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Kos의 싱어 송 라이터, 고정인 동문(영문07)

2013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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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Kos’의 싱어 송 라이터, 고정인 동문(영문07)

 

[인터뷰: 최한나 홍보팀 학생기자(기독교 09), skyviki@naver.com]

고정인(영문07) 동문은 인디씬에 새롭게 등장한 여성보컬이다. 현재 쌍둥이 동생과 ‘The KoKos’라는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녀는 솔로곡을 포함, 앨범의 모든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한 실력 있는 싱어 송 라이터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영문과 밴드 ‘멜로우’를 창단하고, 가족 밴드를 만들어 홍대에서 공연을 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고 동문. 그녀와 음악의 끈끈한 관계를 들어보자.

영어영문학과 밴드 동아리 ‘멜로우’창단

현재 영어강사, 잡지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고정인 동문은, 중학생 때부터 영어에 부쩍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영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동안 해오던 미술을 한 번에 딱 접을 정도였다. “부모님 일로, 2년간 싱가폴에서 살았는데, 그때 정말 영어를 재밌게 배웠어요. 수학은 싫어서 다 찍고 그랬는데, 영어는 왜 이렇게 재밌었는지.(웃음)”이후 그녀는 미술을 그만두고 그토록 바라던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숭실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영문과에서 좋아하는 영어를 공부하던 그녀에게도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그녀는 영어만큼이나 음악에도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 과에서 음악을 할 만한 적당한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 동문은 그녀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을 모아, 영문과 소모임 밴드 ‘멜로우’를 만들었다. 당시 드럼을 잘 치던 서른 살 늦깎이 친구, 기타를 치는 친구, 그리고 고 동문이 보컬과 피아노를 맡아 세 명이 함께, ‘말랑말랑한, 그윽한, 풍부한’ 이란 뜻의 ‘멜로우’스러운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멜로우’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인문대 내 가장 큰 활약을 하는 밴드로 성장했다.

삼남매 밴드 ‘모노트레스’

그녀의 음악활동은 ‘멜로우’에 그치지 않았다. 작곡을 공부하는 쌍둥이 동생과 취미로 드럼을 치는 오빠와 함께 삼남매가 뭉쳐 홍대에서 ‘모노트레스’라는 밴드로도 활동했다. “아버지는 목사님이시고 어머님께선 음악을 공부하셔서, 음악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어요. 어릴 적엔, 교회에서 반주를 하기 싫어했는데, 지금은 그때 피아노를 배워둔 게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삼남매 밴드는 당시 인디음악계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남매가 밴드를 한다고 하니, 방송국, 기획사 여기저기에서 ‘모노트레스’를 재미있게 지켜본 것이다. 하지만 삼남매는 ‘모노트레스’을 오래 이어가진 못했다. 가족이지만, 세 명이 추구하는 음악적 색깔이 서로 다르다보니, 공연 문의가 들어와도 각자가 바라는 콘셉트와 맞지 않으면 하나로 마음을 모으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빠는 헤비메탈, 동생은 락, 저는 발라드를 좋아했어요. 남매끼리 음악을 정말 하고 싶어서 겨우 셋을 모은 건데…(웃음)” 밴드 뿐만 아니라, 삼남매는 함께 쇼핑몰을 운영하기도 했다. 낮에는 학교에 다니며 틈틈이 밴드 연습을 하고, 밤에는 동대문으로 옷을 떼러 다녔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했던 그녀는 이렇듯 야무진 대학생활을 보냈다.

쌍둥이 자매의‘The KoKos’

‘The KoKos’는 고정인, 고지인 자매가 결성해 만든 일렉트로닉 듀오다. 삼남매가 같이 활동을 하며 싸웠던 일이 많았던 만큼, 다시 모인 자매는 가장 먼저 마음을 맞춰가는 일부터 시작했다.“ ‘The KoKos’를 시작하기 전, 각서를 썼어요. 가족끼리 일을 하다보면, 부정적인 의사표현을 하기 쉬우니까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말을 조심스럽게 할 수 있도록요. 어기면 만원내기를 해서 맞춰갔어요.(웃음)” ‘모노트레스’를 할 당시, 그녀는 동생이 음악을 혼자 하겠다는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일주일간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동생과 음악을 같이 할 수 있다는데 큰 기쁨을 나타냈다. “저희는 정말 친해요. 그래서 동생과 작업을 하다보면, 지금 하는 작업이 일보다는 놀이의 의미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그리고 이제는 각자만의 성격, 취향을 어느 정도 존중할 줄도 알게 돼서, 싸울 일도 많이 없지요.” 자매가 일렉트로닉 장르를 선택해 듀오를 결성한 것도 서로를 이해한 결과였다. “첫 번째 디지털 싱글 ‘I know’는 동생과 제 취향을 모두 고려해 만든 일렉트로닉 곡이에요. 서로 다른 만큼 재밌는 음악을 만들 수 있으니, 이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싶어요.”

‘l know’로 처음 이름을 알린, ‘The KoKos’. 고 동문은 첫 번째 싱글‘I know’가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우연찮게, 음악인들의 아지트로 알려져 있는 카페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그녀는 이곳에서 첫 번째 감사한 인연을 만났다. “그곳에서 일을 하며, 음악 작업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 뵐 수 있었어요. 그 중 한 분께서, 음반을 내보라며 벅스뮤직 관계자 분을 소개시켜 주셨는데, 감사하게도 벅스뮤직에서 신인인 저희 앨범을 많이 홍보해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 자매가 만든 가사와 멜로디를 몇 번이고 다듬어주시는 프로듀서 또한, ‘The KoKos’에게 큰 지지를 보내고 계신 분이다.

싱어 송 라이터, ‘고정인’

고정인 동문은 ‘The KoKos’그리고 솔로가수로도 활동 중이다. 그녀가 부른 5개의 솔로곡은 고 동문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로, 곡 하나하나마다 그녀만의 섬세하고 예민한 손길이 잘 묻어나 있다. “곡들은 대부분 제 보통날을 담고 있어요.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일들을 노래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 중 ‘시집이나 가래요’는 결혼을 종용하시는 부모님을 떠올리며 그녀가 쓴 곡이다. 마음이 여리고 의존적인 그녀를 두고, 고 동문의 부모님은 딸이 차라리 빨리 결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참 스트레스였어요. 어느 날은 친구와 만나서 이 속상함을 푸는데, 친구가 이걸 노래로 만들면 어떻겠냐는 거예요. 그래서 ‘시집이나 가래요’를 바로 만들게 됐지요.”

“그리고 ‘Tree’는 제 신앙의 바람을 담은 곡이에요. 타오르는 ‘장작불’의 모습을 가사로 써봤어요.” 크리스천으로서,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고 싶던 그녀는, 어느 날 아버지의 ‘장작불’설교를 들은 후, 자신의 미지근한 신앙을 되돌아봤다. 불이 붙여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타오르고 나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장작불이 그녀의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하지만 사실 ‘Tree’는 그녀의 의도처럼 종교적이지만은 않다. 삶에 대한 성찰과 위로를 전해주는 따뜻한 곡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Tree’같은 곡을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곡을 들을 때, 종교적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어떤 희망을 가지게 됐으면 좋겠어요.”

‘취직을 하더라도 꿈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지내고 있는 그녀지만, 고 동문 또한 취업의 압박은 비켜갈 수 없는 것이었다. “저는 사실 취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딸이 음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겠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죠. 결국,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취업을 해야겠단 마음에, OPIC 시험을 봤어요.”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고 하듯, 그렇게 떠밀려 본 시험에서 그녀는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호기가 찾아왔다.“ 결과를 확인한 다음 날, 지인을 통해 삼성계열사의 OPIC강사 제안을 받았어요. 부모님 걱정도 덜어드리고, 제가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선택인 것 같아, 바로 승낙했습니다.”

고 동문은 삼성전자에서 OPIC 강사로 활동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있는 중이다. “제가 가르치는 분들은 대부분 직장인이신데, 그분들께서 저를 부러워하세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제 모습이 보기 좋다며. 하고 싶은 일이 있으셔도,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선뜻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세요.” 그녀는 꿈과 현실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 후배들에게, 꿈을 좇을 것을 조언한다. 하지만 꿈을 따라 살만큼 녹록한 세상이 아님을 알기에, 그녀는 후배들이 ‘취직을 하더라도 꿈은 포기하지 않았으면’하는 마음을 전했다. “자신의 선택에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대학시절동안 많이 도전하고 포기하고 그리고 또 다시 도전하는 대학생활 보내시길 바랄게요.”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보냈을 것 같은 그녀에게도, 한 가지 아쉬움은 있었다. 학업에 더 열중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 아무래도 ‘학생이 최고’라는 그녀는, 졸업을 하고 나서야 이상하게도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음악과 영어만큼 소중한 것이 대학시절의 추억이란 뜻일 테다. 숭실 교정에서 품었던 그녀의 꿈이, 그녀의 노랫말처럼, ‘바람 불어와도 꺼지지 않고 오래오래 타오르기’를.

*고정인 동문 음악 추천: http://mnet.interest.me/artist/202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