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목소리, 성악가 김민석 동문 (수학 86)

2017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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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목소리, 성악가 김민석 동문 (수학 86)

[인터뷰 : 학생기자단 PRESSU(프레슈) 6기 최정훈(글로벌통상학과 10) / cocoland37@naver.com]

예술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의 삶을 알게 됐을 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번 숭실피플에서 만난 성악가 김민석 동문 (수학 86)이 그러하다. 그를 만나 목소리의 예술이라 불리는 성악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성악가를 꿈꾼 수학도

수학과 출신인 그가 어떻게 성악가의 길을 가게 됐는지 궁금했다. “저는 원래 음치인 줄 알았어요. 그러다 남녀공학에 입학하게 되었죠. 음악시간이 남녀 합반이었는데, 창피를 당하기 싫어서 음악을 하던 친누나에게 노래를 배우게 됐어요. 그때 누나가 제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해줬죠. 그래서 학교 합창부에도 들어가고, 교회에서 성가대도 하게 됐어요. 그렇게 성악에 관심을 갖게 됐죠.”

성악에 매력을 느꼈지만, 그는 숭실대 수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성악을 좋아했지만, 처음엔 직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수학을 좋아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수학은 거의 만점이었어요. 게다가 숭실대가 미션스쿨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졸업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수학이 좋아서 수학과에 진학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제 자신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취업을 해 직장생활을 할 생각을 하니 그것도 저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죠. 그러다 채플시간에 대학 찬양 선교팀이 부른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결심하게 됐습니다. 노래를 하며 사는 삶을 살겠다고요.”

불안한 마음을 잡아준 재능

김민석 동문은 남들보다 조금 늦게 성악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확인과 믿음이 있었다. “사실 남들이 보기엔 조금 무모해 보였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확실히 늦었으니까요.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래도 제가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재능에 대한 확인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특히 CCM가수 박종호 선생님으로부터의 인정은 자신의 재능에 확신을 주었다. “그 당시 박종호 선생님은 정말 유명하고 바쁘신 분이었습니다. 어렵게 연락처를 구해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는데, 처음엔 거절하셨어요. 하지만 제 노래를 들으시곤 자신이 직접 가르쳐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제 재능에 대한 확신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성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다

김민석 동문은 숭실대를 졸업한 후 서울대 성악과 학부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저는 당시 박종호 선생님의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숭실대 졸업을 앞둔 제게 서울대 성악과 시험을 보라고 강권하셨어요. 그래서 서울대에 지원했죠. 사실 서울대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만 합격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었죠.”

그는 입학한 후가 훨씬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창청음, 화성학, 대위법 같은 것들은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남들에 비해 음악적 기초가 부족했으니까요. 따라잡기 위해 연습실에 거의 살다시피 했습니다. 밤낮없이 공부하고 연습했죠.”

성악을 포기하게 만든 절망

김민석 동문은 서울대 성악과 졸업을 앞두고 이탈리아 유학 준비까지 모두 마친 상태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맞는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무리했는지 결국 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4학년을 마치고 유학 전 마지막 오페라를 준비하면서 목에서 터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죠. 겨우 오페라를 마쳤지만 목 상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결국 목이 아픈 채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어요.”

그는 자신의 목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30분만 노래를 해도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병을 이해하기 위해 음성학과 해부학까지 공부했지만, 7년 동안 계속 나빠지기만 했어요. 그 사이 첫째 아이가 태어났지만, 늘어가는 병원비와 학비 때문에 모든 상황들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그때는 매일 울면서 살았습니다. 결국 7년 만에 성악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죠.”

다시 한 번 성악을 붙잡다

김민석 동문은 성악 대신 다른 일들에 많이 도전했지만 성악에 대한 마음을 쉽게 접을 수가 없었다. 절망 속에서 기도하던 그는 ‘네가 배운 대로 말고 내가 너를 지은대로 노래하라.’는 기도응답을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은대로 소리 내는 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해부학과 해석학을 공부했던 경험을 살려 새롭게 소리 내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어요.”

그는 아내와 함께 소리 내는 법을 익히면서 목이 아프지 않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의 새로운 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제가 생각한 새로운 방법으로 노래하니 목이 괜찮았습니다. 소리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원래 바리톤이었던 제 소리에서 베이스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을 그렇게 부르고 나니까, 다시 성악가로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기적 같은 반전

김민석 동문은 이후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목소리를 바꾼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제 은사님도 제가 베이스로 다시 노래한다는 말을 했을 때, 믿지 않으셨죠. 하지만 저는 다시 도전했습니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 오페라단 오디션에 참가했죠. 경력이 화려한 많은 사람들이 그 오디션에 참가했습니다. 그에 비해 제 경력은 초라했죠. 그렇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합격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죠.”

그의 놀라운 반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제 인생은 절묘한 퍼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팠을 때 공부했던 음성학, 해부학 그리고 해석학이 지금 제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레슨을 할 때, 보다 명확하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 경험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들에게 제가 더욱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꿈과 숭실대 학생들을 위한 조언

김민석 동문은 자신의 목소리로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제 친동생이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저는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동생을 들려주기 위해 제 노래를 녹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처음 성악을 하게 되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원래 제가 꿈꿨던 성악가는 큰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성악가가 아니었습니다. 제 목소리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는 성악가가 저의 꿈이었습니다. 제가 목사나 선교사는 아니지만, 제 찬양과 노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숭실대 학생들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말했다. “여러분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은 깁니다. 제가 먼저 살아보니,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아요. 하지만 언제나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는 거예요. 제가 다시 노래를 시작할 때도 그 마음이 너무 간절했거든요. 자기가 원하는 일이라면 두려워 하지마세요. 그리고 용기를 가지세요.”

김민석 동문은 자신의 삶이 크게 바뀌어 왔지만, 단 하나의 오차 없이 다 준비되어있던 길을 걸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절망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해온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목소리로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해줄 그를 응원한다.

* 김민석 동문은 숭실대학교 수학과(86)를 졸업 후,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해 4년 후 졸업했다.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 오페라단에 선발되어 많은 공연에서 활약했다. 현재 최근 앨범을 발매한 그는 숭실대학교 베어드학부에서 교양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으며, 숭실대 채플 공연도 주기적으로 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