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준비하는 황해도지사, 한상순 동문(경제 61)

2015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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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곳에 길이 있다”
 통일을 준비하는 황해도지사, 한상순 동문

[인터뷰송하나 홍보팀 학생기자(스토리텔링 11), gksk621@naver.com]


혹시 황해도를 아시는가? 다른 곳이 아니라, 북한에 있는 바로 그 황해도다. 그렇다면 혹시 황해도지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아시는지? 놀랍게도 황해도지사는 대한민국, 남한에 있다.

분단선 너머에 있는 ‘황해도’의 도지사가 남한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아하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있는 황해도지사는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행정적 사례 중 하나다. 그렇다면 현재 황해도지사는 과연 누구일까? 그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또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는 미래를 준비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최근 황해도지사에 취임한 한상순 동문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황해도 출신 탈북자들을 위해 준비된 황해도 출신의 ‘황해도지사’

이날 인터뷰는 서울 구기동 소재 이북5도청이 있는 한상순 황해도지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먼저 동문에게 ‘대한민국에 있는 황해도지사’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다.

“황해도는 북한에 있는 땅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황해도지사로서 제가 맡은 관할구역은 없고 현재 북한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과 탈북자들 4백만명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실제 행정 등 다방면에서 일반 도지사와 같은 업무를 하고 있고요. 제가 북한 황해도 출신으로 남한에 내려와 정착했기 때문에 황해도지사로서 탈북 주민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이북5도 위원장도 맡게 되면서 언젠가 남북이 통일이 될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황해도 출신인 동문에게 ‘황해도지사’라는 직함은 유독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북한 출신으로 남한에서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땠는지 물었다.

“저는 이북 황해도에서 내려온 피난민 출신입니다. 부모님과 형과 함께 내려오면서 적응하느라 고생했지요. 형은 서울로 가서 공부하느라 고생하고, 저는 어머니와 도토리를 따 연명하며 섬에서 살았고요. 도저히 견딜수가 없어서 어머니께 허락을 받아 와이셔츠에 운동화 하나를 가지고 표를 어서 13살에 인천엘 도착했어요. 갈데가 없으니 여관도 아닌 도방이라는 곳에서 지내면서 부둣가를 기웃거리다 고향에서 알던 형을 만났죠. 그 형 덕분에 우리 형을 만나 가나안고농군학교에 가게 되었고 김영기 장로님을 만나 거기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장로님덕분에 중학교도 다니게 되었고요. 그 과정에서 김영기 장로님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되었죠. 장로님을 만난 건 제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학교보다 일을 먼저 배웠던 어린 시절, 공부를 하기 위해 택한 숭실대
 

이후 동문은 공장을 다니며 고생하다 공부를 결심하고 경기대학교 야간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껴 편입시험을 봐 숭실대학교에 편입학했다. 당시 동국대, 성균관대, 숭실대 3곳에 합격했던 동문이 숭실대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동문은 직접 각 학교들을 방문해 학교의 분위기를 살폈다고 한다.

“3학교 중 숭실대를 택한 건 숭실대 특유의 공부하는 분위기 때문이었어요. 열댓명이 한가족처럼 공부하는 모습이 100명이 넘는 강의실이나 지나치게 권위적인 모습과 비교되더군요. 배움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기독교학교인 숭실대의 면학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상순 동문은 1961년 숭실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숭실대가 1954년에 서울에 재건된 후 입학한 동문은 혹시 재학 당시 선배들에게 ‘평양 숭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았을까? 동문에게 ‘평양 숭실’에 관해 들어본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제가 재학 당시엔 남북통일에 대한 기대가 희박했습니다. 그래도 당시 학생들에겐 통일이 되면 평양에 있는 우리 학교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통일을 대비해 14대 동문회 때에는 장학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14대에 이어 제가 15대 동문회장이었을 때도 모금을 했었죠. 평양 숭실에 대해 직접 겪어보거나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통일이 되면 우리 학교를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의식을 가지고 다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숭실대 재학 시절 보여줬던 애교심

그렇게 원하던 숭실대학교에 입학한 뒤 동문의 학창시절은 어땠을까?

“학교에 대한 애정이 큰 학생이었습니다. 우리 학교의 성장을 위해서는 외부에서 온 타대학 출신이 총장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학교 출신 인재들도 충분히 그 능력이 되는데 안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숭실대학 출신을 총장으로 하자는 의견을 냈는데 이에 동조하는 여론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추진이 되었고, 그 이후 숭실대 총장은 숭실대 출신 동문이 맡게 되었죠. 제가 동문회장을 할 때는 학교의 발전을 위해 우리 학교 인재들을 양성하자는 차원에서 장학금 기금도 마련했고요”

당시를 회상하던 한상순 동문은 당시 추진했던 장학금 제도로 현재 후배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매해 꾸준히 10명의 학생들이 장학 혜택을 받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자 동문은 뿌듯해하며 해당 장학금을 수령하는 학생들의 성취를 격려했다. 동시에 황해도지사로서 탈북민들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동문은 “탈북 청년들 중에서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그 학생들은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는 것도 어려워하고, 대학을 졸업을 해도 취직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안타까워하며 “단순히 대학 입학과 졸업 등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탈북민들의 취업을 위한 별도의 다른 시스템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라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숭실대 동문들에게 “자신을 믿으며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길”

이어서 동문에게 숭실대 동문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여러 국내 기업들의 선례를 보면 자기 전공에 열중하면서 성공을 이뤘습니다. 우리 숭실대 후배들도 그걸 믿고 전념하면서 포기하지 말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야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멘토가 있다면 훨씬 더 수월하겠지만 멘토가 없다고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숭실대를 졸업한 후 가고 싶었던 기업에 떨어지기도 했고, 여러 사업을 해보며 저에게 맞는 길을 찾아냈고 지금의 성공을 이뤘습니다. 숭실대 후배 여러분들도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길 바랍니다”

황해도지사로 있는 임기동안 황해도민을 위해 정직하게 일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추후 통일이 된다면 평양에 숭실대를 재건하고 싶다는 한상순 동문. “바라는 자에게 길이 있다”라는 말을 믿으며 노력하는 한상순 동문의 염원이 꼭 이루어지길 빈다.

   

*한상순 동문은 본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주)세림화이버 회장, 기독교 대한감리회 재단이사,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유치위원,제15대 숭실대 총동문회장을 지냈다. 현재는 황해도지사이자 이북5도 위원회장으로서 통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