣는 각종 노래 가사 역시 거시적으로는 시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는 이따금 공감이 되면서 힘이 되는 글귀를 SNS 프로필 대화명으로 설정하곤 하는데 그 글귀들 역시 시의 일부다.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시는 어디에나 있다.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 시성(詩性)이 부재한 삶은 경직되고 메마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시를 필요로 할까? 은연중에 스스로가 사회의 작은 부속품이 아니라 절대적 가치를 띤 인간임을 자각해야 할 순간을 필요하기 때문이다. E.A. 포에 따르면 시는 어떠한 목적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자체를 위해 쓰인다. 시는 개인의 내면을 담아내는 문학적 장르이고 개개인의 내면은 우열의 개념을 초월한다. 그 메시지를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늘날의 시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제 18회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곽문영 동문은 언어의 힘을 믿었다. 울림 있는 좋은 시를 쓰고 싶었고 언어의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또한 궁금했다. 그의 등단작인 「조랑말 속달 우편」, 「수경」, 「미래의 자리」 외 두 편은 시에 대한, 또 언어에 대한 동문의 바람과 생각, 고뇌를 여실히 드러낸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시인, 곽문영 동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 시 = 기쁨

 곽문영 동문에게 ‘시’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시란 기쁨이 되는 존재’라고 답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창 시절 때보다 오히려 규칙적인 삶을 살았어요. 동시에 퇴근 이후의 시간에는 직장을 다니지 않는 시인 지망생들보다 두 배, 세배는 더 투자해야 했지요. 그러다 보니 시는 제 일상 속에 깊게 스며들었고 언제부터인가 당연히 창작을 해야 하는 존재가 된 것 같아요. 반복적인 일이었지만 권태로움보다는 시 속에서 좋은 문장이나 표현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 더 컸습니다. 그 기쁨 때문에 시를 사랑할 수 있었고,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었습니다.”

2. 최승자 시인, 「밤부엉이」와의 만남.

 곽문영 동문이 시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극적이었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이기는 하지만 입학했을 당시부터 3학년 때까지도 시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에만 열심히 하던 어느 날, 국어국문학과 소속 엄경희 교수님의 ‘현대시론’ 수업의 시험에서 최승자 시인의 「밤부엉이」를 접하면서 시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시험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나갔는데 아름다우면서도 울컥하는 감정을 잊을 수 없더라고요. 비록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았으나 이로 인해 시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작품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시작하여 교수님께 첨삭을 받다가 자연스레 학과에서 시에 뜻이 있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되었죠. 최승자 시인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분이자 정신적 스승과도 같은 분입니다. 그분의 작품을 많이 읽어왔고 제 시 세계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시인으로서의 철학: 쓸모없음의 미학,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곽문영 동문은 시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유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위대한 시인들께는 그들만의 시론이 있다지만, 미숙한 단계에 있는 지금의 저로서는 저만의 시론은 없습니다. 다만 김현 선생님의 말씀처럼, 문학이란 가치 유무의 잣대에 종속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최근에 읽은 시집, 김민정 시인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란 시집의 제목이 그것을 좀 더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그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등단하기 이전까지 사람을 미혹하는 아름다운 문장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안미옥 시인의 작품처럼, 어떠한 작품은 세공되지 않는 평범한 문장으로 구성되었음에도 미문으로 구성된 작품보다 훨씬 큰 감동을 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작품에서 시어를 따와 체화하고자 노력했지만 도통 그 느낌을 자아낼 수 없더라고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일단은 좋은 사람이 되자’였습니다. 좋은 생각과 좋은 마음에서 비롯된 문장이야말로 미사여구가 전달할 수 없는 울림을 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깨달음 때문이었지요. 행여 의도되지 않았더라도 좋은 사람으로서의 좋은 숨결은 무심결에 시에 배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최선을 다해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4. 도서출판사 ‘창비’

 곽문영 동문의 ‘시’에 있어 문학 출판사 ‘창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지금은 문학 출판사 ‘창비’에서 마케팅 영업 업무를 하고 있지만, 6년 전에는 이번에 수상한 ‘창비신인시인상’의 지원자였어요. 재미있게도 당시에는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작품 모집 공고문과 더불어 보게 된 구인 공고에 이력서를 제출하였고 채용이 되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본사는 물론 여러 기관에서 주관하는 신춘문예에 지원을 했었는데, 6년 전에 실패의 고배를 건넸던 본사의 신춘문예에서 당선이 되어 등단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많은 의미와 고마운 회사입니다.”

5. 시인으로서의 삶

 곽문영 동문은 시인의 일상에는 시로 채워 넣을 공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제가 일하는 부서는 문학과 크게 관련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창작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문학과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기는 하나 엄연히 직장인인 만큼 일과 시간 중에 시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거의 없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언어라는 재료를 어떻게, 얼마만큼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예술적 호기심이 있고, 이를 고뇌하고 알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퇴근 이후의 시간에 만끽할 수 있는 친구나 연인 등의 일상적인 관계를 포기하며 그 빈 공간에 ‘시’라는 존재를 채워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하지만 시와 함께 하는 삶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 결단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6. 소마, 괄호, 엄경희 교수님

 교내에서의 동아리 및 모임은 그가 시인으로 거듭나기에 의미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교내 중앙 동아리 밴드 ‘소마’에서 열심히 활동을 했어요. 음악과 시에는 공통적으로 운율이 있지요. 밴드 활동을 하면서 쌓았던 그 음악적 운율은 시를 짓는 데 훌륭한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음악을 참고로 하여 시를 쓰기도 했고요.

 또 뜻있는 국어국문학과 학생들과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합심하여 만든 ‘괄호’라는 창작 모임에서 서로의 작품을 합평하고 교수님들을 찾아뵈어 작품에 대한 자문을 듣곤 했지요. 제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를 꼽는다면 시, 그리고 음악일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숭실대학교에서 발견했고 경험했고 얻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곽문영 동문은 본교 국어국문학과 소속의 엄경희 교수를 또 다른 어머니로 여긴다고 답했다.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엄경희 교수님과 함께 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입니다. 시험 때 ‘밤부엉이’를 접한 직후 무작정 교수님께 습작 네 편을 써서 드렸던 적 있습니다. 약 일주일 후,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서 잠시 교수실로 찾아오라고 하셔서 갔었는데 그때 크게 감동했습니다. 제가 건넨 습작품 네 편의 종이에 피드백이 아주 꼼꼼하게 메모가 되어있었던 것이지요.

 교수님께서는 저를 소파에 앉히시고 두 시간이 넘도록 문제점을 하나하나씩 자세히 지적하시고 이를 반영하여 지속해서 퇴고하여 가지고 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방학 숙제도 내주시면서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라고 권유하시기도 했고요. 매 계절마다 제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셨고 도움이 되는 책들도 많이 선물해주셨습니다. 그 중 성귀수 시인의 「숭고한 노이로제」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여러분께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기존에 언어가 지닌 통념을 철저히 전복시킴으로써 전혀 다른 사유를 작동케 하는 위력을 지닌 작품이지요. 말로써 설명드리기는 어려우니 직접 구매하셔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7. 시를 사랑하고 꿈꾸는 숭실대 후배들에게.

 곽문영 동문은 시를 지향하는 학생들이 일상적 강박에서 벗어나 ‘무의미함’과 친해지라고 충고했다.

 “재차 말씀드리듯, 시를 쓴다는 행위는 매우 비효율적인 작업이에요. 생산적이지도 않고 훌륭한 자본주의적 상품도 아니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족’, ‘무의미’, ‘공상’, ‘아무것도 하지 않음’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노력 중심주의의 사회에 살면서 항상 의미 있는 일들을 강요받잖아요.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더불어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상기한 요소들에 자연스레 반감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감각들을 열어두고 이 요소들을 자유로이 즐기다 보면 강박들이 하나둘씩 지워지면서 자신만의 철학 혹은 미학이 탄생할 것이라 믿어요. 시를 열심히 읽고 습작하는 것도 좋지만 느슨한 마음가짐으로 세상과 마주한다면, 그 공백 속으로 세상이 선사하는 공명이 있을 거예요. 그 공명을 토대로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늘 조급하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등하지 않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도 방심할 수 없다. 따라서 공상과 무행동(無行動)은 터부시되고 죄악시된다. 이러한 경향이 극대화되어 청년층은 번 아웃 되었고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성행했다. 어떤 이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고, 어떤 이는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고, 어떤 이는 개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현상에 대해 시인은 말이 없다. 다만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시 속에 담아낸다. 그 내면이 반드시 건전하고 희망찬 메시지를 내포한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시인은 자신의 작품이 사회적으로 쓸모 있지 않은 존재로 낙인 될 수도, 어쩌면 단 한 번도 읽히지 않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개의치 않고 시를 쓴다. 내면을 투영하는 그의 작품에 고유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인의 태도를 견지해 볼 필요가 있다. 무의미한 시간 속, 공명으로부터 탄생한 곽문영 동문의 작품을, 삶이 고달프고 지칠 때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바로 그때, 단순한 위로보다 더욱 강력한 울림이 우리의 메마른 마음속에서 공명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왔을 때 문득 그의 당선작 중 하나인 「수경」의 마지막 시구가 떠올랐다.

‘잠자리를 묻고 내려가는 숲길이 어두웠다 우리는 오래 헤맸고 만약 더 어두웠다면 숲 속에서 빛을 내는 것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눈을 감자 우리 모두 밤을 만들 줄 아니까’

* 곽문영 동문은 04년에 국어국문학과를 입학하여 18년에 ‘제 18회 창비신인시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도서출판사 <창비>에 근무하며 작품을 창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