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 이의수(정치외교ㆍ84학번) 동문

2008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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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 이의수(정치외교ㆍ84학번) 동문




축구선수 출신의 CEO라고 하면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고3때까지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정치외교를 전공한 후, 현재는 기업 경영과 동시에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직에 있는 이의수 동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때문에 이 동문은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다. 졸업 후 바로 만도그룹에 입사해 기획조정실 인사팀에도 근무했던 이력에 맞게 이 동문은 경영이 손에 맞는다. 이 동문은 단순히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기업+봉사’가 결합돼 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축구선수, 기업체 취직, 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 사업체 운영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삶을 장식하고 있는 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 이의수 동문을 만났다. 


 


축구선수를 그만두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중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한 게 축구생활에 발목을 잡았다. 고3이 됐을 때 협회에서 동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시합을 할 수 없다는 공문이 왔다. 새로 만들어진 규칙이었다. 결국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여자축구연맹회장 직에 벌써 6년째 자리하고 계십니다. 그동안의 성과와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요?


취임 당시 실업팀이 단 2개 밖에 없었다. 적어도 4개 이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3월 실업팀이 6개로 늘었다. 또한 여자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여군상무팀을 창단했다. 2008년 제천에 센터를 착공해 2010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파주에 국가대표 센터가 있긴 한데 남녀 두 팀을 수용하기엔 무리다. 제천 센터가 완공되면 여자축구의 위상과 사기가 진작될 것이다. 2003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2004년 여자청소년 아시아 축구가 우승했다. 이어 2005년 국가대표 동아시아 우승을 해냈다. 모두 최초로 이뤄낸 것들이고, 여자축구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부분이라 잊을 수가 없다. 


 


그럼 여자축구연맹 회장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월드컵 4강에 진출하고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것이 최종 목표이자 바람이다. 내년에 실업리그를 출범하는데, 이를 통해 여자축구의 저변이 확대되리라 기대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여자축구도 생활축구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미비하다. 현재 우리 여자축구의 기량은 높지만 이런 점이 곧 얇은 선수층이라는 안타까운 결실로 이어진다. 해결해야 할 문제다.


 


또한 나는 선수들에게 운동만 하도록 하지 않는다. 학업보충을 위해 실업팀을 두고 있는 대교 학습지에서 영어와 한자를 무료로 수업받고 있다. 나 역시 운동을 하다 보니 수업을 많이 빠졌다. 때문에 대학은 들어갈 때도 고생이었고 들어가고 나서도 공부가 힘들었다. 운동선수 생활이 끝이 아니고, 아니어야 한다. 계속 선수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지식이 필요하다. 이는 곧 선수생명과도 직결될 것이다. 어려서부터 습관화 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특히 어학과 독서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좋은 지도자, 좋은 엄마, 좋은 행정가가 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좋은 결과도 있었지만 한편 힘드신 점도 많았을 텐데요.


여자축구의 인지도가 낮은 것이 가장 문제였고 힘든 점이었다. 예전에는 스포츠방송에서 1년 동안 3번밖에 경기가 방송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요즘은 15번이나 나온다. 아마추어로는 최고다. 또한 선수층이 얇아 여간 속상한 게 아니었다. 북경올림픽과 여자월드컵 때 주전선수가 5명이나 부상당하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여자축구의 인지도가 낮은 것이 가장 문제였고 힘든 점이었다. 예전에는 스포츠방송에서 1년 동안 3번밖에 경기가 방송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요즘은 15번이나 나온다. 아마추어로는 최고다. 또한 선수층이 얇아 여간 속상한 게 아니었다. 북경올림픽과 여자월드컵 때 주전선수가 5명이나 부상당하는 바람에 나가지 못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앞으로 여자축구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를 제패한다면 바로 여자축구일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5년간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남자축구도 잘 돼야 한다. 남자축구 성과가 좋으면 여자축구도 영향을 받는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도 남자축구가 4강에 진출한 것이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지난 4월 1일 여자축구 출신의 실업팀 감독이 처음으로 나왔다. 앞으로는 이 연맹 회장직도 여성이 맡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학부생활은 어떠셨나요?


과 활동을 많이 했고, 도서관을 많이 찾았다. 아내와는 같은 학과를 나왔는데 캠퍼스 커플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자주 만나는 정도의 사이였다. 대학 4학년 여름에 형님 사업이 실패해 집안이 많이 힘들었다. 그 때 아내가 많이 위로해줬고 사랑을 맺는 계기가 됐다. 졸업 하고 2달 만에 청혼하고, 청혼한지 2년 후에 결혼했다.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자기의 정확한 꿈을 갖고 그에 걸맞는 실력을 겸비하는 것이 최고다. 한국 안에서의 작은 안목을 갖지 말고 세계적인 안목을 갖았으면 한다. 세상은 정말 좁다. 같은 맥락으로 자기 전공도 좋지만 다른 전공에도 관심을 갖길 바란다. 어학도 하나쯤 익혀둔다면 훌륭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대학 때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책 읽는 게 다 인성과 능력의 뿌리가 된다. 막상 일을 하면서 책은 못 읽으니 내 안의 것이 많이 고갈되는 걸 느낀다.


 


대학이 인생의 반이다. 이 때 실력을 잘 닦아야 어떤 영역에서도, 학연 지역 혈연에 구애받지 않고 잘 할 수 있다. 더불어 운동 한가지 씩은 즐겨, 자기 몸을 지킬 줄 알았으면 좋겠다. 사진·글 숭대시보 김보미(06)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