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산학박사 1호, 문송천 KAIST 교수 (전산 75)

2015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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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산학박사 1호, 문송천 KAIST 교수 (전산75)


 

[인터뷰: 류지희 홍보팀 학생기자(영어영문 12), zhee.ryu@gmail.com]


문송천 동문의 첫인상은 마치 단단한 바위 같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학문의 외길을 걸었던 그는 국내 전산학박사 1호로 운영체제 (OS)와 데이터베이스(DB)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IT계에 남긴 발자취와 앞으로의 꿈을 듣기 위해 직접 찾아가봤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

국내 전산학박사 1호로 알려진 문송천 동문은 놀랍게도 고등학교까지 문과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산학을 택했고, 자연스럽게 당시 유일하게 전산학과가 있었던 숭실대학교에 진학했다. 숭실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자 했으나 해당 학과가 없어, 졸업 후에는 수학을 독학해 KAIST 수학물리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석사를 마친 직후에는 숭실대학교 전산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24세였다. “교수로 가니 군 제대 후 복학한 동기들이 제 수업을 들으러 왔었어요. 친구가 교수가 되어 강의를 하고 학점을 주고 하니 절 무서워하더라고요. 아직도 가끔씩 만나면 그 얘기를 하곤 해요.” 그렇게 몇 년을 교단에 서다 1984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전산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산학 박사가 테크노경영대학 교수가 된 까닭 

문송천 동문은 1985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취임했고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전산학과 교수로 강의를 했다. 헌데 현재 그는 KAIST의 테크노 경영대학 소속 교수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1990년에 한국 최초 국산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 (RDBMS)를 개발했어요. 미국 다음으로는 세계 처음이었고 연간 250억원정도의 수입대체 효과를 예상했어요. 미국의 오라클 같은 기업으로 키우고자 대기업에 투자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어요. 개발을 해놓고도 상용화에 실패하고 나선 전산학과 교수로 계속 있어야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자식을 잃은 듯 상심이 컸던 그는 제자들과 동료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는 것을 돕기 위해 전산학과 교수에서 경영대학 교수로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유럽IT학회의 아시아 대표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저널에 1년에 2회 논문을 발표하는 등 IT계에서의 학문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IT계의 슈바이처

문교수는 학문적 활동만큼이나 봉사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99년부터는 1미터를 뛸 때마다 기부하는 ‘기부마라톤’을 시작하였고 15년 동안 1년에 2번씩 마라톤 완주를 하며 카이스트 학생들과 함께 기부활동을 해왔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운 세계적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KOICA를 통해 1991년부터 팔레스타인 등의 분쟁지역, 저개발 국가 70개국에 데이터베이스 지식을 전달하는 나눔 활동을 하는 등 IT전도사로 활동을 했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전액 장학금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어요. 그 은혜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내외 IT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고요. 앞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계속할 생각입니다.”

기회는 새로운 시도로부터

그가 가지고 있을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었다. “지금까지 수십명의 박사를 양성했어요. 지금 IT계에서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죠. 앞으로도 제자들을 양성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싶어요. 또, 우리나라의 역량으로 충분히 Microsoft나 Google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국가적 원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가 제게 온다면 힘이 되는 최대한으로 돕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제가 그럴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하하” 문 동문은 후배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제가 있는 KAIST는 대학 자체에서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고 도전을 해요. 기회는 항상 새로운 시도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숭실이 IT쪽은 단연 최고잖아요. 숭실의 후배들이 새로운 쪽으로 시도를 많이 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그런 기지를 발휘해 좋은 성과를 많이 거뒀으면 좋겠어요.”

단단한 바위와 같은 그의 면모는 새로운 시도와 실패에서 비롯된 그의 무수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청춘처럼 빛나는 그의 눈동자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계속될 문송천 동문의 꿈을 응원한다.

* 문송천 동문(전산 75)은 본교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석사를, 1984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전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KAIST전산학과 교수로 취임했고 영국 케임브리지대, 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를 거쳤다. 국내 전산학박사 1호인 그는 현재 KAIST의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IT계의 학문적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