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대학 온라인 강의 들어도 학점 인정해야”-조선일보

2021년 5월 4일
147107

[대학총장, 미래를 말한다] 장범식 숭실대 총장

“다른 나라 대학 강의도 원하면 듣고 학점으로 인정해줄 수 있어야죠. 대학도 ‘DIY(Do It Yourself·스스로 만들기)’ 시대가 됐습니다.”

 

장범식(64) 숭실대 총장은 3일 “자기 학교에서 개설한 과목만 수강할 수 있었던 폐쇄적 학사 운영으로는 대학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숭실대가 운영 중인 ‘DIY 자기설계 융합전공’은 학생 스스로 교육과정을 설계해 교과목을 구성하고 전공 이름까지 정할 수 있는 제도다. 숭실대 내 강의뿐 아니라 다른 국내 대학, 해외 대학 강의도 과목으로 이수할 수 있고, 수강생이 정한 융합 전공 이름이 학교 승인을 받으면 주전공과 함께 졸업증명서에 기재된다. 예컨대 64국 자매 결연 대학 417곳 가운에 하나인 미국 보스턴대, 스페인 바르셀로나대의 강의를 듣고 학점으로 인정받고, 융합 전공 이름도 ‘IoT(사물인터넷) 공연 설계’ 등 학생이 창의적으로 정할 수 있다. 자기 학교 강의실에서만 모여 앉아 수업하는 전통적인 대학 모습은 종언(終焉)을 고하고 있다.

 

장 총장은 “학생들이 국내외 대학들의 ‘온라인 공개 강좌(MOOC)’를 골라 들어도 학점으로 인정받는 열린 생태계로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들이 해외 우수 강의로 쏠리면 국내 교수들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는 우려도 있지만, 우리나라 대학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교수들도 학생들이 국내외 최고의 강의를 듣고 성장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돕는 한편, 강의 부담이 줄면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는 식으로 다양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부터 숭실대 신입생은 의무적으로 복수 전공을 가진다. 문과건 이과건 상관없다. 총장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사안이다. 그는 “과학기술 변화가 사회 전반 혁신을 이끄는 시대에 문·이과 융합형 창의인재를 키운다는 취지”라며 “경영학만 공부한 학생보다는 바이오 등 신산업까지 공부한 학생을 기업이 더 선호하는 것처럼 복수 전공이 학생들 취업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숭실대는 1991년 국내 첫 인공지능학과를 열고, 2006년 단과대학으로 IT(정보 기술) 대학을 최초로 세웠다. 1970년에 국내 대학 최초로 전자계산학과를 신설한 전통을 계승한 조치였다. 오는 9월에는 AI(인공지능) 전문 대학원 해외 분교를 중국 톈진사범대에 연다. 장 총장은 “숭실대는 ‘숭실의 모든 학문은 AI로 통한다’는 비전을 세우고 학교 교육과 연구 등 모든 DNA를 AI 융합형으로 바꾸고 있다”고 했다. 모든 학과에 전공과 AI를 접목한 융·복합 교육과정을 도입하는 등 AI 비전 실현을 위해 5년간 35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숭실대가 염두에 둔 또 다른 비전은 ‘북한 및 통일 정보 집합(集合) 지식 생산 플랫폼’. 숭실대 모든 전공 교수 530여명이 각각 1개 이상 자기 연구 분야를 북한이나 통일에 접목해 결과물을 축적하는 체계다. 장 총장은 “기계공학부와 전자정보공학부가 통일 이후 북한의 자율 주행 체계를 설계하고, 사회복지학부는 북한의 사회복지와 국제 개발 협력을 연구하는 식으로 교수마다 자기 전공에서 북한 관련 연구 성과를 내놓으면 정부가 하지 못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다”고 했다.

 

숭실대가 이렇게 통일 관련 연구에 적극적인 이유는 이 대학 역사와 관련 있다. 숭실대는 1897년 미국인 선교사 베어드 박사가 평양에 설립한 숭실학당이 전신이다. 1938년 일제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했다가 1954년 서울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장 총장은 “통일 이후 숭실대는 고향인 평양에도 문을 열 것”이라며 “통일 시대에 나라를 이끌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미국 텍사스대(오스틴)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95년부터 숭실대 교수로 재직 중인 장 총장은 지난 2월 숭실대 제15대 총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