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극장에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아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때 까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요."
[인터뷰: 송혜수 홍보팀 학생기자(문예창작 09), hyesoo11011@daum.net]
이제는 명실상부 대학로 명품 연극으로 자리하여 영화화로도 유명해진 작품 <그놈을 잡아라>. 그 중 작품에서 1인 13역으로 관객들에게 깊게 각인되는 인물, ‘멀티우먼’은 웬만한 기성여배우들도 소화하기 힘든 역할이다. 웃음코드를 유지하면서도 세 인물들 간의 특징을 살려내야 하기 때문. 배우 곽수정 동문(국문 83)은 이 ‘멀티우먼’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을 뿐 아니라 그녀만의 캐릭터로 승부한 인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녀가 숨 쉬고 뛰는 그 현장, 대학로에서 설레는 만남을 시작했다.
‘학교에 연극을 심는 사람들’
인터뷰 당일에도 곽 동문은 작품 연습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작품 속 캐릭터를 잠시 벗고 꾸밈없이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배우 그 자체였다. ‘곽 배우’의 근황이 궁금했다. “대학로 드림시어터 소극장에서 오픈런에 있는 <그놈을 잡아라> 계속 출연 중에 있고요. 교육극단 ‘학교에 연극을 심는 사람들’ 대표를 맡게 되어 출연 및 행정과 연기 지도 등을 하고 있답니다.” 교육극단에 누구보다 온 신경을 쏟고 있음을 그녀의 자세한 설명에서 알 수 있었다.
“일반교사와 배우들로 이루어진 이 극단은 경기도 교육청에서 선정한 작품 <깨어라 너의 잠에서>를 가지고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상대로 공연을 하고 있어요. 물론 학교 폭력 및 학교 현장의 문제들을 다룬 작품이기에 보람이 굉장히 크죠. 올해 상반기까지 13군데 등의 학교를 순회했는데 반응이 좋아요. 다들 하반기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숭대극회 출신이다. 잊지 않고 후배들을 찾아 다각도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학교에 연극을 심는 사람들이란 이름이 낯설지가 않다. “숭대극회에서는 한 학기 정도 활동을 했는데, 사실 그때도 배우에 대한 꿈이 확고하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문학과 노래에는 관심이 늘 있었기 때문에 예체능계열로 길을 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정도만 있었죠. 그러다 대학에 들어와 동아리를 찾던 와중에 숭대극회를 들어갔던 것이고, 짧은 활동 후 오랜 휴학 끝에 86년도 극단 ‘뿌리’에 입단을 하게 됐어요.”
가스펠, 꿈을 만나다
곽 동문은 극단 ‘뿌리’에서 뮤지컬 <가스펠>을 만나게 된다. 바로 배우에 대한 꿈을 확고히 해준 작품이다. “부스싱어를 맡았는데 이전과 다르게 그때는 부스싱어들도 무대에 단을 만들어 관객들이 직접 볼 수 있게 꾸몄어요. 지금은 쟁쟁한 배우, 가수 분들과 함께 무대에 섰는데 딱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 일을 해야겠구나, 내가 그래야 행복하겠구나!’라고 말이죠. 마치 세례를 받은 느낌과 같았어요.”
하지만 늦은 나이에 배우로 들어서, 갖은 고생의 시간도 많았다. 프로 데뷔 무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1990년에 다시 연구생(수습단원) 신분으로 뮤지컬 배우로서의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극단 ‘뿌리’는 정통리얼리즘 색깔이 조금 뚜렷하면서도 정통연극에 판타지적인 느낌을 넣어 <가스펠>과 같은 뮤지컬 작품들을 많이 탄생시켰어요. 그래서였는지 뮤지컬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은 마음에 ‘현대극장’에 재직하게 됐어요.”
“저는 뮤지컬 배우, 정극배우 구분을 하지 않아요. 대학로 소극장에서 이뤄지는 배우들의 역할이 실제로 또 그러하고요. ‘현대극장’에서의 10년이 현재는 이러한 분위기에 제가 잘 녹아들게 도와주었고 어떻게 보면 장점 중 하나기 때문에 헛된 시간들은 분명 아니었죠.”
인정을 받기까지
‘현대극장’에서 10년간 오래 재직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배우에 대한 시스템 기반이 가장 크다. “보통 추세가 극단에서는 배우가 행정적인 것 까지 담당해야 하는 면이 있는데 현대극장은 전문적이고 체계적이었어요. 좋은 작품을 연달아 할 수 있고, 오롯이 연기에만 몰두할 수 있게 해줌은 물론 페이까지 잘 챙겨줬으니 그만 둘 이유가 없죠.(웃음)”
그녀는 2001년에 비로소 프리로 전향하게 된다. 아마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뗄 수 없는 고민 중 하나가 극단으로 시작을 해야 하는지, 애초에 프리랜서로 시작해 작품을 따라 오디션을 봐야하는지 일 것이다. “이쪽 길로 가겠단 어린 후배들을 만나면 솔직히 확실한 조언을 주기 어려워요. 그만큼 변수가 많은 점이 이쪽 계통이다 보니.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배우로서 인정을 받기까지 인내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또 그러다 운이 맞으면 탄탄대로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뛰어들 수 있는 배우에 대한 의지가 아마도 가장 필요하겠죠.”
학교로 돌아온 것은 94년도 복학을 통해서다. 남들은 굳이 ‘국문과’로 가느냐 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개인적으로 국문과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그동안 학업을 마무리 짓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컸던 것 같아요. 깨끗하게 학문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마음이죠. 그리고 국문과를 졸업 후에 연극영화과에 가도 늦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기도 했고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한참 어린 후배들 틈에서 부끄럽지 않게 공부했다. 처음 가졌던 생각대로 현재는 연극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자 경기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 끝나지 않는 공부를 진행 중에 있다.
“작품들이 다 문학에서 출발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국문과를 선택하고 졸업한 것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돼요. 또 오랜 시간 실제 무대에서 작품들을 접하다가 이론으로 배우는 시간들이 재미도 있고요. 그때 바로 연극영화과로 가지 않고 멀리 내다볼 수 있었던 선택이 전 탁월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길로 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랄까.”
멀티우먼, 곽수정
엄마 곽수정도 왠지 멀티우먼처럼 척척 잘 소화해내지 않았을까. “결혼을 좀 늦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늦게 낳아서 이제 고등학생, 중학생 이렇게 있는데, 아이들 유아기 때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했어요. 직업 특성상 불규칙적인 생활이 지속되니까. 그래도 고맙게도 잘 커줬어요. 크게 속 썩인 일도 없고. 스스로 독립적으로 자랐다고 봐야죠.(웃음) 어느 정도 엄마의 일을 이제는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게 고마울 뿐이에요.”
그녀는 요즘 너무나 바쁜 일상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TV드라마, 영화, 예술 강사로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기까지. 그야말로 멀티녀의 삶을 누리고 있다. “제 삶이 ‘연극 보는 것’, ‘연극 하는 것’ 이 두 가지로 이뤄져있어요.(웃음) 온통 연극으로 이뤄진 일상이죠. 연극을 가르치는 일도 제게는 적성에 맞아요. 다행이에요. 쉼 없이 더 늦기 전에 삶 속에서도 다양한 곽수정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그녀는 “‘학교에 연극을 심는 사람들’ 극단이 더 많은 학교를 찾아가서 연극을 하게 되는 시스템 구축과 배우로서 ‘이런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도전할 수 있는 역할들을 잘 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라고 전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극장에서 연습하고, 공연하고. 아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을 때 까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요.”
배우 곽수정만의 좋은 연기를 아주 오래토록 보고싶다.
*곽수정 동문은 본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86년 극단 ‘뿌리’에 입단해 뮤지컬 <가스펠>로 데뷔하게 된다. 그 후 연극 <그놈을 잡아라>, <존 왕>, <풍금소리>, <손님>, 뮤지컬 <요덕스토리>, <청년 장준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외 다수 출연하며 대학로 명품 역할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현재 교육극단 ‘학교에 연극을 심는 사람들’ 대표, 문화예술진흥원 소속 예술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활동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