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밖의 주연, LG 아트센터 기술팀장 이종규 동문(전기79)

2013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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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밖의 주연, LG 아트센터 기술팀장 이종규 동문(전기79)

[인터뷰: 최한나 홍보팀 학생기자(기독교 09), skyviki@naver.com]

깜깜한 무대 위에 조명이 비춰진다. 텅 빈 무대가 서서히 드러나는 그 모습은 언뜻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순간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관객은 조명이 비춘 첫 무대를 보며 기대와 설렘에 가득 찬다. 이 감동의 뒤편에는 무대를 구성하는 기술진들이 진두하고 있다. <단테의 신곡> 같은 정극에서부터 4차원 연극으로 유명한 <오르페오>라는 현대영상연극까지 다양한 공연의 조명을 감독해온 LG아트센터의 기술팀장 이종규 동문(전기79)또한 유능한 기술진 중 한 명이다.

숭대극회에서 시작한 연극

제가 신입생이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이 10월 26일이었는데, 저는 당시 교련의 일종인 문무대에 다음 날인 27일에 입소 예정이었죠. 그곳에서 9박 10일 동안 훈련을 받으면, 군 생활을 몇 개월 단축할 수 있는 혜택이 있었습니다. 입소하기 위해 짧게 이발도 해야 했는데, 고작 10일을 위해, 긴 머리카락을 이렇게까지 잘라야하나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깎았던 기억이 나네요. 아침에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데 대통령 유고뉴스가 나왔습니다. 이발소 아저씨도 저도 어리둥절해서 ‘대통령이 교통사고를 당했나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들어보니 내용이 점점 심각하더라고요. 머리는 이미 다 깎았고 가방에 군대 장비를 챙겨서 우선 학교로 갔는데, 교문 앞에 탱크가 버티고 서있었고 학교에는 누구도 못 들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교문에서 만난 친구와 그 길로 대한극장에 영화를 한편 보러 갔습니다. 거리가 온통 삐라, 호외로 가득 차있었죠. 학교에는 무기한 휴교령이 내려졌고, 시험도 모두 리포트로 대체됐어요. 이후 방학을 보낸 뒤 개강을 하고 지난학기에 못간 문무대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같은 과 친구랑 친해졌는데, 그 친구가 숭대극회원이었어요. 봄 정기공연으로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하는데 배우 인원이 부족하다며 같이 해보자고 물어왔어요. 시저를 암살하는 내용이었는데 시대상황과 비슷하여 흥미로워서 ‘한 번 가보자’하는 마음으로 극회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5·18민주화운동으로 학교가 또 한 번 휴교를 하면서 결국 공연은 올리지 못했어요.

무대를 빛내는 조명에 관심

5월 말이 공연이었는데, 그때 학교가 다시 문을 열 수도 있단 생각에 연습을 계속 했어요. 어느 날은 경복궁 잔디밭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그 근처 칼국수 집에서 배를 채우기도 했는데 참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가 <줄리어스 시저>의 마지막 연습이었어요. 만약 이때 배우를 했다면 지금은 배우가 됐을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이듬해에는 극회에서 등장인물이 3명 정도인 작품을 준비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조명을 맡았는데 이 일을 재밌어하기 시작한 계기에요. 리어카에 조명기를 싣고 다니면서 다른 과 행사에 조명기를 설치해주고 돈을 벌었어요. 번 돈은 극회 공연비로 쓰였습니다. 군 제대 후에는 조명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도 하면서 극회의 작품 활동을 계속 도왔습니다. 본교 이반 명예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올로프 하르트만의 <예언자와 목수>로 채플공연을 할 때는 딱 한 번 배우로도 활동했는데, 이것이 제가 경험한 연극에 대한 전부입니다. 극회시절 주로 기술부분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조명 쪽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텅 빈 무대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조명에 매료된 것이죠.

학부시절, 조명회사를 만들다

전공이 전기공학이다 보니 아무래도 공연에서 조명파트를 담당할 때가 많았습니다. 조명 일이 재밌더라고요. 4학년 때 진로고민을 하면서 이 일을 계속 해보자는 생각에 극회원 세 명이서 작은 조명회사를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조명 렌탈 회사가 많지 않았기에 충분히 해볼 만한 사업이었습니다. 막연한 얘기지만 그때는 조명회사로 돈을 벌어서 조그만 극장을 만들고 거기에서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제작을 하고 싶었던 거죠. 그 꿈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했던 일은 조명 렌탈 수요가 많았던 대중음악 공연에, 필요한 조명을 대여, 설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학축제조명부터 동아리 행사, 학과 홈커밍데이, 과내 연극, 타 학교 의상학과 패션쇼, 무용발표회에서 출발했어요. 나중에는 들국화, 김현식 콘서트에도 참여하게 되었죠. 이렇게 크고 작은 일을 맡아서 회사를 운영했는데 실제 극장을 만들만큼은 여유롭지 않았어요. 새로운 조명장비를 만드는데 비용을 많이 쓰기도 하고, 실패도 많이 했죠. 이후 사업 경험을 밑거름 삼아 저희 세 명은 각자 새로운 길로 떠났습니다.

LG아트센터와의 첫 만남

사업을 그만둔 후, 1989년부터 계몽사에서 만든 어린이 뮤지컬 전문 공연장, ‘계몽아트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여기는 소규모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곳이어서 조명과 기술감독직을 맡아 음향, 무대기계, 영사기 관리 등 필요에 맞춰 담당자들과 유동적으로 일을 했어요. 그러던 중 극회 동기의 소개로 LG아트센터건립팀의 조명설계감독으로 새로 일하게 됐습니다. 아트센터가 개관하기 2년 전, 땅을 파는 시기부터 일을 한 것이죠. 2000년 3월 개관 이후, 14년이 지난 지금은 LG아트센터의 무대운영을 위한 기술업무 전반을 관리하는 기술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술’로서의 조명 디자인

연극에서 조명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잘못된 조명 디자인은 공들여 만든 공연 이미지를 망가뜨리기도 하죠. 빛의 색감이나 여러 개의 등을 이용해 공연이미지에 어울리는 디자인을 연출에게 제안하는 것이 연극에서의 조명의 역할입니다. 그렇다보니 조명 디자인을 하다가 후에 공연 연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조명 일이 제 일이라기보다는 남의 일을 맡아서 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조명의 역사는 조명 디자인이 아닌 무대 디자인에서 출발합니다. 디자인의 한 요소로 빛이 쓰이는 거죠. 연출이 소품, 의상, 분장을 무대에서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고민하듯 연출은 자신이 원하는 최종적인 비주얼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빛으로 배치할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연출이 고민하는 것에 대한 조명 자료를 제공해주고 그것을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조명 기술자의 역할이었죠. 조명 디자이너라고는 불리지 않았어요.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보단 기존의 조명 디자인 샘플을 골라서 사용하는 것은 기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조명이 기술적인 일로만 느껴진 저는 연극조명보다는 콘서트 조명 디자인 일을 주로 했어요. 이전의 콘서트 공연팀에는 연출도 없고, 특정한 조명 디자인을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제 스스로가 연출이라 생각했어요. 곡의 리듬과 악기의 느낌에 따라 자유롭게 조명을 배치했고 연극을 하면서 배운 대본분석하듯 가사를 분석해서 조명의 컬러를 쓰기도 했죠. 예를 들면 당시에는 가수가 노래를 하든 안 하든 가수가 나오면 조명을 켜고, 들어가면 조명을 끄던 게 조명의 순서였어요. 그런데 가수가 아무것도 안할 때라든지, 물을 먹고 있을 때 조명을 켜두자니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가수가 조용히 서있을 때는 가수의 실루엣만 전해주는 느낌의 조명을, 물을 마시거나 공연과 관계없는 행동에선 조명을 잠시 꺼주는 등 한 곡 한 곡 의미를 생각하면서 콘서트 공연을 만들어가니 조명 일이 정말 재밌었습니다.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일지라도, 언젠간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시길 바라요”

1학년 시절 방황을 많이 했다는 그는, 계열진학이다보니 전공공부의 스트레스도 없고, 대학생활이 고등학교 생활의 연장 같았다고 한다. 수업에도 거의 안 들어가고 많이 놀았어요. 1학년 여름방학 때는 집에 닷새쯤 들어갔을까요?(웃음) 2학년 이후부터 제가 학교에 가는 이유는 극회였어요. 지금 제 나이가 돼서 느끼는 점은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노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이 외에도 많은 경험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저는 책상에서 토익공부하는게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 의지를 가지고 계획해서 하는 것이 이왕이면 공부할 때 더 좋지 않을까요? 저 또한 제가 좋아하는 연극을 대학시절에 ‘더 열심히 공부해둘 걸’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 때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만 고민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부시절 토익강의를 들을 때도 취업 때문에 듣는다는 생각에, 충실히 하지 않았죠. 시간이 지나서 다시 공부하려니 쉽지 않더군요. 조명관련 도서나 매뉴얼의 경우 대부분 영문이어서 영어능력이 필요하거든요. 때문에 여러분이 하시는 영어공부든 이 외의 어떤 자격증 공부든 이것들이 가깝게는 취직에만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후에는 여러분들의 커리어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종규 동문은 국내 공연계에 이바지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LG아트센터의 설립단계부터 함께한 그의 경력과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건립한 최첨단 다목적 공연장인 LG아트센터의 명성 덕분에, 공연장을 가지고 있거나 만들 계획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 동문으로부터 좋은 공연장에 대한 조언을 얻고 있다. 수년 전부터 이러한 조언자의 역할을 해오면서 그는 앞으로 좋은 공연장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공연장을 조성하는데 필요한 인프라를 적절히 갖추고 예산과 목적에도 부합하며 또한 조명/음향/무대 연출자와 사용자에게 편안한 공연장을 세우고 싶네요.”. 대학시절, 조명회사를 세우며 작품을 올릴 수 있는 연극 공간을 꿈꿨던 한 청년의 꿈이 실현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LG아트센터는 ‘한국서비스품질지수’에서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세종문화회관등 국내 유수의 국립극장을 제치고 ‘공연장 부문’에서 7년 연속 1위를 수상한 국내 공연예술계의 대표 극장이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수한 공연단체의 작품들을 발굴, 소개함으로써, 다양한 문화권의 특색 있고 우수한 작품들을 통해 우리 관객들이 예술향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새로운 예술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독일 피나 바우쉬의 부퍼탈 탄츠테아터, 현대 연극 거장 피터 브룩, 러시아 연출가 레프 도진이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 댄스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영국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20세기 디지털 미디어 연극의 개척자 로베르 르빠주, 현대 음악의 선구자 필립 글라스 등 세계 최정상급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공연예술의 선진화에 앞장서고 있다.